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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임무를 수행하던 나날에
동란년대에 지홍수씨가 겪은 특수한 경력
2007년 03월 13일 07:59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편집자의 말: 오늘 본지는 원 료녕민족출판사 부사장 겸 부총편집 지홍수씨가 동란년대(당시 성도부대 모부 보위간사)에 《주자파(走資派)》로 몰린 등화(당시 사천성 부성장) 등 고위급간부를 비밀리에 보호하라는 주은래총리의 특명을 수행하던 나날에 겪었던 특수한 경력을 소개한다. 이 글은 처음으로 지상에 공개 발표하는것임을 부언한다.

1980년 7월 10일 아침, 지홍수씨는 여느때와 같이 라지오를 통해 당날의 일기예보를 듣고나서 세수를 하려고 세면실로 향하였다. 이때 라지오에서 애도곡이 애절하게 울리더니 남성아나운서의 무겁고 침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공중앙 후보위원, 중앙군위 위원, 중국인민해방군군사과학원 부원장 등화동지의 추도회가 7월 10일 오후, 북경 팔보산혁명묘지 례당에서 진행된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지홍수씨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잠시후 그는 북경쪽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몇분간이나 묵도를 올렸다. 그러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한낱 백성에 불과한 지홍수씨가 중앙고위급간부인 등화동지의 서거를 두고 왜 이처럼 침통해하는걸가? 퇴직한 현퇀급간부 지홍수씨와 재직이였던 중앙고위급간부인 등화동지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특수한 인연이 있었던것일가? 이야기는 전례없던 《문화대혁명》시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때는 1968년의 가을이였다. 당시 지홍수씨는 성도군구 모부 50군 정치부 보위간사로 있었다. 어느날 아침 8시, 지홍수씨가 방금 출근하여 책상머리에 마주 앉으려는데 보위처 손처장이 자기 사무실로 부르더니 하던 일은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라면서 9시에 류부정위(50군 부정위)의 사무실에 가면 수장(首長)께서 구체적인 임무를 알려줄것이라고 하였다. 지간사는 부랴부랴 하던 일을 인계하고 8시 50분에 류부정위사무실에 도착하였다.

류부정위는 주총리께서 친히 내린 비밀명령을 수행할 임무를 지간사에게 맡긴다면서 그 임무는 바로 성도에 있는 등화 등 5명 중앙 위원과 후보위원을 보호하는것이라고 찍어말했다. 이어 류정위는 5가지 요구를 제기하였다. 1. 비밀을 엄수한다. 2. 대내로는 긴박하게, 대외로는 느슨하게 한다.(內緊外松) 3. 청시보고를 강화한다. 4. 적으면서도 정예로운 인원을 조직한다. 5. 사업은 은밀해야 한다.

특수임무를 맡고 돌아오는 지간사는 임무의 간거성을 절감하였다. 당시 각파 반란파조직들에서는 승벽내기로 《주자파》들을 끌어내여 투쟁대회를 하고있었는데 때로는 서로 자기네가 《주자파》를 데려다 투쟁하겠다고 각파간에 《쟁탈전》이 벌어져 란투극으로 번져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신변보장도 없이 반란파들에게 끌려다니는 《주자파》들을 보호한다는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더구나 그때는 세상이 무법천지였던것이다.

지간사는 우선 상급의 비준을 거쳐 경위련에서 6명을 선정하고 보건군의 1명을 선정하여 경위조를 뭇고 본격적인 경위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은 시작부터 적막강산이였다. 보호대상인 등화동지의 행방을 알길이 없었다. 성직속기관 군중조직과 각 대학의 군중조직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알아보았으나 모두가 모른다는것이였다. 직접 등화동지의 가족을 찾아 알아보는수밖에 없었다.

지간사는 변복을 하고 단신으로 등화네 집을 찾았다. 부인 리옥지의 말에 의하면 어느날 몇몇 청년들이 욱 쓸어들더니 다짜고짜 등화동지를 자동차에 싣고서 어디론가 갔다는것이다. 벌써 두석달이 되였는데 이따금씩 두서너사람이 와서 눈을 부라리며 약과 생활용품을 내놓으라해서 가져갔다고 했다. 소개를 듣고난 지간사는 시내 남교구에서는 사천대학 군중조직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것을 감안, 사천대학에 가서 상황을 료해하였다. 그러던중 끝내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사천대학의 리과청사에 한 령감이 갇혀있는데 경비가 삼엄해 몇몇 우두머리를 내놓고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는것이다.

지홍수일행은 우선 강씨성을 가진 우두머리를 찾아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강씨는 자기네는 누구를 억류한적 없다고 딱잡아떼였다. 리과청사에 사람이 갇혀있는것을 알고왔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이렇게 사흘을 끌다가 등화를 찾는것은 중앙의 지시이고 군중조직에서 이렇게 사람을 억류하는것은 불법이라고 압력을 가해서야 겨우 이튿날 오전 9시에 리과청사에서 사람을 돌려주겠다는 답복을 받아내였다.

그날 지간사와 경위원 안국주 그리고 또 한명의 전사 셋이서 근무집행홍삼각기(執勤紅三角旗)를 꽂은 성도경비구의 승용차를 타고 팔에는 근무집행완장을 두르고 약속시간 10분전에 사천대학 군중조직총부에 도착하였다. 한참 지나서 강모가 녀경위원 두명과 유씨성을 가진 사람의 호위하에 나타나더니 유씨더러 리과청사로 안내하라고 하였다.

리과청사는 신축한 교수청사로서 외관상 아주 웅위로운 고층건물이였다. 그런데 교수청사앞에 이르러보니 엉망이였다. 여섯짝으로 된 큰 활동문은 강판으로 용접해버렸고 문앞에는 또치카식 단짝문을 설치해서 한줄로 서서야 통과할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 옆으로는 사격구가 마련되여 언제든지 《침범자》들을 물리칠수 있게 되여있었다. 문에 들어서니 대학생 한명이 표창을 꼬나들고 보초를 서고있었다. 유씨가 그와 몇마디 나누고나서 지간사와 안국주더러 들어오라고 하였다. 층계입구에 들어서니 량쪽에는 서너트럭은 될듯한 자갈이 쌓여있었다. 《침입자》를 막기에는 더없이 좋은 무기였다. 1층과 2층의 층계입구는 강판으로 완전히 봉해버렸고 중간에 우로 여는 단짝문이 달려있었다. 복도에는 례외없이 자갈이 쌓여있었다. 4층 복도에는 판자로 된 문을 달아놓았는데 옆에는 위병이 서있었다. 위병은 자물쇠를 열면서 유씨와 뭐라고 주고받았다. 한 30분 가다렸을가, 또 두사람이 올라오더니 제각기 가기가 맡은 문의 자물쇠를 열었다. 이렇게 지간사 등이 문 세개를 거쳐서 들어선 곳이 리과실험실이였다.

실험실의 물건은 이미 없어졌고 실험실에 들어서면 2메터 너비, 6,7메터 길이의 복도가 있었는데 복도 한켠에는 세면대가 있고 또 문하나를 들어서면 6평방메터의 작은 칸이 있었다. 안에는 책상이 하나 놓여있었고 책상우에는 밥곽이며 양치도구, 씻을 옷들이 놓여있었다. 창문은 쇠창살을 박아놓았고 문턱에는 타다남은 초대가 세워져있었다. 네벽에는 못을 박아 일인용모기장을 메놓았다. 세멘트바닥에는 벼짚방석을 깔았고 그우에는 군용담요가 깔려있었다. 방석한쪽에는 각이 나게 개인 이불이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군종조직들에서 보내온 소자보 수십장과 때가 지난 인민일보 몇장이 놓여있었다.

바로 이곳에 카키색목면간부복을 입은 한 로인이 모기장안에 앉아있었다. 반백의 상고머리를 한 로인은 허리를 꼿꼿이 편 자세에서 고개를 숙인채 두손을 무릎우에 올려놓고 석고처럼 굳어져있었다. 누가 들어와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 로인이 바로 당년 국민당군, 일본군, 미국군을 혼비백산하게 했던 등사령원이란 말인가? 지간사는 눈앞의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랭혹했다. 지금 지간사앞에 있는 로인은 당년의 등사령원이 아니라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로서 《계급의 적》이였다. 지간사는 간신히 마음을 눅잦히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 등화요?》 로인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벙어리냐? 왜 말이 없어?》 유씨가 소리를 질러도 역시 묵묵부답. 지간사가 말을 이었다. 《당신의 잠자리를 옮겨야겠소. 빨리 물건을 수습해서 같이 갑시다.》 이때에야 등화는 고개를 들고 금테안경을 바로 잡으면서 지간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에는 만감이 교차하고있었다. 그는 《예》하고 대답하고는 지간사와 안국주가 모기장을 거두는것을 보고 《여기에 내 물건이라고는 치솔, 치약뿐이니 수습할것도 없습니다》하며 일어서다가 휘청거렸다. 지간사가 재빨리 그를 부축하면서 물었다. 《운동을 하지 않았구만요, 어지러운가요?》 《어지럽네요.》 《천천히 걸읍시다.》 등화는 자기를 부축하는 지간사의 팔에 낀 근무집행완장을 확인하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습니다, 걸을만 합니다》하면서 걸어나갔다.

이렇게 등화를 《구출》해낸후 지간사는 일단 그를 금강빈관에 배치했다가 후에 다시 비밀거처로 자리를 옮기면서 약간 안정을 찾았다. 그때야 지간사는 등화가 기침을 심하게 깇는다는것을 발견하고 주의해 관찰해보니 가래에 피가 조금씩 딸려나왔다. 지간사는 급히 군의에게 전화해 검사해본 결과 엄중한 천식이였다. 치료가 시급했다. 이튿날 지간사가 등화의 거처에 찾아갔을 때 그는 털실로 뜬 모자를 눌러쓰고 솜옷을 여며입은채 방안을 오가면서 연신 기침을 해댔다. 약도 먹고 주사도 맞았지만 효험이 크게 없는것 같았다. 지간사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등화는 춥다고 하였다. 성도의 겨울은 눈도 몇번 오지 않고 온도도 0도좌우를 유지하지만 실내 난방장치가 없어 아주 추웠다. 천식환자가 이런 랭방에 있으니 편할리가 없다고 생각한 지간사는 그길로 류정위에게 보고를 올려 등화의 방에 화로를 설치해주었다.

화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자 등화는 불을 쬐이면서 《이제야 살게 되였어요. 고맙습니다 고마워》를 련발하였다. 이렇게 한주일이 지나자 병세는 호전을 보였고 반달후에는 기침이 멎었으며 기색도 나날이 좋아졌다. 그후 그는 지간사를 볼적마다 그 화로가 내 생명을 구했다면서 거듭 감사를 표했다.

그로부터 며칠후 지간사는 생활비, 량표, 갈아입을 옷을 가져와야 했기에 등화의 집을 찾았다. 원래 등화는 성정부령도들이 거주하는 울안의 한 단층집에서 살았는데 면적이 넓고 앞뒤로 울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금퇀》이라는 반란파조직이 차지하고있었다. 지간사는 무작정 문이 열린 칸을 찾아들어갔다. 안에는 대여섯이 있었는데 벽쪽에는 보총 몇자루가 세워져있었다. 등화네집을 찾는다고 하자 그들은 증건을 확인하고나서 지간사를 서쪽 모퉁이로 안내하더니 여기라고 하고는 가버렸다.
그런데 지간사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출입문이 없었다. 대신 창문이 있었는데 창턱아래 판자로 된 과일상자가 두층으로 놓여있었다. 창가에 다가가니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라 여기가 등화네집인가고 물으니 안에서 한 녀인이 그렇다고 하면서 창문을 열고 무슨 일로 왔느냐고 되물었다.그 녀인이 바로 등화의 부인 리옥지였다. 등화의 딸도 어머니곁에 있었는데 두 녀인은 초긴장상태에서 지간사를 아래우로 훑어보았다. 지간사가 등화를 대신해서 생활품을 가지러왔다고 하면서 들어가도 좋으냐고 하자 그제야 《주의해서 들어오세요. 상자가 흔들려요. 그들이 문을 막아버려서 우린 창문으로 출입한다우》하였다. 삐걱거리는 과일상자를 조심스레 밟고 방에 들어가보니 헌궤짝에 침구, 주방용품이 전부였다. 말그대로 사람사는 집이 아니였다.

지간사가 종이쪽지를 리옥지에게 넘기였다. 쪽지를 펼쳐든 리옥지의 손은 심하게 떨고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가랑가랑 맺히였다. 옆에 섰던 딸이 쪽지를 보고는 아버지의 필체가 틀림없다고 하자 리옥지는 참 오랜만에 네 아빠의 편지를 받아본다며 끝내 눈물을 떨구었다. 등화가 쓴 쪽지내용은 간단하였다. 《다들 무사하오? 난 잘있소. 내가 필요한 량표, 돈, 의복, 약 등을 찾아간 사람에게 보내오.》 그리고 아래 등화라고 서명했다.

한참후 모녀는 보낼 물건들을 보따리에 싸서 지간사에게 넘겨주면서 오래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고 하였다. 지간사가 명세서를 적어달라고 하자 리옥지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지간사를 바라보았다. 등화처럼 쪽지를 써달라고 하자 그제야 알았다는듯 급히 종이를 찾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등화라고 쓰고는 필을 멈추고 지간사를 바라보았다. 지간사가 눈치를 채고 문안인사를 써도 괜찮다고 해서야 리옥지는 계속 써내려갔는데 손이 떨려서 글이 비뚤비뚤하였다.

지간사는 돌아오자마자 등화를 찾아 쪽지와 물건을 건네였다. 등화는 우선 쪽지부터 펼쳐들고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는 연신 고맙다면서 물건을 대충 살펴보고나서 쪽지를 정성들여 펴서는 책갈피에 건사하였다.

반달후 지간사는 다시 등화네집을 찾았다. 처음과는 달리 모녀는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고 말도 많아졌다. 등화의 딸은 숨김없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전에 찾아온 사람들은 무작정 눈을 부라리며 물건을 내놓으라 하고는 령수증도 없이 가버리군 했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태도도 부드럽고 또 아버지의 친필 쪽지까지 가지고 와서 마음을 놓았어요. 그리고 창문으로 나갈 때 허리에 찬 권총을 보고 해방군이라 짐작하고 더욱 안심되였지요. 아저씨같은 좋은 분을 만나 이젠 아버지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것같아요. 감사해요.》

지간사는 자기는 지금 주총리의 특명을 수행중이라고 그들 모녀에게 알려주지 못하는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 말한마디면 그들모녀는 모든 시름을 털어버릴텐데 말이다. 지간사는 등화가 쓴 령수증과 필요한 물건을 적은 명세서를 리옥지에게 전하면서 지난번에 보낸 쪽지를 등화는 수첩에 끼워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한마디가 그들 모녀에게는 큰 위안이 되리라 생각해서였다.

지간사 등의 노력으로 등화 등은 생활상에 안정을 찾을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두패로 갈라진 반란파조직들이 서로가 《혁명적》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승벽내기로 《주자파》투쟁대회를 가지는통에 그속에서 고위급간부들을 보호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반란파들이 서로 투쟁대상을 두고 《쟁탈전》을 벌리다보니 량파사이 무력충돌이 벌어지기도 일쑤였다. 한번은 량파 30만명이 참가한 비판대회가 있었는데 량파사이 기싸움이 벌어지다가 급기야 무력충돌(돌팔매질, 몽둥이질)로 번져졌다. 다행이 지간사 등이 유사시 뒤문으로 고위간부들을 빼돌릴수 있게 사전에 퇴로를 마련해두었기에 그 란장판속에서도 등화 등을 무사히 대피시킬수 있었다.

때로는 한 반란파조직에서 투쟁대회를 하는데 다른 반란파조직이 회장을 급습해 투쟁대상을 《랍치》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지간사는 보호대상을 돌려올 때까지 밥한술, 물한모금 먹지 못한채 반란파들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그러니 언제 한번 다리펴고 잘 날이 없었고 마음놓고 편히 밥한끼 먹을수 없었다.

이렇듯 지간사는 주은래총리의 특명을 수행하기 위해 꼬박 10년을 초긴장상태에서 생활하였다. 다행히 1978년 봄, 당의 8기 12중 회의가 북경에서 소집되였는데 등화동지도 중앙으로부터 회의에 참가하라는 통지를 받았고 그 얼마후 소집된 당의 제9차 당대회에서는 중앙후보위원으로 당선되였다.

그런 특수한 인연이기에 중앙후보위원, 중앙군위위원, 중국인민해방군군사과학원 부원장 등화동지는 생전에 지홍수씨가 북경에 들렸다는 소식만 알면 꼭 그를 집에 청해서 식구들과 함께 잔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 특수한 인연이기에 등화동지의 서거소식은 지홍수씨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였다…(금산기자)

  래원: 료녕조선문보 (편집: 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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