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 돈있는 기업가가 되고 사회에 좋은 일 하는 기업가》 되고싶다. 이는 서씨기업 서군선리사장의 사업리념이자 인생리념이다.
⊙ 《창업의 꿈》을 키우며
올해 42살인 서군선리사장은 어릴때 매우 가난했다. 형제가 많고 부모님들도 월급이 낮다보니 배를 곯은적도 많았으며 주변사람들의 무언의 기시를 받은적도 적지 않았다. 당시 장거리뻐스역부근에서 살던 그는 로점상인들이 해바라기며 뻥튀기를 팔아 돈을 버는것을 보고 앞으로 장사를 해 부자가 되려고 결심했다. 하여 그는 어릴때부터 학업에 열중하는 한편 짬짬이 성공한 기업경영인들의 자서전을 애독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였다. 대학에서도 학업에 열중하는 한편 돈벌이 아이템을 찾았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설명절이면 년하장을 서로 주고 받았는데 학생들이 년하장을 구매하려면 시내로 가야 하는 어려움 등 여러가지로 불편을 겪었다, 이런 정황을 장악한 그는 교정에서 년하장소매업을 벌렸다. 비록 일부 학생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장사를 통해 돈도 벌고 경험도 쌓을수 있다고 확신한 그는 남들의 눈길을 개의치 않았다. 당시 그는 년하장을 도매해 학생들에게 소매하여 학비는 물론 대학교 생활비를 해결했으며 일정한 창업자금까지 모을수 있었다. 일정한 창업자금을 마련한 그는 당시 조선장사가 잘된다는 정보를 장악하고 방학기간을 리용하여 조선에 드나들면서 보따리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대학 4년을 다니는 동안 학업도 훌륭하게 완수하고 졸업할 때 조선을 드나들면서 보따리장사를 하여 6만원이란 거금도 모았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주교통국에 배치되였지만 어려서부터 창업의 꿈을 갖고있었기에 결연히 창업길을 택했다. 당시 부모는 물론 주변의 친척, 친구들까지 모두 장사길을 걸으려는 그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성장했기에 그의 마음에는 가난으로 인한 서러움이 많았으며 자신의 운명은 물론 가족의 운명을 바꿔보려는 남다른 《야먕》이 가득했다. 하여 그는 안온한 직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창업의 길을 택했다.
⊙ 시련과 좌절을 딛고 한걸음 한걸음 정상에로
창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가 처음 무역회사를 꾸렸을 때만 해도 장사가 잘되여 자신의 꿈이 멀지 않아 실현될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하늘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잘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면서 그는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백수성가》한 서군선리사장은 이러한 좌절과 실패앞에서 굴복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우선 자신의 실패를 철저히 총화하고 새로운 사업비전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그는 남방을 고찰하면서 남방의 넓은 시장과 낮은 인건비, 그리고 윤활한 물류류통 등 정황을 료해하고 대담히 남방에서 창업의 길을 걸었다. 몇년간의 간고한 창업, 그에 못지 않은 시련과 좌절속에서 그는 성공을 하였다. 현재 그는 상해, 단동 등지에 가공공장, 무역회사를 여러개 앉혔으며 그가 고용한 종업원수도 100명을 훌쩍 넘는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지면서 그도 점차 눈길을 한국에 돌렸다. 그는 처음 한국상인들이 부탁한 물건들을 가공하는 일을 도맡아했다. 그것이 옥제품가공이였는데 그가 가공한 옥은 한국상인들의 높은 절찬을 받았으며 한국상계에서 그에 대한 신임도 매우 높았다.
단순한 가공업으로는 기업을 새로운 차원에로 부상시킬수 없다고 여긴 그는 새로운 사업비전을 찾기 위해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사업고찰차로 연변에 와서 우연히 매트시장을 고찰하게 되였는데 자신이 가공한 옥돌이 한국옥매트로 변신하여 연변시장을 독식하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를 더욱 놀라게 한것은 연변의 매트가격이 너무 비싸 소비자들이 접수하기 어려운점, 일부 량심을 어긴 상인들이 매트시장의 허점을 리용해 가짜 매트를 만들어 소비자들을 울리는 가슴아픈 모습, 일부 매트광고가 지나치게 과장되여 소비자들을 잘못 유도하는 등 문제점들이였다.
《장사군은 제애비도 속인다》는 말이 있지만 기업가로서 도덕을 목숨처럼 지켜온 서군선리사장은 직접 옥매트를 만들어 연변소비자들에게 싼 가격으로 공급해 고향사람들도 수입매트가 아닌 고향 매트로 건강을 찾게하려고 생각했다. 무슨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인차 행동에 옮기는 그는 옥가공공장에 1000만원을 투입하여 매트생산흐름선을 앉히고 본격적인 매트 생산에 나섰다.
시장에 처음 선을 보인 《하나다》웰빙건강매트는 인지도가 낮아 시장에서 랭대를 받았다. 시련과 좌절에서 굴할줄 모르는 서군선리사장은 연변시장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진행하고 고향사람들의 건강에 맞는 매트를 륙속 개발생산했다. 그리고 장백산관광객이 많은 점을 활용해 옥방석, 옥민속공예품 등을 개발하여 국내외 관광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기자가 서총경리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 《하나다》웰빙건강매트로 실면을 치료했다는 한 소비자는 감사패를 들고 서군선리사장을 찾아왔다. 서리사장은 매트는 병을 완치할수는 없지만 치료보조 작용을 한다면서 특히 게르마늄매트는 웰빙건강매트로서 신체건강에 유익하다고 했다. 연길시 북산가에 살고있는 김선생은 관절염 등 골과병으로 여러해 고생했는데 좋다는 약은 다 쓰고 용하다는 명의는 다 찾아다녔지만 돈만 팔고 효험은 얼마 보지 못했다. 그후 안해의 권유로 《하나다》웰빙건강매트를 사용했는데 처음에는 별 효험을 보지못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관절 등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면서 건강을 찾아준 서씨기업에 축기를 보내왔다.
이와 같은 실례는 너무 많다. 부인과질병으로 고생하다 《하나다》웰빙건강매트를 사용하고 병세가 호전된 룡정시 김녀사, 신염과 고혈압으로 여러해 고생하면서 삶의 의욕마저 상실했던 화룡시 리선생도 웰빙건강매트로 건강을 되찾았다.
서군선리사장은 자신이 생산한 《하나다》웰빙건강매트가 소비자들에 게 복음을 주는것이 기업가로서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했다. .
⊙ 창업환경과 창업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
현재 우리 주의 전민창업의 열조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자신은 아직 성공한 기업인으로 인정받자면 멀었다》고 답하면서 》투자에서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엉터리 사업가들을 멀리하고 실속있는 사업가 기업인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학습해야 한다》, 《연변기업가들의 결함이랄가 일부 기업가들은 돈을 조금 벌면 허풍만 치고 회사관리를 소홀히 하고 이름을 날리는데 급급하다 보니 회사가 부도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일부 기업인들은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시장을 넓게 보지 못하고 기업의 실력을 탄탄하게 다지는 실속이 결여하다. 연해 발달지구나 대도시들에 가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며 자신을 부단히 충전하고 큰돈을 벌려는 욕심을 버리고 한걸음 한걸음 실속있게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현재 연변의 창업환경에 대해 서 군선리사장은 《비교적 전망이 밝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지역이라면서 아직도 시장이 협소하고 물류가 윤활하지 않으며 원가가 높고 로임이 상대적으로 높아 경쟁력이 떨어지는 면도 있지만 점차 좋아지고있다》고 지적, 《외자기업유치에만 신경을 쓰지말고 민영기업에 더 많은 눈길을 돌리고 적극 부축하여 량호한 발전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귀국로무자들을 적극 부축하여 이들도 창업에서 성공하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고 시스템을 구축해 주어야 한다》고했다.
서군선리사장이 일전 모교인 중앙소학교에 장학회를 설립하였다. 향후 타산에 대하여 그는 《연변에서 태여나 연변에서 자라온 저는 어디로 가든지 고향을 잊지 않을것이라면서 앞으로 초중, 고중, 대학에 더 많은 장학회를 설립해 연변의 품질이 좋고 학습성적이 우수한 빈곤학생들이 고향건설의 주력으로 성장하도록 방조할것이다》《내지에 꾸린 기업이 정상 궤도에 들어서면 고향에 대한 투자도 강화할것이다》면서 미래 청사진을 그렸다.
기자는 서씨기업 서군선리사장과의 2시간 인터뷰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서의 그의 성실과 신용, 끈기있는 노력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기자는 서씨기업의 더 밝은 미래를 기원하면서 서군선리사장과 작별을 고했다(리성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