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일본제국주의가 대규모중국침략전쟁발발을 위해 의도적으로 《7.7로구교사변》을 일으킨 70돐 되는 해이다.
일본침략자들은 1931년 《9.18사변》을 통해 우리 나라 동북을 강점한후 중국을 전면적으로 침략하기 위해 륙속 군대를 동북땅에 들어오게 했다. 1936년 일본군은 이미 동, 서, 북 3면으로부터 북평(지금의 북경)을 포위하고있었다. 1937년 6월부터 풍대에 주둔해있던 일본군은 잇달아 도발적인 군사연습을 해왔다. 7월 7일 밤중, 로구교에서 군사연습을 하고있던 일본군은 병사 한명이 실종되였다는 핑게로 완평성에 들어가 수색할것을 요구, 중국주둔군의 거센 거절을 당하자 일본군은 인차 완평성과 로구교에 대해 진공을 가했다.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항일구국운동의 영향으로 중국주둔군은 용맹히 반격을 가했다. 중국인민들의 항일전쟁 서막이 열리게 된것이다.
로구교사변 이튿날 중공중앙은 전국에 전보문을 내려보내 중국군민들이 단합하여 일떠나 공동히 일본침략자에 대처할것을 호소했다.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은 열렬히 호응했다. 항일구국운동은 사상 전례없는 드높은 기세를 보여주었다. 이런 형세에서 장개석도 7월 17일 로산에서 연설을 발표해 대일작전을 선포했다.
세계반파쑈전쟁의 중요구성부분으로서의 중국항일전쟁은 일본륙군총병력의 3분의 2이상과 맞섰거나 견제했고 중국군민들의 사상자수도 무려 3500여만명에 달했다. 8년동안의 가렬처절한 혈전을 거쳐 중국인민들은 마침내 항일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세계반파쑈전쟁승리에도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했다.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투항을 선포하고 9월 2일 일본이 투항서에 조인했다. 9월 3일을 항일전쟁승리기념일로 지정했다(신화통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