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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감토그촌의 오늘과 지난날(장려한 70년 분투의 새 시대•일선조사연구)

본사기자 선감

2019년 08월 28일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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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챰도시 죰다현 감토그진 감토그촌은 금사강반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천성 데게현과 강을 사이두고 바라보고 있다. 1950년 10월, 중국인민해방군 제18군은 이 일대에서 금사강을 건너 챰도를 해방하는 전역을 개시했다.

“해방군은 촌민들에게 입쌀을 나누어주었는데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배불리 먹은 끼니였다.” 올해 82세에 난 저완핑춰는 “지금은 생활이 좋아져 가정의 4~5무에 달하는 밭에서 7000~8000근의 감자를 수확할 수 있어 절반이상을 팔아 1만여원을 벌 수있다”고 말했다.

오늘의 감토그촌은 년간인당 순수입이 만원을 넘어섰다. 배불리 먹지 못하고 따뜻히 입지 못하던 데로부터 전면적인 초요사회수준으로 나아가기까지 이 작은 촌마을은 새중국 창립 70년래 서장의 거대한 변화를 증언했다.

통로가 발전의 기회를 갖다주어

70년전, 금사강은 천연요새로서 강을 건느려면 완전히 소가죽배에 의거해야 했다. “전반 죰다현에도 괜찮은 도로가 한갈래도 없어 외출시에는 말을 타거나 보행할 수 밖에 없었으며 현성에 한번 다녀오자면 3~5일 걸어야 했다. 부대가 들어올 때 온마을에 전부였던 9개 소가죽배를 모두 해방군의 도강에 지원했다. ”저왕핑춰는 아직도 지난날이 기억에 생생했다.

그 때 도로보수대도 부대를 따라 감토그촌에 왔었다. 그들이 닦은 도로가 바로 서장으로 통하는 317국도였다. “길은 닦았으나 차량이 적었다. 당시에 전반 죰다현에는 차량이 몇대 밖에 안되였다.” 87세에 나는 감토그진 로진장인 쟝융츠런은 “지금은 문앞을 드나드는 차량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죰다현교통운수국 국장 자시는 “교통조건의 개선은 감토그촌에 발전의 기회를 갖다주었다.” 개혁개방 이후 감토그촌은 편리한 교통조건에 의탁하여 한갈래 운수대를 설립했다. 2018년 전촌 134호 가정들에서 화물운수에 종사하는 차량이 22대에 달하고 단거리 려객운수 소형뻐스가 15대에 달했다.

나라에서 서장의 기반건설에 대한 투입을 늘리는 기회를 잡고 2001년부터 감토그촌은 륙속 여러갈래의 공정대를 조직하여 챰도시구역과 죰다현 현성에 들어가 공사작업을 맡았다.

“3년전에 나는 자신의 건축공정회사를 등록하여 서장 각지에서 시정,수리, 도로 등 공사를 맡아 촌의 30여명이 공정대에서 일하고 있다.” 감토그촌 촌민 스자가 해마다 맡는 공정자금량은 2000만원을 초과했다. 현재 감토그촌 촌민들은 10여개의 공정회사를 설립했는데 시정부대시설, 원림록화, 수리시설, 도로건설 등 여러개 방면을 포함하여 적잖은 촌의 건장한 로동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공정대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전문보기:http://paper.people.com.cn/rmrb/html/2019-08/28/nw.D110000renmrb_20190828_6-01.htm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