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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첫 달탐측공사 분투려정 실록
2007년 12월 14일 08:21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2007년 12월 12일 인민대회당, 중공중앙, 국무원, 중앙군위는 우리 나라 첫 달탐측공사의 원만한 성공을 경축하는 대회를 소집하였다.

이 시각 지구에서 멀리 38만킬로메터 떨어진 달궤도에서는 중화민족의 수천년동안의 꿈을 실은 "상아1호"가 한창 가볍게 달나라를 돌고 있었다. 이는 중국우주기기가 지금까지 도달한 최고고도일뿐더러 중국우주사상 세번째로 휘황찬란한 리정표로 되는 순간이였다.

달탐측공사가 공식 가동되여서부터 "중국의 첫 달나라사진"이 완벽하게 선을 보이기까지 이 방대한 과학기술공사는 불과 3년이란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짧디짧은 3년은 중국우주항공사업이 반세기도 넘도록 걸어온 간단없는 튼튼한 발걸음을 축소해주었고 중화민족의 부단히 진취하는 확고한 신심을 견증해주었으며 또 수없이 많은 과학기술일군들의 1000여개의 밤에 낮을 이어가면서 기울인 부지런한 노력과 땀방울이 스며들어있음도 견증해주었다.

과학적리상과 국가의 실제기술능력을 아주 교묘하게 결부시킨 거사—우주공간시대에 대비해 중국의 우주항공연구일군들과 과학기술일군들은 거듭되는 연구와 론증을 거쳐 "중화"표 달탐측 공사목표와 과학목표를 내놓았다.

무한한 미지의 세계 그리고 심오한 우주, 급격한 변혁에 처해있는 과학기술형세. 동방대국의 눈길과 발걸음도 단 한시도 우주에서 멈춘적없다.

20세기 50년대부터 시작해 운반로케트기술의 급속한 발전, 인공지구위성의 성공적발사, 인류는 하나의 새로운 시대인 우주공간시대를 열어제꼈다. 달탐측 역시 랑만적인 가상세계로부터 현실로 돌아오면서 중국과학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세기 60, 70년대 구쏘련과 미국의 달탐측경쟁은 류례없이 치렬해지면서 인류의 첫 달탐측붐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1978년 5월, 미국대통령 안전사무고문이 카터대통령을 대표해 우리 나라 지도자들에게 1그람 상당의 암석견본을 보내왔다. 중국과학원에서는 신속하게 거의 100명에 달하는 과학기술일군을 조직하여 심층적 시스템연구에 돌입하면서 14편의 연구론문이 나왔다.

중국과학자들은 "언제 가면 중국인들도 자신들이 직접 가져온 견본을 연구할수 있을가?" 하고 개탄했다.

1993년, 우리 나라 관련 부서들과 전문가들은 한창 연구제조중인 "장정3호갑"운반로케트로 달나라에 중국에서 자체로 연구제조한 중국표징을 상징하는 우주선을 발사할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 나라 경제실력과 과학기술수준의 제한성 특히는 명확한 과학목표를 제기하지 못해 이 일은 결국 무산되고말았다.

그번의 대담한 구상이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우주연구인들과 과학자들은 달탐측을 하자면 달탐측에 필요한 과학적목표를 다그쳐 연구해야 한다는 도리를 알게 되였다.

20세기 90년대 새로운 달탐측붐이 지구촌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미국, 로씨야, 일본, 인도와 유럽우주항공국들이 잇달아 달탐측에 관한 새로운 구상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1998년, 국무원에서는 새로운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를 설립하고 산하에 국가우주항공국을 설치했다. 국방과학공업위원회는 시작 초반부터 달탐측을 포함한 국가우주사업의 장원한 전망계획을 연구하는데 착수했다.

2000년 11월 22일, 우리 나라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우주백서를 공포, 처음으로 "달탐측을 위주로 하는 우주심층탐측 사전연구"를 제기했다. 그리고나서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는 우주항공전문가 손가동원사에게 대상을 설정조직하여 론증하도록 청탁했다.

거듭 되는 연구와 론증을 거쳐 중국의 첫 달탐측공사 목표는 갈수록 명확해지기 시작했고 우리 나라는 첫 달탐측위성을 연구제조하고 발사하는데 돌입했으며 초보적으로 달탐측기본기술을 장악했다. 처음으로 달나라에 대한 과학적탐측을 전개하고 달탐측 우주공사시스템도 초보적으로 구축해 달탐측후속공사를 위해 경험을 쌓았다. 공사목표를 제정하는 한편 과학적목표도 서서히 륜곽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 달표면의 3위사진 포착하고 2. 달표면 원소함량과 물질류형 분포특점을 분석하고 3. 달나라 토양특성을 탐측하고 4. 지구와 달나라 공간환경을 탐측하기로 했다.

이런 공사목표와 과학적목표에는 하나의 령혼이 관통되여있었다. 즉 국제의 최전방에 서면서도 중국의 실정과 결부시켜 과학적인 리상과 국가의 실제기술능력을 최대한 교묘하게 결부시켜 독립적으로 연구제작하고 독립적으로 만들어내고 독립적으로 시험하여 완전히 자주혁신적인 "중화"표 달탐측공사를 만들어내는데 최선을 다하는것이였다.

가동, 공략, 결전—“소핵심, 대협력”원칙으로 달탐측공사조직관리시스템 그리고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세차례 "대전역"에서 승리를 획득했다.

상아는 마침내 이른봄의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아름다운 날개를 펼쳤다.

2004년 1월 23일, 이날은 초이튿날이였다.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탁월한 견식과 과단성있는 결책으로 이날 국무원에서는 마침내 달탐측공사대상을 공식 비준했다.

"정력을 한데 모아 큰일을 해내고 대사를 좋은 일로 되게 해야 한다"는 중앙의 포치에 따라 참신한 달탐측공사조직관리시스템인 "소핵심, 대협력"원칙이 재빠르게 구축되였다…

2004년 2월 19일, 달탐측공사지도소조는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설립되였다.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 발전개혁위원회, 과학기술부, 재정부, 총장비부, 중국과학원 및 우주과학기술집단 관련 지도자들로 구성된 소조는 공사에 대한 총체적조률지휘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2004년 2월 25일, 달탐측공사지도소조는 "달탐측공사연구제조총적요구"를 채택하고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 부주임이며 국가우주항공국 국장인 란은걸을 공사총지휘로, 손가동을 총설계사로 임명하고 구양자원을 달나라응용과학수석과학자로 초빙한 동시에 공사이름을 "상아공사"란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2004년 3월 15일,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는 첫번째 달탐측공사사업회의와 총체적조률회의를 소집하고 총적기술방안과 총적설계과정을 조률하고 동시에 많은 우주항공전문가들을 위성, 운반로케트, 발사장, 탐측통제 및 지상응용 등 5개 시스템의 총지휘와 총설계사로 임명, 아울러 전국적범위에서 급별에 따라 규모가 방대한 연구제조시험대군과 전국범위에서의 부대적인 대협력을 구성했다.

2004년 6월 2일, 중앙편제위원회에서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 달탐측공사중심 설립을 비준하고 이 중심에서 공사의 시스템에 대한 론증, 총체적설계 및 대상실시를 구체적으로 책임지고 아울러 달탐측공사지도소조판공실 사무를 맡도록 해 이 중심이 사실 공사의 최전방지휘부로 되였다.

막강한 조직관리체계의 인솔하에 중국의 첫 달탐측공사의 설계, 연구제조, 생산 등 제반 시스템이 빠른 절주, 높은 능률의 "급속가동운영"에 돌입했다. 3년이란 짧은 시간만에 3단계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

2004년은 달탐측공사의 시작의 해로 불리운다. 이해에 선후하여 발사장시스템총체적기술방안제정, 탐측통제시스템총체적설계방안제정, 지상응용시스템설계방안제정, 위성시스템방안에 대한 설계 및 운반로케트시스템에 대한 초보적연구를 완수하고 아울러 일련의 관건기술공략을 시작했다.

2005년은 달탐측공사의 공략의 해였다. 이해에 주로 품질믿음성을 중심으로 초반견본에 대한 연구제조와 시험을 전면적으로 전개하고 시스템간의 접속조률과 기술공략을 진행하면서 공사의 기술위험이 점차 해소되고 시스템간의 접속관계도 명확해졌으며 각 시스템기술상태 역시 확정되였다.

2006년은 달탐측공사의 결전의 해였다. 상아1호 정식견본위성의 전반 장치, 측험과 시험이 마무리되였다. 동시에 또 장정3호갑 요격14로케트의 전반 장치와 측험도 완성되고 측험통제, 발사장 및 지상응용시스템지상설비에 대한 연구제조와 시스템건설도 마무리되였다. 총적으로 2007년의 임무수행능력이 전부 구비된것이다.

2개 100%의 노력으로 100%의 성공을 가져왔다. —5대 시스템은 각자가 자기 기능을 발휘하고 또 협동배합하면서 매 환절의 “제로 결점, 제로 의문점, 제로 고장”은 "첫 발사의 반드시 성공"을 확보해주었다.

무거운 과업은 추호의 결점이 있어도 안된다. 달탐사공사는 5대 시스템으로 구성되였는데 그 어느 시스템과 환절이든지 모두 전반 공사의 성패에 관계되였다.

위성시스템 궤도설계의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저명한 업계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지구, 달, 해라는 복잡한 3개 환경에 대해 반복적인 분석과 해답을 기했으며 비행선로를 정확하게 설계했다. 제어, 유도와 통제시스템의 임무수행능력과 믿음성을 제고하기 위해 그들은 달환경에 수응하는 자외선센서를 연구개발하고 2개 축 구동 통제기술과 3체조합통제기술을 연구활용했으며 제어기와 중요한 센서에 대해 여남이 있는 설계와 고성능통제계산법을 채용했다.

유효적부하는 다만 위성시스템가운데 하나의 부분시스템이지만 "상아의 눈"으로 불리운다. 달의 립체적화면을 그리려면 일반적으로 사진기 3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운수로케트 능력의 제한으로 유효적부하가 너무 많거나 너무 무거우면 안되기에 연구인원들은 광각렌즈와 교묘한 캘린더시스템 설계를 리용하여 3개 광선루트로 나누어 사진기 한대로 정시각, 전시각, 후시각 3폭의 2차원 원시적 수치화면을 찍어낸 뒤 재조합을 거쳐 3차원 립체화면을 얻어냈다. 이는 구조를 간소화하고 중량을 줄였을뿐만아니라 원가도 대폭 낮추고 공간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을 제고시켰다.

"상아"탑재운수임무를 맡은 힘장수 장정3호갑 로케트는 우리 나라 장정로케트 가족성원가운데서도 "총아"로 주목받고있으며 이미 14차나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하지만 상아1호의 만에 하나의 실수라도 없게 하기 위해 공정기술인원들은 먼거리측정발사통제기술을 채용하고 통제시스템의 시스템급 여남있는 기술을 응용하는 등 대량의 기술 개진과 혁신을 거듭했다.

발사를 책임진 서창위성발사쎈터에서는 발사의 조직지휘, 위성로케트의 테스트기술 근부보장, 연료의 첨가주입과 발사, 로케트의 1, 2급 비행구간의 측량통제임무를 감당할뿐만아니라 또 발사임무를 위해 통신, 기상 등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 발사장의 종합보장능력을 더한층 제고하고 상아1호 위성발사의 기술요구에 만족을 주고저 발사장시스템은 발사대, 고압시스템, 주입과 가스공급시스템 등에 대해 전면적으로 개조했다.

측정통제임무를 맡은 북경우주항공통제쎈터와 여러개 우주항공감측통제쎈터, 지상소와 해상측량선들에서 운수로케트의 발사와 위성의 전반 비행기간의 궤도측량, 원격측정과 감시, 원격통제조작, 비행통제 등 임무를 감당하고 고정밀측정궤도를 통해 지상응용시스템의 과학적수치처리를 위해 궤도수치보장을 제공했다. 상아1호 위성발사의 새로운 요구에 수응하기 위해 시스템은 총체적 기술설계, USB설비개조와 18메터 새로운 안테나시스템구축, 위성의 초반 견본과 정식견본 단계의 위성과 지상간의 측정통제련결, USB-VLBI종합측정궤도시험, 비행통제기술조률 등 일련의 준비작업을 완수했다.

지상응용시스템은 달탐사공사의 출발점일뿐만아니라 또한 립각점으로 된다. 중국 첫 달탐사의 과학적목표는 이곳에서 제기되였고 달탐사공사의 과학적가치도 이곳에서 실현되였다. 달탐사공사의 실시를 담보하기 위해 그들은 모든것을 처음부터 시작했다. 즉 지상응용과학연구대오를 처음부터 구성하고 달탐측의 각종 수치와 기준, 양식을 구축하는것을 망라한 지상응용시스템의 총체적방안을 처음부터 설계론증했으며 달탐사수요에 적응하는 각종 지상시설을 처음부터 설계구축함과 아울러 관련 시스템과 련결테스트도 실시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호방한 심정에서도 랭정을 잊지 않았다. 2007년 2월, 달탐측공사지도소조에서는 설계와 생산의 "2가지 100%" 품질 대검사를 더한층 깊이 실시할것을 재차 제기하여 모든 스탠드 얼로운, 부분시스템과 시스템의 총체적설계에 대해 전면적으로 복사, 심사하고 연구실공정팀에까지 심입함으로써 "100%"를 보장했으며 모든 제품의 생산도 전면적으로 복사, 심사하고 직장 공정단에까지 심입하여 "100%"를 보장했다.

1000여개의 낮과 밤의 고생과 기여, 헤아릴수 없는 관심과 지지는 마침내 한폭, 한폭의 정지화면을 바꿔왔다.

2007년 10월 24일, 상아1호가 달로 날아가려는 중화민족 천년의 꿈을 지니고 서창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여 정확히 궤도에 진입했다.

11월 5일, 상아1호가 성공적으로 달과 "손을 잡고" 달을 에워싸고 도는 중국의 첫 위성으로 되였다.

11월 7일, 200킬로메터 사명적궤도에 정확하게 진입한것을 표징으로 상아1호는 중국력사상 거리가 가장 먼 "우주공간장정"을 완수했다.

11월 26일, 상아1호가 전송해온 "첫 달화면"이 완벽하게 선을 보여 중국의 첫 달탐측공사의 원만한 성공을 선언했다…

중국의 첫 달탐사 성과와 휘황은 일망무제한 우주공간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중국의 우주항공사업은 다시금 떳떳하게 룡두를 쳐들고 세인들에게 간고분투, 대담혁신, 단결협력의 중화민족은 기필코 새로운 기점을 부단히 창조하여 위대한 부흥의 페지를 엮어갈것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과시해주었다!(신화통신)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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