조나라 군주 조위후는 제나라왕이 파견한 사신을 만나자 제나라왕의 안부를 먼저 물은것이 아니라 《당신네 제나라는 올해 작황이 어떻소? 백성들은 잘 지내고있소?》라고 물은 다음 마지막에야 《제나라 페하께서도 강녕하시오?》하고 물었다. 자기 나라 군주의 안부를 맨 마지막에 물었기에 《존귀비천을 전도했다》고 제나라 사신이 불쾌해하자 조위후는 이렇게 말했다.《어찌 그렇게 생각하뇨? 만약 작황이 좋지 않다면 어찌 백성들의 안온한 생활이 있을수 있으며 만약 안온한 생활을 하는 백성들이 없다면 어찌 국왕의 강녕이 있을수 있겠느뇨? 그러할진대 과인의 물음이 어찌 존귀비천을 가리지 않고 순서가 전도되였다고 할수 있겠느뇨?》 제나라 사신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일개 봉건군주가 백성과 군주, 백성의 질고와 군주강녕의 관계를 이처럼 잘 리해하고있으니 조위후는 비교적 현명한 군주라고 말할수 있겠다.
조위후의 이런 처사가 현시대의 지도간부들에게도 참고가치가 있지 않겠느냐 생각된다. 군중로선은 우리 당의 우량한 전통이다. 우리 당은 군중가운데서 산생되였고 또 가장 광범한 군중들의 리익을 자기의 최고리익으로 삼는다. 물을 떠나 고기가 살수 없듯이 군중을 떠나 우리 당도 생존할수 없다.그런것만큼 당의 지도간부들은 처처에서 군중을 마음속에 두어야 할것이다. 초유록과 같은 당의 우수한 지도간부들은 항상 백성들을 마음속에 두었는바 추워도 백성생각, 더워도 백성생각이였다. 설명절이면 우선 재해를 입은 백성부터 찾아보았다. 이런 기회를 통해 백성들의 진짜 질고를 료해하였고 민심을 료해하였다. 당과 국가의 고급지도자들은 이런 우량한 전통을 잘 발휘하고있다. 만약 온가보총리가 농가집에 들려서 백성의 문안을 하지 않았더라면 농민공로임체불과 같은 문제들이 이처럼 빨리 풀리지 않았을것이며 오의부총리가 농촌고찰시 《간부는 나가고 백성들은 들어오시오》라는 말을 하면서 백성들을 친히 문안하지 않았더라면 농촌의 세금감면문제가 이렇게 빨리 풀리지 않았을것이다.
근년에 일부 지방과 일부 기층단위에는 백성에 대한 문안이 상대적으로 적어졌고 지도자끼리 하는 《틀에 짜인》 문안과 상급책임자에 대한 문안이 상대적으로 많아진것 같다. 마음속에 백성이 있어야만 이런 현상이 개변될수 있을것이다. 년말이 다가왔다. 설명절도 오라지 않다. 우리의 각급 지도간부들이 조나라 군주 조위후처럼 먼저 백성문안을 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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