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혁명이 실패한후 중국공산당은 남창기의를 발동하여 무장으로 국민당반동파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에 반항하는 첫 한발의 총성을 울렸으며 이때로부터 인민군대의 창건사업을 시작하였다. 1927년 9월, 모택동이 령도하고 발동한 추수기의에서 중국공농혁명군 제1군 제1사가 성립됨으로써 신형의 인민군대를 창립하는 토대를 닦아놓았다. 1928년 5월, 주덕이 남창기의에서 남은 군대를 인솔하여 모택동이 령도한 군대와 정강산에서 합류하여 중국공농홍군 제4군을 창건하였다. 이와 동시에 당은 기타 지방에서도 근거지와 홍군을 창건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항일전쟁이 폭발한후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팔로군, 신사군은 전쟁가운데서 부단히 장대해졌다. 항일전쟁이 결속될 때 인민군대는 이미 120여만명으로 발전하였으며 민병은 220만명에 달하였다. 령도를 강화하기 위하여 중앙군위는 팔로군, 신사군을 중국인민해방군으로 재편하고 5대 야전군 주력부대로 나누었다. 그후 무수한 피어린 전투끝에 국민당의 800만군대를 격파하였다. 해방후 인민해방군은 당의 령도밑에 혁명화, 정규화, 현대화의 길에서 부단히 전진해왔다. 또한 무산계급정권을 보위하고 외래침략을 막아내는 영광스러운 사명을 수행하고있다(중국혁명박물관 연구실 류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