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덕이라 하면 장춘시 조선족로인협회 로인들중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1947년에 참군하여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항미원조 조국보위전쟁 승리를 위해 피땀을 흘렸고 그 후에는 해방군 후근사업에서 돌출한 성과를 올려 부대에서 수차 표창 받았다.
입대해서 자동차대에 편입된 전봉덕은 사평전역, 료심전역, 평진전역, 화중남전역, 형보전역의 포화속에서 차를 몰고 달렸는데 그 려정은 무려 4만여킬로메터나 된다. 당시 부대에서는 운전기술이 높은 그에게 안전행차기준병이란 칭호를 주었다.
해남도전역때 전봉덕은 소속 자동차대의 전우들과 함께 군기계 수리소를 협조하여 자동차에 있던 발동기를 뜯어 돛배에 장치하는 일을 맡았다. 그들은 침식을 잊으며 악전고투하여 80척의 기계 돛배를 만들어 인민해방군 해남도상륙에 마멸할수 없는 공을 세워 대공 1차를 받았다.
1950년 10월 조선전쟁시기 자동차수리반 반장으로 있은 그는 자동차부품이 엄청 부족하고 로획한 부품을 제때에 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우들을 이끌고 1000여일 동안 연차량 3500대, 발동기 45대, 트럭 8대, 땅크 2대를 수리하였으며 자동차 부품 1500여건을 수집함으로써 전선에서 급히 수요하는 물자를 제때에 공급해주었다.
전봉덕은 자동차수리임무를 맡은 외 차대를 수행하여 최전방에 전투물자를 수송하는 임무도 맡았다. 어느 한번 적군 비행기의 소사로 운전사 진홍덕이 희생되자 그는 즉시 차를 몰고 전선의 탄약공급을 보장해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전봉덕은 1981년 연변군분구 후근부 부부장으로 있다 퇴직하기전까지 줄곧 부대의 후근사업을 해왔다. 그는 부대의 정규화훈련과 국방공사시공을 위해 수없는 성과를 거두어 선후로 수차 공을 세웠다.
군무생활 35년, 전봉덕은 선후로 대공 2차, 2등공 2차, 3등공 4차를 수여받았고 조선정부에서 발급한 전공상을 받았으며 1956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해방메달을 수여받았다. 뿐더러 제2차 전 군 후근사업적극분자대표회의에 참가하여 영광스럽게 모주석과 기타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다.
비록 80고령에 이른 로인이지만 전봉덕은 오늘도 새세대관심사업에 여생을 바치고있는바 차세대를 위해 적지 않은 현금과 물품을 기부했다(박춘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