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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1+13’, 료녕 단결조선족촌의 활력 새롭게 발산시켜

2020년 07월 09일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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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녕성 조병산시 단결조선족촌 촌주재 제1서기 리경신(중간)
인민넷 조문판: 이 마을은 두 주민위원회를 포함해도 13명밖에 안되는 ‘빈껍데기촌’인데 2년전만 해도 촌집단경제가 박약했고 촌위원회건물은 볼품없이 망가졌으며 농가원은 허름했고 뜰은 황페했으며 거리에는 사람이 없는 곳이였다. 2018년부터 마을에는 ‘편제’는 없지만 ‘상주’하는 도시인이 한명 더 늘어났는데 그는 13명의 촌민들과 함께 힘들게 일하면서 공동인식을 세우고 촌의 모습을 정돈하기 시작했으며 특색산업을 발전시키고 문화항목을 가동했다. 짧은 2년 동안 촌에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 촌이 바로 료녕성 조병산시 단결조선족촌으로서 조병산시 촌주재 제1서기 리경신(李庚申)이 촌에 찾아온 후 촌에는 ‘1+13’이라는 단결의 힘이 형성되였다.

단결조선족촌에는 촌민이 총 394명이 있는데 전형적인 조선족 생활습관을 보류하고 있다. 촌민들은 일상 교류에서 본 민족 언어를 사용하고 명절복장에서부터 집안장식, 부뚜막까지 모두 조선족 특색이 있다. 조선족 언어우세가 있기에 개혁개방후 80%가 넘는 촌민들이 모두 한국에 일하러 떠났고 주머니가 두둑해진 사람들은 대부분 대도시에 집을 사고 아이들도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했다. 현재 촌에는 13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최고 년장자가 79세이고 가장 젊은 사람이 48세로 거의 잊혀진 마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촌주재 제1서기 오면서 ‘빈껍데기촌’에 새로운 변화 생겨

2018년 4월, 조병산시사법국 부국장 리경신이 단결조선족촌에 와서 제1서기를 맡았다. 이 촌은 전형적인 벼재배촌으로서 그는 취임한 첫날부터 드넓은 논에 눈길을 돌렸다. 리경신의 노력하에 작년 봄 촌의 1249묘 수전이 모두 류전되여 단결조선족벼재배합작사를 설립했다.

“농민사업을 하려면 모범을 잘 보여야 하고 입으로만 해서는 안된다.” 이는 리경신이 촌민들의 믿음을 얻은 근본이였다. 작년 리경신은 재정에서 매년 자신에게 주는 촌주재 제1서기의 보조금 12000원을 꺼내 촌민 양수개(杨树凯)에게 넘겨 셀렌벼 실험전을 부치게 했다. 추수할 때 셀렌벼의 무당 생산량은 1300근에 달하여 무당 150근 증산했으며 근당 6.6원에 팔렸다. 촌민들은 양수개가 단맛을 본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셀렌벼는 단결조선족촌의 발전을 이끄는 농업브랜드로 거듭났다. 올해 관리재배모식이 나오자마자 즉시 도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무당 재배관리비용이 5000원인 유기셀렌논 10무는 금방 다 팔렸다. 현재 리경신이 아이디어를 내면 촌민들은 모두 인정한다.

단결조선촉에는 휘황찬란한 과거도 있었다. 전성기 때 조선족특색식당만 7, 8개가 있었고 사람들이 끊기지 않아 문전성시를 이뤘었지만 지금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조선족식당마저 많이 스산한 상황이다.

현재 리경신은 단결촌에 사람이 적고 땅이 많은 독특한 우세 및 특색과 결합하여 1, 2, 3 산업이 융합발전하는 부흥계획을 제기했다. 또한 산업발전항목전문자금을 쟁취하여 조선족특색거리를 만들고 이와 함께 비여있는 촌민들의 주택을 리용해 민박항목 20개를 발전시켰으며 그중 면적이 200평방메터가 되는 조선족특색식당에 면적이 2.5무가 되는 표준록색야채온실을 신축하여 농업채집을 개발하고 비여있는 양어장을 개조하는 낚시터공사도 건설하고 있다.

리경신, 13명 촌민들의 원기 회복시켜

리경신은 관련 부문과 촌 구역내 기업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쟁취했을 뿐만 아니라 32만원의 자금을 모아 170평방메터의 다기능촌위원회를 신축하고 800평방메터의 문화광장도 신축했다. 현재 다기능촌위원회는 촌민들이 가무를 즐기는 무대가 되였고 고향에 친척방문을 오거나 림시로 촌에 살고 있는 촌민들이 모두 촌위원회의 접대소에 머물면서 가족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봄갈이전 리경신은 농전에 비뚤비뚤하게 세워진 전보대 47개 가운데 몇개가 거의 넘어질 것 같아 넷트콤회사, 모바일회사, 철탑회사 철령분회사 등 부문과 즉시 련락하여 전보대를 제때에 보수하고 교체했다.

리경신은 촌에 남은 13명을 한데 결집시켰을 뿐만 아니라 촌민채팅방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가입시키는 방식으로 국내외에 흩어진 300여명의 촌민들을 일일이 채팅방에 들어오게 하여 촌의 모든 발전계획을 채팅방에 공유하면서 촌민들의 의견과 건의를 청구하고 촌의 자그마한 변화라도 모두 촌민들에게 회보했다.

현재 점점 더 많은 외지에 나간 촌민들이 고향의 변화를 관심하기 시작했는데 따뜻한 고향정과 향수는 몇십년간 떠돌이 생활의 응어리를 풀어줬다. 일찍 로씨야에 가서 창업하고 현재 폴란드에 살고 있는 기업가 로영옥은 시간이 나면 꼭 몇십년간 떠났던 마을을 찾아 고향의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