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뉴스>>지부생활>>2007년 12월호>>훈춘특집
군민이 쌓은 "철옹성" 새농촌 건설의 "주추돌"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 군민 당건설 측기
2007년 11월 28일 13:12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훈춘시 동남쪽에 위치한 방천촌은 중, 조, 로 세 나라가 마주한 최전선에 위치해있다. "동방의 제1촌"으로 불리우는 방천촌은 이전에 3국이 잇다인 특수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데서 항상 경계심과 적막함에 사로잡혀있었다.

허나 개혁개방과 더불어 국경통제지역이 서서히 해제되면서 방천촌은 군민이 함께 가꾸고있는 조국변방의 하나 떠오르는 "새농촌"으로 부상하고있다.

이 촌의 경작지면적은 65헥타르에 달하고 총인구는 120명이다. 촌 당지부에서는 1995년부터 이곳에 주둔한 변방련대 당지부와 손잡고 군민이 함께 안정되고 부유하며 문명한 "초요촌'을 건설하기 위해 궐기해 나섰다.

군민 "두개 지부 한 교실"실행 사상정치건설로 "철옹성" 쌓아

특수한 지역과 특수한 환경으로 이 촌과 변방련대사이에는 갈라놓을수 없는 뉴대가 형성됐다. 즉 군민이 한마음으로 변강을 보위하고 농촌을 건설하는데 똘똘 뭉쳐나섰다.

촌당지부와 변방련대당지부에서 해마다 함께 당원학습교육계획을 제정하고 당원들의 정치신념을 확고히 하고 정확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수립시키는 원칙을 견지하였다. 이들은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과 등소평리론을 참답게 학습하면서 당원들의 사상각오를 제고했다. 촌당지부 대오건설이 박약하고 젊은 당원이 적으며 촌지도부 전투력이 강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방련대에서는 골간을 파견하여 당적극분자와 군중들에게 강의를 하고 당원후비대오를 발전장대시켰다. 현재 방천촌의 9명 농민이 당적극분자로 활약하고있다.

이 촌 당지부 서기 김만혁은 "두개 지부 한 교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형식과 수단을 통해 교육방법을 창신했다."고 소개했다.

변방련대의 교육조건이 뛰여나고 간부소질이 높은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련대회의실이나 촌당군중활동실을 교실로 련대의 우수한 간부를 교원으로 요청해 단계를 나누어 촌당원들에게 사상교육을 진행하고 강연회, 학습교류, 사적보고, 당원교육도편관람 등 다양한 형식의 학습을 조직했다. 농촌당원들의 학습흥취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변강지구의 실제에 근거해 적당하게 형세정책, 변경관리, 농업과학기술 등 방면의 학습내용도 증가하였다. 그리고 신변의 우수공산당원을 표본으로 내세우고 산교재로 광범하게 선전하였는데 방천촌 제1임 당지부서기 강태원의 곤난을 무릅쓰고 방천촌의 건설을 위해 혼신을 다한 사적으로 촌민들을 교육하였다.

"두개 지부" 건설 병행 기층조직건설 수준제고

이 촌의 김만혁촌서기는 촌당건설경험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촌당지부에서는 여러차례 로당지부서기들을 요청하여 방천촌건설초기 간고한 환경속에서 어떻게 집체의 지혜와 의력으로 곤난을 전승하면서 방천촌의 오늘을 이룩했는가를 강의하게 했다. 그리고 제도건설을 강화해 민주생활회, 당원대회, 촌사무공개, 당원담화, 당원학습, 당지부사업계획 등 일련의 제도를 완벽히 하였다. 한편 련석회의제도, 사업계획제도, 당지부공동건설제도를 건립하여 제도에 의거하여 두개 지부건설을 강화하고 조직생활을 규범화하여 지부의 지도능력을 제고했다.

촌과 변방련대당지부에서는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경상적으로 좌담회를 열고 비평과 자아비평을 전개하고 서로간의 오해를 해소하고 불리한 감정충돌을 미연에 방지하였다. 방천촌은 훈춘시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고 또 변강과 린접한 곳으로서 몇년래 조선의 전력을 사용하는 실정이였다. 그리고 위성접수기를 가설하지 못하다 보니 국내 텔레비죤프로그램은 시청할수 없었다. 이는 군중들의 문화생활에 엄중한 영향을 주었으며 더욱 중요한것은 당원들이 당의 로선, 방침, 정책과 개혁개방의 정보를 제때에 전달받을수 없었다. 하여 두 지부에서는 방천촌 군민들이 국내의 텔레비죤프로를 시청할수 있게 하기 위해 해당 부문의 지지를 얻고 자금을 쟁취하여 지난해 국내 전기를 사용할수 있게 되였으며 위성접수기를 가설하여 국내 텔레베죤프로그램을 시청할수 있도록 해 방천군민들의 정치문화생활이 풍부해졌다.

국방건설과 촌건설 "쌍풍작" 이룩

변방련대의 양위지도원은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방천촌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농민들의 수입증대를 실현하는것을 중심사업의 하나로 틀어쥐였다. 변방련대 지도부에서도 여러차례 연구와 조사를 진행하고 당지 농민들의 의견을 광범위 수렴하여 구역우세에 비추어 중점적으로 어업, 소사양, 민속관광을 기둥산업으로 발전시킬 사업사로를 정하고 농민들의 수입증대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강구했다. 방천촌에는 950헥타르의 방목초원이 있는데 변경군사관리지구로서 많은 지역은 리용할수 없었다. 게다가 풍사의 영향을 받아 리용할수 있는 초원은 100헥타르에 지나지 않는다. 자원을 충분히 리용하기 위해 변방련대와 촌당지부에서는 상급 해당부문의 지지를 얻어 500헥타르의 소사양기지를 새롭게 건설하였다. 그리고 두만강변에 자리잡고있어 어업자원이 풍부한 유리한 조건을 리용해 당지 촌민들만이 어업에 종사할수 있도록 하는 관련 규정을 제정하여 촌민들의 어업수입을 보장했다. 전에는 관리소홀로 불법어업자들이 마음대로 두만강에서 불법어업을 하다보니 관리가 혼란하고 이러저러한 불유쾌한 일들이 자주 발생해 촌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하여 해당 부문에서는 "두만강어업관리규범정책"을 출범시켜 불법어업자 어업활동을 통제하고 당지 어업민들의 리익을 수호하였다. 국가급관광명승구에 위치한 방천촌은 한눈에 3국을 바라볼수 있는 독특한 지리우세를 가지고있다. 하여 이 촌에서는 국가빈곡부축자금 300만원을 쟁취하여 관광, 무역, 오락을 일체화한 민속촌을 건설하려 하고있는데 이미 마무리단계에 처해 있으며 훈춘변경의 또 하나의 풍경선으로 부상하고있다.

김만혁촌당지부서기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방안전은 중국 공민의 신성한 의무로서 이 촌에서는 변방련대를 적극 협조하여 변경질서를 수호하고있다. 새로운 시기 변경관리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정황, 새로운 문제에 근거해 방천촌당지부에서는 변경관리선전을 강화했다. 이 촌에서는 해마다 변방련대와 함께 "방천군민변경관리준칙"을 제정하여 조한문으로 준칙을 인쇄하여 매 농호에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촌에서는 변방련대와 함께 련방대를 설립하여 변방관리에 나섰다. 그리고 가축들이 월경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촌에서는 가축우리수건을 하였다. 근년에 촌민병련에서는 월경하려는 인원들과 월경해 온 사람을 연인수로 70인차 나포하였다. 이처럼 매농호마다 보초를 서고 사람마다 보초병이 되는 량호한 사회분위기가 형성됐다.

"두개 민족 한 가정"을 이뤄 단결되고 조화로운 방천촌을 건설

이 촌의 김만혁촌서기는 "방천촌에는 '두가정'이 있는데 하나는 방천촌민이고 하는 변방주둔군"이라고 소개했다.

촌민 대다수는 조선족이고 장병 대다수는 한족이다. 다년래 이촌에서는 시종 부대장병들과의 단결을 강화하였다. 변방련대에 신병이 오면 이 촌에서는 자발적으로 꽹과리를 울리고 북을 치면서 신병을 환영했고 신병이 방천을 익숙히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어 신병들이 하루속히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리행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련대 로병들이 퇴역하면 자기 집에 초청해 조선족음식을 접대하군 했다. 그리고 해마다 "8.1"절, 추석, 설명절이면 촌당지부에서는 군영을 위문하고 전사들과 함께 련환모임을 가졌다. 1997년 겨울 변방련대의 돼지사료칸에 불이 났을 때 촌민들은 변방련대 장병들과 함께 불을 끄는 한편 력량을 동원하여 군인들과 함께 100여평방의 돼지사료칸을 새롭게 수건하였다.

방천촌 촌민들은 변방련대 전사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고 변방련대 전사들은 방천촌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간주하고있다. 군중들이 곤난을 겪으면 변방련대에서는 발벗고 나섰다.

2002년 여름, 련일 내린 폭우로 촌부근의 물집이 범람하면서 방천촌의 안전이 위협받았다. 전체 장병들은 이 위급한 시기에 긴급출동하여 비속에서 길이 20메터 높이 1메터되는 제방을 쌓아 방천촌의 안전을 보장했다. 변방련대 당지부에서는 또 이 촌의 고아 안광렬 어린이를 4살때부터 보살펴주었다. 이 촌의 5보호인 김덕성 량주는 신체가 불편하여 육체로동에 참가할수 없고 부업도 할수 없었다, 하여 련대에서는 이 가정을 중점 부축대상으로 삼고 전문적으로 한개 반의 전사를 배치하여 이 가정의 생산로동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리고 변방련대의 장병들은 경상적으로 촌민들을 방조하여 겨울에는 눈을 쳐내고 도로를 수건해주고있다. 방천촌 당군중활동실을 건설할때 변방련대 장병들이 활동실 신축공사에 적극 발벗고 나섰으며 부업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농민들에게 농업과학기술서적과 문화체육시설을 구매해주어 농민들의 업여생활을 풍부히 하였다. 현재 변방련대에서는 또 상급 해당 부문으로부터 자금을 쟁취하여 오소리사양기지를 건설해 촌민들과 함께 사양하는데 이 수입을 전부 촌건설에 사용한다.

10년간 방천촌의 두개 당지부의 공동노력으로 변방련대당지부는 2006년 심양군구로부터 "국문호위련"칭호를 수요받고 방천촌당지부는 훈춘시당위로부터 "한마음으로 보루를 쌓는" 활동에서 선진집체로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방천촌은 또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의 "당건설종합시범촌"으로 평의되는 영광까지 획득하였다(리성호, 윤성환 기자).

  래원: 지부생활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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