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조화로움은 결국 인간 마음속의 조화로움에 의해 산생된다. 심령의 조화로움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조화로움이다.
유감스러운것은 지난날, 우리가 자주 웨치던 "세계관을 개조하자", "객관세계를 개조하는 동시에 자기의 주관세계도 개조하자"는 등 구호는 이미 현실생활에서 멀리멀리 사라졌다. 사회의 수요마저 이런 언어의 소실과 함께 사라진것은 절대 아닌데…
조화로운것은 미의 일종 표달방식이고 조화로움 역시 미의 일종이다. 다시 말하면 조화로운 미는 그 무엇보다도 더욱더 아름다운 미라고 할수 있다.
"조화로운 사회" 역시 우리 마음속의 가장 아름다운 사회이다.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경제면에서 발걸음을 재우쳐야 할뿐만아니라 사회적인 종합목표도 추구해야 한다. 이는 일종 사회적인 각성이며 크낙한 진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하지만 이런 목표와 임무를 제기한것은 아직도 우리의 사회에 조화롭지 못한 이런저런 문제와 부족점들이 존재하고있기때문일것이다. 우리의 사회주의는 한창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점들도 부단히 발견되고있는 현실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활교향악의 주선률과 그다지 조화되지 않는 일부 음부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도시와 농촌지역의 불균형적인 발전수준, 불합리한 경제구조, 사회 각 분야의 개혁정도의 차이, 날로 심각해지는 자원환경문제, 날로 심화되는 리익다원화추세, 점차 격화되는 소득분배의 차이, 날따라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공평과 효률문제…
하지만 가장 큰 불조화의 요소는 결코 이것들이 아니다.
사회발전의 최종원동력으로서의 생산력은 실천중에서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한 목표를 위해 추진하는 협력에서 표현된다. 그런데 각 사회성원들이 힘을 쓰는 방향이 통일되지 않았거나 힘쓰는 강도가 일치하지 않으면 이 협력은 대대적으로 감소되기 마련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노라면 나 자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는 말을 입에 달고있으면서도 때때로 권세욕과 물욕 같은 사심으로 내심세계를 번뇌, 모순의 발상지로 만들기도 했으니 어찌 "완전"하고 "철저"하게 일처사를 할수 있으랴.
주위를 둘러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명을 창조하는 한편 야만을 이끌어내고 한쪽으로 건축을 하면서 한쪽으론 파괴를 하고있는 사람들과 둬발작 전진하고는 한발작 뒤걸음치는 사람들.
저기를 보라, 아름다운 건축물의 미끈한 벽에 "소버짐"이 이리저리 란잡하게 붙어있다. 강변의 인도에 세워놓은 철바자는 누군가에 의해 페철로 팔려가고 넓고 깨끗한 길거리에서 행인들은 쓰레기버리기 시합이라도 하는듯 하다. 장미색 입술연지를 바른 예쁜 입에서 걸죽한 험담들이 쏟아져나오고 각종 범죄와 부패행위는 그렇게 타격을 가하는데도 그칠줄을 모른다…
왜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아름다운 리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도 본의 아니게 혹은 고의적으로 서로에게 장애와 저력이 되여주는걸가? 참으로 리해할수 없는 일이다.
사회생활중의 이런 조화롭지 못한 현상들은 원대한 리상과 실제적행동, 주관적동기와 객관적효과, 나아가 물질생활과 정신생활간의 대조적인 면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사회상의 암흑면이나 소극적인 요소들은 아주 잘 보아내지만 자신의 병집에 대해서는 자기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며 사회나 타인이 자기에게 잘 해줄것을 희망하면서도 자기는 사회와 타인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잘 모르고있다. 이러고보니 사회적인 불조화를 형성하는 문제의 초점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듯 하다.
사회의 조화로움은 결국 인간 마음속의 조화로움에 의해 산생된다. 심령의 조화로움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조화로움이다. 조화로움을 추구함에 있어서 각종 외재적인 조화로움도 추구해야지만 더우기는 자기와 타인, 자기와 사회지간의 조화로움에 더욱 중시를 돌려야 할것이다.
이를 위해 매개 사람은 자신의 심리상태를 잘 조절해 대공무사하고 태연자약하며 문명하고 활달하며 공정하고 고상한 사람으로 되여야 할것이며 자기의 언행을 사회생활의 주선률속에 영입해 우리의 사회를 점차 조화로운 사회로 밀어나가야 할것이다.
유감스러운것은 지난날, 우리가 자주 웨치던 "세계관을 개조하자", "객관세계를 개조하는 동시에 자기의 주관세계도 개조하자"는 등 구호는 이미 우리의 현실생활속에서 멀리멀리 사라졌다. 물론 사회의 수요마저 이런 언어의 소실과 함께 사라진것은 절대 아니다. 실제상 사회주의현대화건설은 개조를 떠날수 없으며 주관세계에 대한 개조와 객관세계에 대한 개조는 서로 영향주고 서로 제어하는 모순인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조화로움을 추구함에서 우선 자신에 대한 주관세계부터 칼을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누가 감히 "나는 성인이다" 혹은 "나는 완벽한 사람이다"고 하면서 개조를 거부할 자격이 있을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