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벌전쟁이 실패한후 중국공산당원들은 몸에 묻은 피를 씻고 전우들의 시체를 묻은후 총대를 들고 장개석 새 군벌에 반항하여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였다.
7월 27일, 공산당원 엽정이 거느린 국민혁명군 제11군 24사의 1만 2,000여명은 강서성 구강을 떠나 남창에 도착하였다. 이 부대에는 박인, 김철강, 방월성 등 많은 조선족용사들이 있었다. 하룡이 지휘하는 제20군도 남창에 도착하였는데 이 부대에도 강석필, 홍범기, 김래준 등 수십명의 조선족용사들이 있었다.
8월 1일 새벽 2시, 주은래, 주덕, 하룡, 엽정, 류백승의 지휘밑에 목에 붉은 댕기를 매고 팔에 흰수건을 두른 3만여명의 용사들이 참가한 남창봉기가 시작되였다. 200여명의 조선족용사들이 이 봉기에 참가하였다. 봉기군 제20군은 적 제5방면군의 총지휘부를 맹공격하였다. 그러나 먼저 총지휘부옆의 높은 성마루를 점령해야 했다. 적들은 센 화력망으로 성마루의 입구를 봉쇄하였다. 조선족전사 강석필과 홍범기는 비발치는 적탄을 무릅쓰고 전우들과 함께 부근의 민가지붕으로 올라가 사닥다리로 성마루에 올라섰다. 그들은 높은 성마루에서 아군의 진공을 엄호하면서 치렬한 전투를 벌려 끝내 적의 총지휘부를 짓부셔버렸다.
봉기군 제24사 72퇀은 적 제3군 23퇀과 24퇀을 들이치는 전투를 시작하였다. 박인, 김철강 등 72퇀의 조선족용사들은 맨 앞장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였다. 봉기군 제20군 교도퇀과 6퇀은 적 제9군 79퇀, 80퇀을 포위공격하였다. 교도퇀의 김래준 등 조선족용사들은 전우들과 함께 맹호같이 적진에 뛰여들어 많은 적을 포로하였다
새벽어둠을 타고 전투는 계속되였다. 봉기군 제24사 71퇀은 적 제6군 57퇀을 소멸해야만 했다. 적들은 한 교회당을 차지하고 맹령한 화력으로 봉기군의 진격로를 가로막았다. 아군은 인차 결사대를 묶고 교회당을 공격하였다. 조선족전사 방월성도 이 결사대에 참가하여 적진을 향해 육박해 들어갔다.
아침 5시, 남창시는 봉기권에 의해 완전히 점령되였다. 남창봉기는 국민당반동파에 반항하여 중국공산당에서 울린 첫 총소리이며 중국공산당이 독립적으로 무장혁명을 령도한 첫 걸음이였다. 이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첫 무장봉기에서 쌓은 조선족용사들의 공적은 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