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해남도 오지산에서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탄생한 혁명대오 《홍색랑자군》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해방전쟁시기 리홍광지대가 장백산밀영에서 조직, 육성한 조선족녀성구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다.
당년 리홍광지대의 조선족 《홍색랑자군》들은 해방전쟁과 항미원조 전선에서 피흘리며 싸웠고 해방초에는 혁명의 수요에 따라 동북 각지의 문화, 교육 분야, 정부 부문에 배치받았다. 수십년이 지난 오늘 이들중 대부분이 고인이 되고 살아있는 분들이라 해도 이젠 8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들이다.
지난 5월 13일 원 리홍광지대 교도대 부교도원 최강선생이 매하구에서 《조선의용군사》 강좌를 하는 계기로 당년의 일부 리홍광지대 녀성구대 대원들이 다시 모여 지나온 일들을 회고하였다.
1946년 8월, 리홍광지대에서는 무송에다 군정학교를 창설, 1대(군대정치간부대)5구대는 100여명 녀성의용군으로 구성된 《랑자군》이였다. 이 가운데 장경숙, 림정실, 하현호 등 10명은 남자대원들과 함께 총을 메고 포성이 울부짖는 전선으로 떠났다. 이중들 일부는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서 보귀한 생명을 바쳤다.
1946년 11월, 《랑자군》 은 남자들과 함께 무송에서 눈보라를 헤치며 장백림해를 10여일간 강행군하여 장백으로 이전, 장백에서 옴병으로 한겨울에 로천온천에서 20여일간 약수치료를 받기도 했다. 먹을것이 없어 썩은 좁쌀로 끼니를 에웠지만 그들의 혁명투지는 여전했다. 1947년 4월 림강보위전 승리로 리홍광지대 군정학교는 다시 무송으로 돌아가게 되였는데 녀성대원들은 무송에 남아 일부 남자들과 함께 심산속에 들어가 약재채집, 옥수수를 심으면서 문화지식을 배우고 군사기술을 습득하였다.
1948년 4월 리홍광지대 군정학교가 청원현의 남산정자로 이동했다. 료심전역을 앞두고 남자학원 대부분이 전선으로 떠나고 녀성구대 전원은 군복을 벗고 새 해방구건설터로 갔다.
《랑자군》들은 정든 리홍광지대를 떠나 동북 각지의 문화, 교육 분야, 정부 부문 등에 배치받아 해방초기의 주요 조선족 녀간부로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