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내부퇴직한 김만수의 3년간의 노력으로 룡정시장백산중약재재배시범기지가 초보적인 규모를 갖추었다. 기지수입은 2005년의 5만원으로부터 2006년에는 26만원으로, 올해에는 50만원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사이 그는 주변의 군중들에게 1만 2000개의 로동일을 제공하고 로임 36여만원 지출했다.
올해 58살인 김만수는 룡정시당위 농촌사업위원회의 퇴직당원으로서 여전히 부지런한 두손과 굳센 의지로 룡정시의 농촌산업구조조절을 위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고있다.
흑룡강성 목단강사범학원 생물학부를 졸업한 김만수는 1978년부터 사업에 참가한 이래 줄곧 농촌사업에 종사해왔는데 선후로 "전 성 과학교육흥농선진일군", "전 주 과학교육흥농선진일군", "룡정시외자유치선진개인" 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여러번 시급우수공산당원으로 평의되고 네차례나 성급과학기술성과 일등상을 받았다. 2001년에 내부퇴직한후 실제적행동으로 룡정시의 농촌산업구조조절에 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마음먹은 그는 외지로 가 고찰하고 많은 시장조사를 한후 중약재재배업이 룡정시 자지방실제에 알맞겠다고 판단하고 중약재기지를 꾸리기로 결정하였다.
중약재재배에 대해서는 룡정시에서 아무런 참고할만한 경험이 없었기에 김만수는 한달을 리용하여 만원돈을 쓰면서 동북3성의 각 큰 중약재시장과 중약재재배구를 돌아보면서 여러가지 중약재의 시장공급상황과 그 재배기술을 상세히 알아보았다. 기지건설에서 그가 부딪친 제일 큰 난문제는 자금부족이였다. 토지를 세맡고 종자를 사며 운수차량을 준비하는 등 배합적시설에 도합 100여만원이 있어야 하였다. 김만수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은 다 그의 계획을 반대하였고 그의 생각도 아주 복잡하였다. 지금 생활조건이 좋아지였는데 훌륭한 도시생활조건을 포기하고 농촌에 가 중약재재배를 하다가 잘못하면 고생살이하게 되고말것이였다. 하지만 자기의 오래동안의 숙원을 이루고 공산당원이란 명예를 빛내고자 그는 이런저런 압력을 이겨내고 계획실시에 달라붙었다. 우선 안해가 한국에 가 8년동안 고생스레 일하여 벌어온 돈을 밑천으로 하여 땅을 세맡고 공장건물을 세웠다. 후에는 집을 팔고 공무원대부금을 꿔서 중약재모를 샀으며 아들의 집을 담보물로 삼아 대부금을 내와 생산도구를 샀다. 석달간 힘써서 130여만원 투자한 룡정시장백산중약재재배시범기지가 끝내 일떠서게 되였다.
중약재재배를 해본적 없고 기술면에서 경험이 없었으며 또한 기지재배면적이 비교적 크고 약재모종류가 많아서 관리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여 기지건립초기 커다란 좌절을 겪게 되였다. 오미자모가 20%나 병에 걸려 죽었고 산살구모가 병충해로 하여 20%이상 죽었다…거대한 경제적손실앞에서 집사람들이 다 그더러 그만두라고 권고하였고 그 역시 주저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집요한 사업심을 가진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전문가한테서 배우고 많은 서적과 자료를 사 보면서 체계적인 학습을 시작하였다. 또한 인터넷 등 고과학기술수단을 충분히 리용하여 부딪친 난문제들을 제때에 해결하였고 인터넷을 통해 국내의 전문적인 중약재시장과도 련계를 맺었다.
기지가 세워진 날부터 김만수는 하루도 쉬지 않고 늘 네시간밖에 자지 못하면서 아침, 점심, 저녁 세차례씩 기지순찰을 하였고 병충해 등 문제가 생기면 제때에 해결하였다. 3년간의 드팀없는 노력을 거쳐 오늘 룡정시장백산중약재재배시범기지는 초보적인 규모를 갖추게 되였다. 이 기지는 토지와 림지를 18헥타르 세맡고 뜨락또르 여섯대를 갖추어놓았으며 생산과 운수에 쓸 차량 10대까지 있게 되였다. 200여평방메터되는 종업원주택을 짓고 600평방메터의 중약재로천건조창고와 30평방메터의 중약재실내건조실을 지었다. 기지수입은 2005년의 5만원으로부터 2006년에는 26만원으로 올랐으며 올해에는 50만원이상 될것으로 추산된다.
자기가 공산당원임을 항상 잊지 않는 김만수는 늘 신변의 군중을 생각한다. 중약재기지건설을 시작하여 지금껏 3년사이에 그는 주변의 군중들에게 1만 2000개의 로동일을 제공했고 로임을 36여만원이나 지출하였다. 당지의 농촌잉여로력은 문앞에서 수입을 늘이게 되였고 일자리도 얻게 되였다. 김만수는 또 주동적으로 농호들을 도와 중약재재배를 도와주었고 자금이 어려운 농가들에는 무상으로 모를 제공해주고 기술을 배워주었다. 지금 주변의 30여세대의 곤난호들이 기지로부터 오미자모를 5000여그루 제공받았다. 그의 도움으로 하여 어떤 재배호들은 빈곤에서 벗어나 중약재재배로 치부하는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농민들의 중약재재배에 기술적지지를 주려고 김만수는 기지의 분망한 일도 돌보지 않고 시간을 짜내여 기술학습을 하러온 농민들에게 중약재재배관리, 병충해예방퇴치 등 면의 기술경험을 전수해주었고 지어 책에도 없는 귀중한 경험까지 남기지 않고 모두 알려주었다.
김만수는 자신의 실제적행동으로 주변의 촌민들을 이끌어 농촌산업화조절템포를 다그치였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치부의 길로 나아가고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