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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2008년 02월 18일 11:12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태여나서 지금까지 나는 중국내에 살았기때문에 주위 사람들한테 조선족으로 분류돼왔고 자기도 자신을 조선족으로 생각해왔다. 무슨인 무슨족이냐는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나 나는 주위의 조선족친구들보다는 민족심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인것 같다. 그것은 내가 북경이란 곳에 와서 대학생행세를 하면서부터가 아니다. 조선족마을에서 태여나 줄곧 조선족마을에서 자라면서도 나는 남들처럼 조선족이란 개념에 별로 집착하지 않은것 같다.

이런 기억이 있다. 아직 시골에 있을 때 한번은 나와 동창생 한명 그리고 한족지구에서 우리 마을 학교의 한어교원으로 온 청년 한분 이렇게 셋이 대학입시 문제를 의론하고있었는데 그날 어떻게 화제가 민족심에 어쩌니 하는 쪽으로 흐르게 되였다. 그날 아마도 내가 민족심이 좀 모자라는 말을 했던 모양이다. 나의 동창친구와 한족지구에서 온 그 조선족 청년이 꽤나 심한 말로 나를 몰아붙였던것 같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본에서 어떤 사람이 쉰이 돼서 우연히 자신의 조상이 조선인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는데 그 사람은 여러가지 불리익도 불사하고 기어코 자신의 조선인 정체를 밝히고 떳떳한 조선인으로 세상사람들앞에 거듭났다는것이다. 그때 그 친구 두 분은 그 일본 조선인에 대해 심히 존경하고 감복하는 표정이였다. 그러나 나는 《뭐 별거 아닌거 가지고…》하고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던것 같다.

대학 1학년땐가 나는 나의 일기책에 이런 말을 적은적이 있다. 《나는 우선은 진리의 아들이고 그 다음 민족(조선족)의 아들이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아들이다.》 그때 내가 피력하려 했던것은 《나는 태양의 아들이다. 땅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뜻일것이다. 즉 나는 온 세상을 품고 사는 사람이지 작은 울타리에 갇힌 시골놈이 아니란 말일것이다. 작은 틀, 작은 울타리에서 탈피하려는 나의 이런 의식과 노력은 그후 나의 인생려정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겨놓았다.

1979년 나는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과에 입학했다. 반은 자의, 반은 타의로 들어간 과인데 나는 학교 가서 두달도 못지나 맘이 변했다. 그리고 1년후에는 중문과로 전공을 바꾸게 되였다. 《이십년이나 배운 조선어를 대학까지 와서 배워야 되나.》 겉으론 이런 지론이였지만 내가 더 문제시했던것은 조선어와 조선족이라는 이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에서 놀고싶었던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대부분 시간을 《한족지구》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19세에 조선족마을을 떠난 뒤 약 7년을 북경에서 보냈고 약 14년을 해남도에서 살았고 2002년 새해벽두부터는 줄곧 심수에서 살았다. 즉 북경에서 대학을 졸업하고나서는 대부분 시간을 남방에서 보냈다.

1985년 내가 해남도의 해남방송대학에 교원으로 취직하고있을 때만 해도 그 학교 교장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이 김혁일이라는 사람은 해남도에서 유일한 조선족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 해남도 중부의 어느 현 공로국에는 옛날 일본군 위안부로 잡혀왔던 할머니 한분이 귀국도 못하고 거기 홀로 살고계셨고 남쪽끝의 삼아에도 옛날 일본군에게 일군으로 끌려왔던 한국인 한분이 당지의 한 려족녀성과 가정을 이루고 살고있었다.

해남도에서 나를 조선족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들 나를 북방인 혹은 대륙인으로 치부했다. 간혹 나의 조선족 배경을 거드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그저 지나가는 얘기로 할 정도다. 나는 해남도 사람들이 자주 쓰는 《대륙인》이라는 말이 상당히 우습게 들렸다. 그럼 자기네는 스스로 섬사람이라는것을 강조하는것으로 되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틀리지는 않는다. 다 같은 중국인이지만 그들은 해남도사람이고 나같은 북쪽에서 온 사람은 《대륙인》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또다시 조선족이라는 낱말을 되씹어보게 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내의 한족이나 다른 소수민족 앞에서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이라는 상대앞에서였다.

먼 곳 바다끝이라고 해서 천애지각이라고 불리던 해남도, 그곳에서 적어도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겨레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고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곳에서 처음 만난 어떤 한국인은 나를 교포라고 일컬었다. 공항에 통역으로 마중나갔는데 내가 우리 말로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자 그분이 《아, 교포분이셨군요.》하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자신이 교포로도 불려질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물론 옛날부터 라디오에서 재일동포, 재중동포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실제로 누가 나보고 교포라고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왜서인지 그때 나는 교포라는 말이 아주 따뜻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때 나는 한국에서 오신분들을 모두 고국에서 오신 동포로 생각하고 대해주었다.

1994년이던지 1995년이던지 출판건때문에 나는 한국의 을유문화사라는 출판사와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은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조상이 살던 곳이여서 고국인곳, 멀리 떨어져있어서 늘 마음의 고향이던 곳》 한국에 대한 이런 아련하고 따뜻한 마음 한구석은 조선족이면 누구나 다 간직하고있는것이 아닐가?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부딪친 한국과 한국인은 옛날에 우리가 단순히 고국과 동포로 생각해왔던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리고 점점 접촉과 교류가 잦아지면서 조선족들은 자신들이 조선족일뿐이고 조선족일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였다. 그리고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것을 번번히 확인하게 되였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인들에게 같은 동포로서 《이질감》을 느꼈던것은 제3자를 통해서였다. 1990년대초반이라고 생각된다. 어느날 북경에서 한 친구의 사촌동생을 만났다. 한국회사가 맡은 리베리아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기한을 못채우고 돌아온 청년이다. 그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한국인과 조선족은 동포라는 관계외에도 고용주와 로동자, 돈있고 힘있는 자와 못살고 힘없는자, 멸시하는 자와 멸시를 받는자…로 구분될수도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 새카맣게 탄 조용하고 온화한 얼굴이 조용한 어조로 이 모든것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내심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개별사례가 언제부턴가는 아주 보편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친지, 형제, 친구, 고향사람…들을 통해 류사한 이야기들을 늘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많은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세상의 리치란 큰일 작은 일 다 통하는것이다. 다 비슷한 리치다. 기실 오늘날 조선족과 한국인의 관계를 잘사는 형과 못사는 동생, 혹은 좀 잘 사는 큰집과 좀 못사는 작은 집의 관계로 볼수 있겠다. 개개인 모두가 그렇다는것이 아니고 총체적으로 그렇다는것이다. 물론 잘사는 조선족이 있다. 못사는 한국인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은 개별에 불과하다. 한국인과 조선족이 정말 평등한 한가족이 되려면 조선족경제가 빨리 성장해야 한다. 다 같은 교포지만 한국인들의 눈에 분명 재일동포가 다르고 재미동포가 다르고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과 로씨야의 고려인이 다르다.

나는 또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중국은 조선족의 시가이고 한국은 조선족의 친정이라고. 그런데 이 《출가외인》의 조선족은 좀 못사는 딸이다. 정말 친딸과 친어머니의 사이라면 친정어머니는 대개 못사는 딸을 더 아껴준다. 그러나 한국이란 친정에 가서 조선족들은 그런 애정을 못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한국은 조선족의 친어머니는 아니란 말도 된다. 혹은 친어머니는 친어머닌데 상당히 랭정한 친어머니란 말이 되겠다. 그럼 다음에 따라오는 문제, 당신은 친정에 정이 더 있나요 시집에 정이 더 있나요? 이건 애보고 아빠가 좋냐 엄마가 좋냐고 묻는것과 똑같은 문제일것이다. 만약 그 물음이 롱담이 아니라면 그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질문이라 하겠다.

또 근사한 문제 하나, 한국팀하고 중국팀이 경기하면 당신은 누굴 응원합니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기실 묻는 자가 생각하는것만큼 간단하고 쉬운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다. 내가 중국에 있으면 나는 한국편이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 가있는다면 나는 아마도 중국편이 될것 같다. 그럼 제3국에 있으면? 그건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일방적으로 밀리는 약자를 응원하게 되리라.

중국에서 중국인들앞에서 조선족은 주인이다. 약자가 아니다.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다. 고로 나는 중국인들앞에서는 자신이 조선족이라는것을 늘 잊고 산다. 그러나 한국인들앞에서는 좀 다르다. 나의 소속인 조선족은 한국인들앞에서 아직은 약자다. 대등한 관계, 평등한 관계, 정상적인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있다. 즉 한국인들에게 조선족은 못사는 친척이다. 시골사람들이다. 고로 나는 한국인들과 만나면 늘 자신이 조선족이라는것을 각인시킨다. 덕분에 나는 50살이 다 돼가는 나이에 다시 한번 자신의 조선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였다(심수 김혁일).

  래원: 료녕조선문보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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