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오전, 동북민주련군 독립4사(1948년에 중국인민해방군 166사에 편입) 45렬사가 청원현 창석과 황금보전투에서 장렬하게 희생된 59돐에 즈음하여 무순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무순시조선족문화관, 청원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45렬사 추모기념성묘활동이 청원현 남구전진 북요보혁명렬사릉원에서 장중히 거행되였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북요보렬사릉원에는 무순시 각계인사와 청원현 각계인사 200여명이 모였다. 이날 새벽 우뢰와 번개속에 폭우가 쏟아지더니 낮에는 렬사들의 공덕을 기리는듯 천고마비의 가을날씨가 더없이 쾌청하여 추모성묘대회의 정중한 분위기를 한결 짙게 했다.
남만민주련군은 사보(四保)림강전역에서 전략적 승리를 거둔후 1947년 5월 17일부터 7월 2일까지 강대한 여름철공세를 발동하였다. 바로 59년전인 1947년 6월 20일 황혼, 독립4사 2퇀 2영은 국민당 207사 전연진지 창석에 몰래 진입했다. 영장 조세걸, 교도원 무궁은 련장들을 거느리고 비를 무릅쓰고 창석주변 지형을 정찰하고 전방에 보초를 세운후 부대를 주둔시켰다. 당일저녁 남잡목에 주둔했던 국민당군이 정보를 입수하고 207사의 한개 보안퇀을 파견하여 2영을 포위하였다. 적들은 21일 려명전에 돌연적으로 진공을 발동했다. 2영의 전사들은 국민당군대의 포위에 든 불리한 상황에서도 한사람도 뒤걸음치지 않고 용맹하게 싸워 적군 40여명을 소멸하였지만 대신 무궁교도원과 40여명의 전사들이 포위돌파중 혼하를 건너다가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7월 1일 저녁, 황금보에 주둔했던 독립4사 사령부는 남잡목의 207사 적들이 황금보로 이동한다는 정보를 얻고 3퇀 1영은 왕자인사장의 명령에 따라 정보가 새여 나가지 않게 황금보를 봉쇄하고 밤을 타 황금보 입구의 고지와 길가 야생 수림속에 매복했다. 7월 2일 려명, 적 207사 한개 영이 포위망에 들어서자 아군은 박격포, 60미리포로 맹렬한 공격을 들이대 30분도 안되는 사이에 적군 200여명을 섬멸하고 또 200여명을 포로했다. 아군은 퇀 통신참모 리모모와 전사 한병화 등 4명이 전사했다. 이번 전투에 국민당 왕패군—청년사의 위풍을 꺾었고 그때부터 적들은 독립4사를 용맹한 《고려부대》라고 불렀다.
추모대회에서 청원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채동호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렬사묘에 헌화하고 조선의용군전사이며 원 독립4사 1퇀 정치처 부주임인 최강이 당년 희생된 전사들의 영웅사적을 회억하였으며 전국인대대표이며 렬사 유가족인 김죽화와 청원현로년협회 부회장 리옥순, 청원현조선족소학교 학생대표 류해단,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부회장 변시홍 등이 각 분야를 대표하여 발언하였다. 로전사들이 렬사들에게 술을 붓고 절을 올렸다.
45명 투사들의 위대한 공훈과 만고에 빛날 업적을 기리여 《북요보렬사릉원》으로 찾아온 래빈들은 선렬들의 피와 목숨으로 바꾸어온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을 아끼고 렬사들의 혁명전통을 이어받아 렬사들의 고귀한 혁명정신을 자손후대에 길이길이 전해갈것을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