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몰라도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투자를 권하고싶다. 중소기업인들이 한국에서 자기가 해오던 일을 이곳에다 투자해보라, 넥타이를 풀고 작업복을 입고 일을 지시만 하지 말고 일하는데 같이 동참해서 해놓은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열심히 해보시라. 그런데도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 성보를 오라, 내가 다 배상해주겠다.
연길은 한국의 남원시를 옮겨다 놓은것 같은 포근하고 정스러우면서도 비교적 발달한 현대중등도시이다. 또 우리 말과 글, 우리 학교, 우리 풍속, 우리 말 신문, 방송 등 조선민족의 혼이 살아 숨쉬고 문화가 깃든 고장이기도 하다.
우리 성보가 연변에 진출한지 14년을 맞는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연변사람들과 함께 그 어려움을 이기면서 오늘의 성보가 발전하기에 이르고보니 연변분들의 인정과 신임을 받게 되였을뿐만아니라 앞으로 우리 성보가 큰 일을 하게끔 기반이 되였다.
중국사람들한테서 믿음을 받는다는것은 곧 큰 부자가 된다는것을 증명이나 하는것 같이 우리 성보가 연길에서의 성공에 뒤이어 동북중심도시인 심양, 심양에서도 중심중에 중심인 서탑근처 심양백화점을 10월에 인수하게 되였다.
이땅에서 14년동안 살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바에 의하면 대기업은 몰라도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투자를 권하고싶다. 중소기업인들이 한국에서 자기가 해오던 일을 이곳에다 투자해보라, 넥타이를 풀고 작업복을 입고 일을 지시만 하지 말고 일하는데 같이 동참해서 해놓은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열심히 해보시라. 그런데도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 성보를 오라, 내가 다 배상해주겠다. 나는 이런 말을 서슴없이 신문, TV방송에서까지 한다. 왜? 나는 내나라 기업인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 자기가 한국사회에서 지금까지 하던 사업이라면 이곳은 10배, 100배 더 승산이 있는 고장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 90년대만 해도 연변의 투자, 생활환경은 락후했다. 아마 1993년도라고 기억된다. 그해 여름에 화룡으로 간적이 있다. 도중에 나는 화장실을 급히 가고싶었다. 그 요구에 안내하던 분들이 퍽 난감해하였다. 몇이서 머리를 맞대고 뭔가 의논하더니 꽤 먼곳까지 나를 안내해서 일을 보게 하였다. 그 화장실은 문짝 하나 없고 량옆을 대충 쌓아올린것인데 눈가리고 아웅하는식으로 볼것은 다 볼수 있는 그런 화장실이여서 놀랐다. 그것도 아마 선택해서 안내한것이였으니 그보다 더한것도 있었으리라 짐작이 갔다.
90년대초만 하여도 연길을 보면 고층아빠트는 닭무리의 꿩과 같이 몇채 되지 않았고 단층집이 절대 대부분이였으니 시민들은 거개가 공동화장실(기실은 변소)을 썼고 위생 또한 불결하였다. 그 정경은 60년대에 한국의 화장실문화와 도토리 키재기였다.
그러나 오늘의 연길은 옛모습을 찾을수 없을 정도로 비교적 발달했다. 10년전에 고층건물이 닭무리속의 꿩이였다면 오늘은 그 반대로 단층집이 꿩무리속의 닭신세로 되였다. 더구나 최근년간 중국정부에서 약체군체에 대해 선정을 베풀어 단층집개조에 들어가면서 그 진척은 더욱 빨라지고있다. 아빠트구역도 록화가 잘되고 연길하의 개조도 잘되여 시민들의 휴식의 장소, 관광명소로 되였는바 생활의 질이 한층 높아지고있다.
90년대초 한국에서 연길로 오자면 천진이나 북경 공항에 내려 기차를 타고 하루밤을 달려야 했으나 지금은 연길에서 직접 한국으로 날아갈수 있게 되였는가 하면 가는 경로도 사무편리를 봐서 비행기 또는 배편을 선택할수 있게 되였다.
륙로도 사통팔달하다. 명년에 고속도로가 준공되면 연변교통은 1시간문화권으로 된다고 한다. 신문을 볼라니 연길시에서는 주민구역의 골목, 시외의 농촌 부락길도 콩크리트화되여가고있다.
륙로가 크게 발전함에 따라 교통수단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해까지 연길시의 자가용은 4만대를 넘었다고 한다. 성보상인들을 살펴보면 지금 자가용이 100여대나 된다.
그래서 연길을 자주 나드는 한국인들은 올적마다 변화가 크다고 감격해 한다.
남들이 말하기를 사업하기 힘든 고장이 중국이라고 한다. 중국이 시장경제로 갓 진입한 그 시기 연변의 정부나 우리 성보는 기실 모순과 탐색, 지지와 협조속에서 함께 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그 어렵다고하는 중국시장이 나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된것이다.
성보빌딩을 지을 때 일이다. 정부 어느 부처의 비준을 받아야 했는데 웬일인지 연길시 시장이 문건에다 회시를 하였는데도 담당 처장은 자기한테 잘보이지 않으면 투자할수 없다고 큰소리치면서 한국투자인중 한 30명이상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 《쫓아버렸다》면서 투자하고싶으면 《국물》을 달라고 로골적으로 말하는것이였다. 그뿐이 아니다. 허가증을 수속하려고 해당부문을 18차나 다녔는데도 수속을 못한적도 있다. 성보창업초기 어처구니 없는 일은 참으로 많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우선 연변정부의 연성환경부터 살펴보자. 지금 정부는 경제발전연성환경건설에 진력하는데 그것을 모든 사업의 제일 첫자리에 놓는것으로 연변경제사회발전에 채찍을 안기고있다. 지금 투자를 하거나 창업을 하자면 정무대청이 나와서 수속이 대단히 편리하다. 더우기 외국기업을 포함한 기업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 관원들이나 기업경영에 방해나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서는 옛날처럼 사업부처자리만 바꾸어놓는것이 아니라 아예 파면까지 시킨다. 그래서 현재는 그전보다 기업경영에 힘든 일이 많이 줄었다.
성보빌딩을 지을 때인데 IMF의 영향으로 건축자금조달이 난관에 부딪쳤을 때 정부에서는 서둘러 2000만원을 대출해줘서 전면 개업할수 있었다. 그때 그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길 없다.
몇해전인가 한국의 참빛그룹 이대붕회장이 연길 하룡촌에 골프장을 개업하였다. 골프장건설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정부가 꼼꼼한 보살핌을 주었기에 어려운 여건에서도 시간 맞춰 세계적인 골프장으로 고고성을 울리게 되였다. 소방안전시설에 가벼운 문제가 있었던 모양인데 옛날 같으면 누구에게 물어볼것도 없이 해당부처들이 쳐들어가 벌금을 안기고 야단을 쳤을텐데 이번에는 이회장의 사업에 방해가 될가봐 그 측근들을 통해 소방법에 문제되는 부분을 지적해주어 수정할것은 수정시키고 보충할것은 보충시켰던것이다.
소방대에서 민주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고 해서 연변 전체가 단번에 변했다고 볼수는 없지만 세상만사 모든 일은 송곳끝이 구멍 뚫는 원리와도 같이 그 가늘고 미세한 한부분의 시작이 없다면 구멍이 뚫어질수 없다. 또한 우리의 노력에 따라 구멍의 크기도 달라지기때문에 우리 연변은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다.
투자환경이 많이 좋아졌다면 왜 크게 성공한 한국기업이 많지 않으냐 하는 의문도 제기될수 있을것이다.
기실 사업이라는것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게 다 쉬운것은 아니다. 혈렁헐렁 경영해서는 되는 기업은 없다. 피타는 노력과 정성을 다 해야 이루어지는 법이다. 기업경영인이라고 하면 기업경영에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수 있는 기업인이 능력자가 아니겠는가! 능력은 성공을 담보한다.
나는 연변에서 우리 한국기업인들이 너무나 안이하고 헐렁헐렁하면서 사는것을 많이 보아왔다. 황금시장에다 회사, 공장, 상점을 차려놓고 물가가 싸다고해서, 만만하게 보인다 해서 사장이 자가용이나 타고 뱀이나 곰발바닥을 먹으러 다니고 술집이나 노래방만 다닌다고 생각해보자 .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 성공할수 있겠는가?
나는 부자 만드는 성보의 회장이다. 우리 성보백화점 개업 10년동안 성보상인들은 부자가 되였다고 자타가 공인한다. 사실 그렇다. 14년전에 연변시장에는 한족들이 점포를 가지고 장사하고있었으며 조선족들은 책상보다도 더 작은 좌판을 가지고 길거리나 시장바닥에서 장사를 했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오늘은 어떠한가? 연변시내에 큰 점포와 깨끗한 점포주인은 대다수 우리 조선족이다. 이 얼마나 보람된 사업인가! 이 부자들은 내가 열번 방문하면 9.5번은 미련스럽게 열심히 회사나 점포를 지키고있는 주인들이다.
신가게를 운영하는 농민출신의 김억만씨 역시 그랬다. 그는 남의 땅까지 양도받아 죽어라고 농사를 지었지만 많이 남을 때가 한 5000원가량 됐다고 한다. 단돈 몇천원을 들고 성보에 들어온후 소비자에 대한 신용의 중요성을 깊이 느끼면서 장사를 현대시장경쟁에 맞게 억척스레한 결과 지금은 성보상인들중 주력으로 발돋움했으며 후에는 우리의 도움으로 금점까지 차렸는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있다.
우리 성보의 기업정신은 화합으로 부를 창출하며 나눔과 기쁨을 함께 하는 세상을 꾸며가는것이다. 하기에 우리 성보는 그룹의 모든 업주들이 부자가 되는것이 성보가 부자되는것이라고 홍보하고있다. 그래서 나보다도 우리 업주를 부자 만드는데 힘쓰는것이다. 성보상인들이 부자가 됨에 따라 성보는 전국의 한국상품집산지로 유명해지게 되였고 한발작 나아가 심양진출을 꾀하게 되였다.
이제 성보가 부자를 론하는것은 옛이야기 같다. 상인들의 꿈은 바로 거상이 되는것이다. 하기에 그들은 현대시장경제리론공부에 열을 올리고있다. 그 실례로 지난해말에 한국 조인스HR의 제1기 서비스교육졸업식이 있었는데 성보의 백화부문, 사무직부문, 식당서비스부문의 산하 사장, 직원 90여명이 졸업했다. 그외도 석사, 박사생공부까지 하는 상인도 있다. 이런 기반을 착실히 닦아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거상은 시간문제나 다름 없다.
한 인간으로서 태여나 자기 하나만이 아닌 내 주위의 사람들과 내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오늘에 와서 성보를 비롯한 사회인들의 더불어살아가는 의식은 점점 뿌리를 뻗어가고있다. 언제든지 딱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연길에 큰물이 졌댔다. 사회단체에서 재해지원을 조직하느라고 모금함을 들고 우리 성보에 왔댔다. 1시간이나 됐을가, 의연한 생필품과 자금이 17만원이나 되였다. 돈 있는 부자들이 모인 회사여서 가능한것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의식이 있었기때문이라고 짚어진다. 몇년사이에 우리 성보와 상인들이 사회문화사업과 희망공사, 고중, 대학생장학금, 그리고 여러가지 자선사업과 공익사업에 150여만원을 기부하였다.
지난 3월, 성보에서는 《연변성보장학재단》을 설립하였다. 성보본부와 성보상인회에서 자원 출자하여 설립한 비영리성 기업문화봉사기구로서 연변으로 말하면 첫 장학재단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성보이며 연변의 참모습이다.
중국의 변화는 곧 내가 사는 환경의 변화이고 중국의 발전은 곧 내가 사는 환경의 발전이다.
나는 중국과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이고 또 중국은 나를 너그럽게 끌어안아주는 고향의 품이다. 나는 중국이 마냥 좋다. 그래서 나는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을 나의 제2고향이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