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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문생: 모택동의 통역사로 임명되자 기절할번
2008년 01월 07일 11:03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2007년 6월 14일, 한국 이화녀자대학 통역번역대학원은 설립 10주년을 맞아 이 학교 국제교육관에서 10주년기념식 및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통역번역에서 문화요소의 전이: 아시아를 중심으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행사에 “통역번역과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중국번역가협회 당문생(唐聞生, 64세)부회장의 특이한 리력이 눈길을 끌었다.

외교관의 딸로 미국에서 출생했으며 모택동주석과 주은래총리의 통역자를 지낸 당문생, 한국 래일신문사는 서울을 찾은 당문생을 만나 그녀의 회고를 들었다.

당문생은 1943년 봄 뉴욕 브루클린에서 중국 외교부 관리인 부친 당명조(唐明照)와 독립운동가출신 화교인 모친 장희선(張希先) 사이에서 태여났다.

그들 일가는 1952년에 귀국하여 외교부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련락부에서 일했다. 이런 리유로 부친은 어릴 때부터 딸에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강조했으며 당문생은 영어공부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그녀는 동급생가운데서도 뛰여난 실력을 발휘했는데 1962년 북경외국어대학 영어과에 탁월한 실력으로 합격했으며 5년제 과정을 3년에 마치기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통역계서는 총리의 지시로 젊은 통역가를 물색하던 중이였는데 당문생은 한눈에 뽑히웠다. 1965년 그녀는 외교부 교육사 통역처 영문팀으로 배치됐고 이후 수십년에 걸쳐 외교부에 종사하게 됐다. 그녀는 중국주재핀란드대사관시절에 처음으로 주은래총리를 수행했는데 그녀의 능력을 알아본 주총리는 “잘해봐. 두어해 일해서 너의 선생님을 따라잡아야 해”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당문생이 처음 모택동주석의 통역사가 된 때는 1966년 7월, 문화대혁명이 발발해 정국이 혼란에 빠질 무렵이였다. 당시 아시아,아프리카 작가긴급회의에 참석한 53개국 문인들이 모택동과 담화하게 됐는데 당조직에서는 그녀를 주석의 동시통역사로 지정했다.

모주석의 심한 호남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판단한 그녀는 한사코 맡지 않겠다고 버텼고 끝내 혼절할 지경이 됐다. 하지만 때마침 장강을 수영해 건넌 모택동주석의 건강상태로 인해 담화가 사진촬영으로 대체되는 바람에 그녀는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에도 그녀의 실력은 갈수록 좋아져 4년뒤인 1970년에는 주은래총리의 수행통역비서가 됐다. 그해 11월 극비리에 중미수교론의가 시작됐고 당문생은 이 력사적인 작업에 참여했다.

그녀는 모택동주석의 통역사로도 일했다. 그해 겨울에는 모택동주석과 에드가 스노우의 비밀회담에 배석하여 중미수교와 관련된 중국측립장을 전했다. 그녀에 따르면 모택동주석은 5시간에 걸친 대화를 주도하면서 시종 활기에 차있었으며 스노우에게 어린 당문생과 건배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는것이다. 그녀는 당시 모택동주석의 말을 회고했다. “우리는 닉슨과 다투지 않을것이라 확신한다. 비판은 그가 비판하면 되고 우리는 자아비판을 하면 된다. 서로가 다른것은 우리도 비판하지 않는다.”

이어 당문생은 주은래총리와 키신저의 회담에 통역자로 나섰으며 키신저는 미국 출생인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낸시 당은 미국 대통령 선거경선에 나올수 있지만 당신들은 안된다.” 이처럼 재치있는 롱담을 건네며 키신저는 량국 수교가 림박했음을 알렸다.

중미 국교정상화가 마침내 타결에 이를 무렵, 주은래총리는 이 중대한 작업에 참여한 외국인 친구들을 북경으로 불러 연회를 가졌다. 이때 당문생 일생일대의 사건이 생겼다.

원래 주은래총리는 애주가였지만 암이 오래 된데다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4인방과 싸우던터라 건강이 극도로 나빴다. 그렇지만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회견장분위기는 주빈인 그를 놔두지 않았다. 밤이 늦자 주은래총리는 모태주 한잔을 따르더니 좌중을 향해 건배를 제의했다. 참다 못한 당문생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총리, 더 마실수 없어요.” 하지만 총리는 단숨에 술잔을 들이키더니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후 그녀는 외교가에서 “Sweet”(총리를 진심으로 사랑한것으로 알려졌기때문)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듬해인 1971년, 28세인 당문생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2년뒤에는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후보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지금까지 당문생은 현역 외교부 직원 시절 당중앙위원회에 진입한 유일한 녀성으로 남아있다.

  래원: 중학생보 (편집: 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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