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국내혁명전쟁시기에 강서성 서금을 중심으로 한 중앙혁명근거지를 중앙쏘베트구역이라고 불렀다. 포병전문가로 이름난 무정(武亭)은 일찍 19세에 하북성 보정륙군군관학교 포병과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그이듬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22세에 벌써 포병중좌로 되였다. 그는 중앙쏘베트구역에 온지 얼마 안되여 홍군제3군단의 포병련장으로 되였다. 이는 중국로농홍군의 첫 포병련의 련장으로서 군단 전위서기 팽덕회를 따라 싸웠다.
중앙쏘베트구역의 조선족투사들은 쏘베트구역의 당과 정부의 크나큰 중시와 관심을 받았다.
1931년 11월 7일에 중화로농병쏘베트 제1차 대표대회가 서금에서 성대히 열렸는데 조선족홍군전사 최정무가 조선족의 대표로 이 대회에 참석하고 대회발언까지 하였다. 그는 여러 민족 대표들과 함께 모택동을 주석으로 한 중화쏘베트공화국 중앙정부를 선거하였다. 1934년 1월 21일에 중화쏘베트 제2차전국대표대회가 서금에서 열렸다. 당시 홍군 총병참부 참모장으로 있던 양림은 조선족을 대표하여 이 대회에 참석하였다. 그는 대회주석단 성원으로 당선되였고 중화쏘베트 공화국 중앙집행위원으로 선거되였으며 모택동주석과 중공중앙국 서기인 주은래의 접견을 받았다.
1934년 10월, 세계를 뒤흔든 2만 5천리 장정이 시작되였다. 홍군대학과 팽양보병학교, 공략보병학교 및 특과학교 등 4개소의 홍군학교 장병들로 홍색간부퇀을 편성하였는데 양림은 이 간부퇀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였다. 홍군특과학교 교장 겸 포병영장으로 있던 무정은 중앙군사위원회 기관인원들로 구성된 군사위원회 제1종대 제3제대의 사령원 겸 정치위원으로 임명되여 장정의 길에 올랐다.
장정의 길에서 양림은 퇀장 진갱, 정치위원 송임궁과 함께 간부퇀을 거느리고 수많은 적들이 앞길을 가로막고 뒤로 추격하는 험악한 조건하에서 악전고투하고 강행군을 하여 귀주성에 들어가 오강천험돌파전투를 지휘하고 준의를 거쳐 운남, 사천, 귀주를 우회하며 싸웠다.
1935년 4월 29일 오후, 간부퇀은 금사강반의 권양기나루터를 점령하라는 중앙군위의 명령을 받았다. 중공중앙 총서기 장문천이 친히 간부퇀에 와서 홍군의 북진전략을 관철함에 있어서의 이번 전투의 중대한 의의를 강조하면서 《5.1》절전에 나루터를 탈취할것을 지시하였다. 양림은 전사들을 거느리고 찌는듯한 더위를 이겨내며 일주야에 90킬로메터 길을 강행군하여 금사강반에 이르렀다. 양림의 지휘밑에 전사들은 비호처럼 적진에 덮쳐들어 적보초병을 까눕히고 나루터의 적 600여명을 몽땅 사로잡았다. 이리하여 《5.1》절 전야에 금사강반을 점령하고 임무를 원만히 완수하였다. 뒤이어 그들은 첩첩한 대설산을 넘고 망망한 초지를 지나 끝내 섬북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