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국풍광의 청신한 도시
연길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다지 깊다고 할수 없다. 이번 장백산려행의 "근거지"로서 우리는 이곳을 총망히 다녀오다나니 이 도시를 깊이 알 기회가 없었고 심지어 이 도시의 풍모를 렌즈에 담지도 못했다. 하지만 잊지 못할것은 거리의 간판마다 한자옆에 조선문자가 더 많은 그것이였다. 특히 우리를 즐겁게 한것은 가는 곳마다 좋은 날씨가 줄곧 우리를 동반해준 그것이였다. 하기에 이곳을 떠나면서 우리는 이곳의 청량한 날씨에 미련을 남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가 상해를 출발할 때 상해의 날씨는 아주 무더웠는데 연길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청신하고 시원한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삽시에 거뿐한 느낌이 전신을 감도는듯한 느낌이였고 피부도 부드러워진것 같았다.
연길-동북변강의 한 자그마한 도시인 연길은 내가 언녕부터 와보고싶었던 곳이였다. 이곳은 푸르른 두만강이 흐르고 장백산 산정을 뒤덮은 흰눈이 있는 고장이고 천혜의 흑토가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민족을 키워온 고장이였다. 처녀들은 너나없이 아름답고 화려한 한복을 입고 길다란 팔소매를 흩날리며 혹은 아름다운 춤자태를 보이기도 혹은 청아한 목소리로 구성진 노래가락 뽑기도 혹은 장고를 울리며 우아한 춤자태를 뽐내기도 할줄 안다고 항상 그려봤던 고장이였다.
이곳에 와보고나니 연길은 산수에 둘러싸이고 풍경이 수려하며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구릉모양의 기복이 큰 고장으로 북국의 풍광을 한가득 갖춘 고장임을 느꼈다. 많은 도시의 주변들은 어지럽기 말이 아니였지만 연길의 변두리는 차가 적고 아스팔트길도 아주 평탄하였으며 길 량켠은 어데 가나 사람들을 도취시키는 록색으로 단장되여있었다. 정말 좋은 길에 좋은 풍광으로 마음이 즐겁고 눈을 즐겁게 하고 정신을 유쾌하게 만드는 좋은 고장이였다.
비록 연길은 문화고성이 아니였지만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미련을 남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연길을 기점으로 북쪽에는 청산벽수의 경박호가 있고 남쪽에는 기세가 웅위롭고 경치가 수려한 장백산이 있으며 동쪽에는 중국, 조선, 로씨야 삼국 접경지대로 불리우는 방천이 있어 "낮에는 삼국의 변경모습을 한눈에 굽어보고 밤에는 이국의 내음을 맡을수 있었다." 또 려행길에 기복을 이룬 장백산맥의 모습을 구경할수 있었고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의 모습을 기억에 남길수 있었다.
도시중심을 가로지나는 부르하통하는 매혹적인 자태로 시민들에게 다가서고있었다. 이곳의 건축물 대부분이 성냥갑모양이였지만 거리는 깨끗하게 잘 정비되여있었고 거리량켠의 각양각색의 간판들은 중문과 조선문으로 씌여있었다. 거리를 지나며 주의해 듣다보면 사람들은 다른 말로 대화를 나누고있었다.
가장 유감이라고 할가, 도시중심의 록지와 수목이 적은것이 하나의 유감이였다. 도시주변이 록색으로 뒤덮였는데 왜 주변의 나무를 몇그루 옮겨다 심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경박호 유람을 떠나는 날 차가 광명거리를 지나게 되였는데 거리량켠의 건축물들은 다다소소 연길 특유의 인문과 예술 매력을 풍기고있었다.
민족자치주 소재지로서 연길의 생활은 비교적 여유롭게 보였고 풍요하게 느껴졌다. 연길의 거리를 걷다보면 도처에 노래방과 같은 고급오락장소가 눈길을 끌었다. 대형기업이 거의 없다싶이한 이곳이 아닌가,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를 안내한 현지분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가 몇년간 일해 뭉치돈을 벌고 귀국한 뒤 소비에 많이 사용한다는것이다.
연길의 기온은 절강 등지에 비해 매우 낮았기에 때때로 조그마한 추위도 느낄수 있었다.하지만 이곳의 공기는 확실히 청신했다.
하루밤에는 현지분과 함께 호텔을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밖으로 나왔다. 마치도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느낌이였다. 이처럼 시원한 공기에 끌려서인지 딸애마저 호텔로 돌아갈념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한수의 노래가 생각났다.
붉은해 솟았네 천리변강 비추네 장백산아래 사과배 열리고 해란강반 벼꽃 피네 험산을 파헤쳐 보물을 캐고 강물을 가로막아 산에 올리네 에헤 연변인민 투지 높이 변강을 건설하고 모주석의 령도아래 승리에로 나아가네
◎ 특색음식 맛보며 조선족음식문화 진미 감내
연길의 주민들은 조선족과 한족으로 구성되여있기에 이곳의 음식은 독특한 자체 문화를 갖고있다. 이곳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연길의 음식은 나한테 각별한 인상을 남겼다.
연길에 오기전에 나는 연길에 가게 되면 거리 곳곳에서 전통 복장인 한복차림을 한 사람들을 볼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정작 연길에 와보니 거리 량켠의 간판에 씌여진 문자가 조선문자가 우에 씌여있고 중국어문자가 아래에 씌여있는것을 볼수 있는외 사처를 훑어봐도 조선민족의 특색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식당에 가서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이곳의 크고 작은 음식점, 식당들마다 거개가 조선족료리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수량적으로 많았고 또한 진한 맛을 풍기고있었는데 식객들에게 있어서 허리띠를 풀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워낙 먹새가 좋은 나인지라 “식”에 대한 말만 나오면 군침부터 흘리군 한다. 연길사람들은 쌀밥을 주식으로 하고 국, 된장, 김치와 기타 짠지를 부식으로 하고있었는데 자기의 독특한 음식풍습을 갖고있었다. 그가운데 국은 빠질수 없는 존재였다. 하기에 "료리는 없더라도 국만은 빼놓지 못한다"는 말로 국의 존재가치를 서술하고싶다. 그중 가장 인기가 높은 국이 바로 된장국이였다. 어느날 현지분이 우리들을 데리고 조선민족특색이 짙은 조선족음식점에 가 식사를 하게 되였는데 그때 주문한 음식이 바로 "된장국+쌀밥"이였는데 아주 맛갈난 음식이였다. 국의 종류도 여러가지였는데 된장국외에도 소꼬리탕,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등등 이루다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사람들은 자기의 취미에 따라 마음대로 고를수 있었다. 내가 주문한 국은 감자국에 쌀밥이였는데 확실히 맛좋은 국이였고 한차례 향수였다.
김치는 조선족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였는데 현지 한족들도 상당히 즐기고있었다. 김치의 종류도 많았는데 배추로 만든 김치외 무우로 만든 김치도 있었고 기타 오이나 시금치로 무쳐만든 짠지도 있었다. 김치를 먹노라면 그 사각사각한 느낌에 상큼한 맛은 형언할수 없이 감미로왔다. 간도 적당했고 조금은 얼벌한 느낌이였는데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독특한 맛이였다.
연길에서 가장 특색이 있는 음식이라면 속말로 개고기로 불리우는 보신탕을 꼽을수 있다. 비록 남녀로소 불문하고 보신탕을 즐겨하지만 전통관념에서 개가 비천한 존재였기에 개고기는 단지 보신용이거나 입맛을 돋구기 위해 먹지 잔치상이거나 명절날 식품으로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조선족 음식에 있어서 또 다른 종류는 찰떡을 꼽을수 있다. 중국어로 "打糕"라고 하듯이 말 그대로 쳐서 만든 떡이다. 찰떡은 익은 찹쌀밥을 떡메로 쳐서 만든 뒤 먹을 때 자그마하게 베여 깨고물이나 깨소금, 설탕가루 등에 찍어 먹는다고 한다. 조선족들은 매번 명절때나 결혼생일잔치, 손님접대 등 상에 찰떡을 올리는것으로 손님에 대한 정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또 다른 음식인 랭면, 랭면은 말그대로 "랭"한 음식이였고 또 조금 질긴 음식이였다. 새콤한 육수물이 한가득 담긴 국수 한사발을 먹노라면 그 기분은 어떻다고 말할수 없는 느낌이였다. 저가락으로 국수를 집어 입에 넣으면 국수오리가 입안 곳곳을 "점령하는듯한 느낌"이였고 목구멍으로 넘기느라면 마치도 가느다란 물고기가 목구멍을 따라 헤염치는듯한 느낌이였다. 국수를 먹은지 오래 지나도 당시의 청신하고 충실한 기분은 여전했다. 이것이 바로 연길의 랭면이 나한테 남긴 가장 깊은 인상이였다.
랭면맛은 국물(육수물)로 가늠한다고 한다. 기름이 둥둥 떠있거나 하지 않았다. 다음 시원한 맛 그것이였다. 육수물이나 국수나 차게 만든 다음 식용한다고 한다. 마치도 이렇게 해야만 여름날의 무더위를 식힐수 있었던 모양이였다.
연길사람들은 무더운 여름날에만 랭면을 찾는것이 아니라 심지어 동지섣달에도 랭면을 즐기기도 한다고 한다. 듣는바에 의하면 조선족들은 정월 초나흗날에 랭면을 먹는 풍습이 있으며 혹은 생일날에도 랭면을 먹기도 한다고 한다. 가늘고 길다란 국수오리로 만든 랭면을 먹으면 장수한다는것이다. 따라서 랭면은 일명 "장수면"으로 불리운다고 한다.
연길에서 맛본 조선족음식의 하나-순대, 순대는 순 조선족음식이다. 순대를 먹기전까지 나는 순대라는 이름을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다. 모양이 쏘세지처럼 생긴 순대는 쏘세지처럼 내용물이 육류가 아니라 돼지피와 찹쌀을 섞은것이였는데 맛이 아주 고소했다.
이처럼 연길의 음식만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것이 아니라 연길의 “빙천”맥주 역시 맛이 시원했다. 샘물로 만든 맥주는 보리꽃향기가 짙은 냄새를 풍기고있었는데 맥주의 진맛에 대해 이루다 말할수는 없지만 맥주 마실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맛의 진미를 알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적어둘것이 있다면 연길의 새하얀 입쌀밥이다. 어미지향으로 불리우는 강소의 입쌀을 많이 먹어봤지만 연길의 입쌀에 비하면 많이 뒤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기에 나의 딸애마저 밥공기를 들고 놓을줄 몰라했다. 이곳 사람들은 입쌀밥을 할 때 때때로 옥수수쌀이나 좁쌀을 조금 섞기도 했는데 새하얀 입쌀사이에 금황색을 띤 옥수수나 조가 끼여있는 모습의 쌀밥은 언녕부터 군침을 흘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방천을 구경한 뒤 한 조선족농가에 가 식사를 한적 있었는데 집 주변에 포도나무, 해당화나무가 심어져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는 푸르른 산이 보여 마치도 전원풍경을 보는듯한 심정이였다. 점심때 산바람에 뜨락의 나무잎과 곡물들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 들으며 우리는 조선족습관대로 온돌에 차린 밥상주위에 둘러앉아 금방 뜯어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또 금방 삶은 개고기를 맛보며 또 당지에서 빚은 산포도술을 마시며 저도 모르게 이곳의 진풍경에 취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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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소수민족가운데 조선족의 복장은 간결하면서도 깨끗하고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특점 등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있다. 특히 한국드라마 "대장금"이 중국전역에서 방영되면서 딸애는 드라마속의 녀주인공들이 입은 한복에 각별히 매혹되여버렸다. 매번 상가의 진렬대에 놓여있는 한복을 볼 때마다 딸애는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고 한복만 뚫어지게 바라볼뿐이였다. 이를 눈치챈 현지분들은 언녕부터 모든것을 준비해두고있었다. 우리가 경박호를 구경한 뒤 연길로 돌아오자 현지분은 딸애의 선물이라며 조선족복장을 꺼냈다.
포장을 뜯고 아름다운 민족복장을 본 딸애는 누가 빼앗아가기라도 하듯 재빨리 입더니 방안에서 왔다갔다하기도, 거울앞에 서서 자기를 비춰보기도 했고 때로는 춤자태를 나타내기도 하면서 즐거운 모습이였다.
일주일간의 연길려행-우리 가족의 인생에 있어서 한차례 뜻깊은 려행이였다(상해/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