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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한 조선족 빈곤촌의 치부 '신조류'

2020년 01월 16일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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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섣달의 동북에는 큰 눈이 내려 산길이 막혔고 작은설(小年)이 다가오지 않았음에도 명동촌 촌민들은 일찍부터 설용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여올라 이 작은 조선족 마을에 농후한 설날 분위기를 더해줬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는 원래 국가빈곤해탈부축개발사업의 중점현이였다. 지신진 명동촌은 이 시의 중점 빈곤촌으로서 2016년 서류작성 빈곤인구가 35.5%를 차지했다.

시가지에서 출발해 기자는 차를 타고 평탄하고 넓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20분도 채 안돼 촌에 들어섰다. 5, 6년전 이곳은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였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길을 나서기가 아주 어려웠다.

당시 촌서기 류원동이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한 것은 바로 촌 대회 개최 소식을 전하는 일이였다. 20세기 90년대. 촌에는 전화가 채 보급되지 않아 일이 있으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통지해야 했다. 류원동은 "동틀무렵부터 자전거를 타고 촌을 돌아다니면 오전 시간을 길에서 다 보냈다"고 말했다.

2016년 1월, 촌에는 성에서 파견한 '제1서기'가 왔다. '제1서기'가 취임하고 촌을 고찰한 후 처음으로 한 것이 길을 닦는 일이였다.

촌에서 룡정 시내까지 가는 길을 다시 보수하고 촌의 세멘트길을 새로 닦고 하수도를 만들고 다리를 세웠다… 촌민들은 촌에 '뼈대'가 생기고 길이 모두 통해 신을 신지 않고 집밖에 나서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전촌 위험주택을 보수했다. 초가집을 모두 기와집으로 만들고 우물을 파고 수도관을 개조해 음용수 안전을 보장했다. 새로 3700메터의 돌벽을 쌓아 옛 모습 그대로의 조선족 마을 특색을 살렸다. 가로등을 세우고 록화대를 만들어 촌 모습을 변화시켰다. 레저광장과 주차장을 건설하여 현대화 새농촌을 구축했다…

촌민들은 점차 '제일1서기' 한보녕과 익숙해졌고 그가 길림성교통운수청에서 촌에 파견해 촌의 빈곤탈출 재부창출을 도와주러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촌민들은 믿을 사람이 있게 됐고 모두 '제1서기'와 함께 빈곤해탈부축 소를 도급맡고 감주공장에 투자하고 비닐하우스에 야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돈주머니가 불룩해지는 동시에 명동촌의 자신감도 점점 더 커졌다.

류원동은 "촌민들은 늘 고향을 잘 홍보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명동촌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의 생가가 있고 '조선족교육발상지'로 불리우는 명동학교의 유적도 이곳에 있다. 농후한 문화분위기는 늘 명동사람들의 자랑이다.

길이 통하고 새 집을 짓고 촌이 아름다워지니 명동촌도 관광흥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81세인 촌민 남기학은 과거 가구당 땅이 4무 밖에 안돼 살림이 빠듯했던 시기에 촌에서 벽돌공장을 운영하던 '만원호'가 모든 촌민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였다고 말했다.

생계에 보탬이 되게 하기 위해 남기학은 60여세의 나이에 외지에 나가 일을 하면서 적지 않은 고생을 하고 몸에 병까지 들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날들이 찾아와 빈곤호들은 보장금이라는 밑천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빈곤해탈부축항목 배당도 받을 수 있게 됐고 작은 방을 내주어 민박에도 투자했다.

2018년, 촌에서 '명동단오문화관광축제'를 개최했는데 한번에 4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와 민박이 다 차서 사람들은 광장에서 텐트를 치기도 했다. 그 해 전촌 관광수입은 2016년의 24.6만원으로부터 50.6만원으로 증가했고 촌 집체수입도 10.6만원으로부터 44.6만원으로 증가해 촌민들은 이 길을 제대로 걸었다고 감탄했다.

작년 4월 룡정시는 정식으로 '모자를 벗었'는데 '제1서기' 한보녕은 좋은 날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멋진 커피숍과 기념품상점이 개업하고 새로 관광서비스접대쎈터를 세웠으며 백년주택을 6채 새로 지어 특색관광브랜드를 구축했다. 동서부 협력 고품질 관광항목이 명동촌에 자리잡았다. 한보녕은 2020년 촌 집체수입이 백만원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남기학은 따뜻한 구들에 앉아 봄이 되면 무엇을 더해볼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촌민들의 치부적극성이 점점 더 높아져 촌 집체에 따라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새로운 류행이 됐다고 말했다.

남기학은 "사람마다 만원호던 데로부터 집집마다 산업이 생기게 되니 살수록 더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