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봄,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15병퇀은 70일간의 행군을 거쳐 5월 7일에 장강이북에 도착하였다. 장강천험을 뛰여넘어 전국을 해방하는 전투에서 많은 조선족관병들이 영웅적정신으로 힘차게 싸웠다. 특히 장강도하작전의 서막인 단풍진전투에서 연변의 원 길동부대에 속해있던 제156사 466퇀은 주력부대의 순리로운 도하작전을 위해 불후의 공훈을 세웠다.
단풍진은 무한에서 동쪽으로 50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는데 당시 제4야전군의 강행도하지점의 하나였다. 당시 단풍진에는 국민당군 백숭희의 126군 304사 912퇀 제3영과 황안보안퇀 일부분이 주둔하고있었다.
5월 13일 밤, 전투가 시작되였다. 주공임무를 맡은 466퇀 제3영은 예정된 작전방안대로 적의 거점을 향해 공격하였다. 《비수련》의 임무를 맡은 제9련은 련장 차춘모의 지휘밑에 적의 화점을 짓부시고 부두를 향해 진격하였다.
약 5시간동안의 격전을 거쳐 단풍진에 있던 적을 섬멸하고 전투는 승리적으로 결속되였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적 487명을 소멸하고 기관총 18정, 총 430자루, 배 68척을 로획하였다. 이 전투에서 희생된 43명 렬사들중에는 차춘모와 경위련 지도원인 박량호 등 9명의 조선족렬사들도 포함되여있다.
단풍전투후 아군은 로획한 배를 타고 5월 14일부터 장강도하작전을 시작하였다. 466퇀 2영을 주공대로, 3영을 제2제대로 하여 도하에 성공한후 또 장강남안에서 적의 배 300척을 로획하여 제4야전군의 도하에 큰 기여를 하였다. 5월 16일과 17일에 무한 3진이 드디여 해방되였다.
이밖에 47군 138사 416퇀의 《강철8련》도 의창에서 《수상결사대》를 무어가지고 남안의 적진에 가서 똑딱선과 큰배를 탈취하여 전 퇀의 도하를 보장하였다. 그리고 장강을 건너간후 형제부대들과 함께 강을 거슬러올라가면서 의창, 의당, 삼두평에서 적 6천여명을 섬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