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성해방운동은 남녀평등권을 위하여 녀성이 사회에 나가 직업사회의 경쟁에 참여할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남녀평등권관념은 늘 남녀성별차이와 부동한 사회분공의 홀시를 초래한다. 허다한 녀중호걸들은 남성권위에 도전할뿐더러 자기의 성별특정에 대해서도 도전하며 공동한 인간성면에서만 남녀를 따지기에 "인간성만 있고 모성은 없다"는 철학적개념이 구호로 되고있다.
녀권주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일부 녀중호걸들은 녀인의 특성을 잃다보니 "인간성만 있고 모성은 없는"구호가 현실로 되여가고있다.
그녀들은 자각적으로, 자원적으로 이미 얻은 사회적권리를 수호하면서 자각적으로 자기의 모성본능을 억제하고있다.
남녀가 공동히 구비하고있는 인간성이 인류의 제1천성이라 한다면 모성은 녀성의 제2천성으로 되는데 남성은 이와 대응되는 제2천성이 없다. 다시 말하면 모성은 녀인의 인간성의 구체적인 구현이다. 하기에 녀인의 인간성은 남성보다 더 풍부하다.
녀성의 사회성을 발전시키고 녀성의 경제적지위를 향상하는것은 전적으로 정확하다. 그러나 이로하여 녀성의 모성을 말살한다면 좀 빗나간듯하다. 남성과 녀성은 성별의 부동함으로 하여 일정한 사회적분공이 있는데 이는 천성적인것으로서 인위적으로 이런 성별분공을 말살하는것은 인간성의 풍부성을 상해할뿐 녀성의 인간성을 해방하고 풍부히 할수 없다.
현시대는 제품의 질은 중시하고있으나 인간 자체의 생산과 그 질에 대해서만은 중시를 돌리지 않고있다. 오늘날 그 어떤 사업에 종사하든지 상응한 재능훈련을 거쳐야 하지만 유독 출산이나 어머니가 되는 이 가장 신성하고 간고한 사업만은 그 어떤 훈련이나 교양을 요구하지 않고있다. 거의 모든 녀성들이 해산을 앞두고 생육지식이나 간호지식에 대해 전혀 료해가 없다. 이런 현상의 배후를 살펴보면 인간의 권리와 수요 및 특성에 대해 아주 홀시하고있다. 하기에 아이들의 권리와 어머니의 권리에 대한 박탈은 거의 자연적인 순리로 되였다.
사회성 명의 또는 인간성 명의로 모성을 외곡, 억제하는것은 모두 녀성해방운동의 방향을 헛갈리게 한다. 이런 문화상태를 개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놓는다.
고중과 대학에서 녀학생을 위하여 생육, 간호지식 선택과목을 설치해주어 그들이 향후 어머니가 되는데 지식적인 준비를 할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의 교육은 단지 직업전도를 위한 지식준비에 불과하다. 어머니가 되는것은 위대한 사업으로서 위대한 사업일수록 충족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바 우리의 사회가 교육제도와 교육자원에서 인류자체의 생산이란 이 위대한 사업에 대해 상응한 지지를 주지 않을 리유는 없다.
녀성이 임신해서부터 해산하기전까지의 전반 임신기간에 임신부가 해산하기 전날까지 일터에서 헤매는 상황을 돌려세워 해산하고 아이를 기르고 간호하는 지식훈련을 가일층 받아야 한다. 지금 도시의 녀성들의 임신, 생육의 질은 갈수록 떨어져 이 면에서 나타나는 문제비례가 갈수록 높아가는바 단순히 의사한테만 의거하려 해서는 안된다.
어머니가 해산한후 적어도 3년간의 산후휴가를 가져야 하며 정부나 기타 사회기구에서는 편리를 도모해야 한다. 아이가 3살전에는 기본자질의 개발과 발전의 관건적인 시기로서 이 기간에 세계에 대한 기본감지와 감수가 정해지므로 사랑과 세심한 간호가 수요되며 풍부한 정보로 각종 감각기관을 개통하고 각종 신경세포와 상관 기능의 발육과 발전에 자극할것이 수요된다. 이 기간에 아이를 로인이나 보모 또는 탁아소에 맡긴다면 아이의 기본자질개발과 발전을 담보할수 없다. 어머니의 심혈과 모성의 보호만이 이를 완수할수 있다.
적어도 1년간의 어머니의 젖으로 키워야 하는데 이러자면 어머니가 아이의 요람을 지켜야 한다.
인류의 미래는 차세대에 달렸다고 하는데 우리는 차세대의 미래가 어머니한테 달렸다는것을 곧잘 망각한다. 녀인의 모성이 발전할수록 사회발전에 대한 차세대의 기여가 크다. 이를 잊어서는 절대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