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은 중화민족의 굴욕과 비통과 분노, 혈전과 영광으로 가득찬 날이다.
70년전의 이날인 1937년 7월 7일,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은 북평외곽에 있는 로구교에서 전화를 집혔다. 중국군대는 일떠나 반격을 가했다. 대규모적이고 기세웅장한 항일전쟁이 이로써 전면 발발했다.
70년전의 총소리는 당대 중국국민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가? 《7.7사변》발발 70돐을 맞으며 일반 국민 몇명이 기자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항일전쟁로병사: 《중국은 꼭 단합, 발전, 부강해야 한다.》 올해 84살난 왕초영로인은 항일로병사이다. 70년전의 가렬처절한 전화는 지금도 그의 기억속에 생생하다.
1937년, 14살밖에 안된 왕초영은 군에 입대해 한달뒤 상해로 가 송호회전에 참가했다. 왕초영은 《처음에는 일본군의 무차별폭격에 겁을 먹었다. 총알이 귀전을 스쳐지나고 전우들이 다리가 부러지고 어떤이들은 폭사당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퇀장이 자리에 선채로 기관총으로 적기 두대를 격추시키는 장면을 보고나서 창피해났다. 지금 일본사람들이 우리 집까지 쳐들어왔는데 뭐가 두려울소냐, 결심을 내린 나도 인차 총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고 말했다.
중화민족이 생사존망에 처한 중요한 고비에 나어린 소년은 재빨리 견정한 항일전사로 성장해 비발치는 총탄속을 넘나들었다. 송호회전에서 무한회전까지, 동남아원정에서 국내전쟁까지 왕초영은 장장 일본침략군과 8년동안 가렬처절한 전투를 펼쳐왔다.
왕초영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70년전 로구교에서 울려퍼진 총소리는 중화민족의 진흥의 불꽃이였고 단합의 불꽃이였으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시작이였다. 중국사람들은 꼭 이 력사순간을 가슴깊이 명기해야 한다. 당시 중국이 굴욕을 당한것은 너무 가난하고 너무 락후하고 단합되지 못했기때문이다. 때문에 중국은 꼭 단합, 발전, 부강해야 한다.》
소학교사생들: 《원한을 새기지 말고 교훈을 섭취해야 한다.》
11살난 장설흡은 북경시수도사범대학부속학교 소학교 4학년 학생이다. 그는 교과서에서 로구교사변에 대해 알게 되였다면서 《일본침략자들은 중국을 침략하고 중국사람을 살해하고 중국땅을 강점했을뿐더러 세균으로 중국사람을 독살했다. 너무나도 잔인하다》고 말했다.
장설흡의 어문교원 진비평은 《학생들이 <로구교>과목에 대해 무척 깊은 인상을 갖고있다면서 이 과목은 시험범위에 들지 않지만 학생들은 력사를 알려고 하고 조국이 당했던 재앙을 알고저 하고있다》고 말했다.
진비평은 《<로구교사변>은 이미 70년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들에게 무거운 교훈을 남겨주고있다. 지금 학생들에게 이 력사순간을 명심하도록 교양하는것은 결코 어린이들에게 원한을 품게 하려는것이 아니라 교훈을 섭취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들은 보다 강대하고 보다 단합해야만 굴욕을 당하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항일전쟁기념관 참관자: 《그 한단락 력사 되새겨보아야.》 로구교옆에는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이 우뚝 서있다. 하나하나 실물들과 사진들은 참관하러 온 사람들에게 70년전의 비장한 력사를 고스란히 고소해주고있다.
해마다 7월 7일을 전후하여 이곳을 찾는 참관객들이 급증하고있다. 인민전쟁특별기념관안에서 한 로인은 동행한 사람에게 《<7.7사변>이 발발하자 중국의 전 민족은 즉각 단합하여 항일전쟁에 뛰여들었다》면서 《공산당은 물론 국민당도 과거의 감정을 뒤로 한채 항일에 뛰여들었다》고 그 의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신화통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