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신나는 우리의 민요가락이 드넓은 연길시인민경기장에 울려퍼진다. 그 곡에 맞추어 백여명씩 되는 무용팀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나오더니 나중에는 한데 모여 대형무용으로 되여버린다. 무용이 고조에 이르자 관중들까지 흥에 겨워 하나둘 그사이에 끼여들어 흥겨운 춤판을 벌린다......
이는 연변무용가협회에서 창작해낸 첫 연변조선족대중집체무용, 지난해 9.3을 맞으면서 군중들앞에 정식 선보였다.
기자는 전 주적인 연변조선족대중무 보급을 앞두고 연변무용가협회 비서장 최은희씨를 만났다.
● 민족무용을 브랜드로 내세우기 위한 발상
연변은 줄곧 "노래와 춤의 고향"으로 불리워왔지만 여태껏 연변의 특색을 살릴수 있는 대중적이고 통일적인 집체무용은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무용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외 민간의 조선족무용은 거개가 두팔을 그냥 들고 좌우로 휘젓는 등 간단한 동작에만 그치고있는 현실. 이에 최은희씨는 "이제는 타민족들마저 조선족복장을 입고 두팔을 흔들기만 하면 그게 조선족춤인가고 여기는데 그게 절대 아니다. 우리 민족의 무용은 특유한 운률과 호흡, 장단, 움직임 등이 따르는 아주 대단한 무용"임을 강조했다.
사실 우리의 민족특색을 살리면서도 군중들과 함께 즐길수 있는 대중적매력을 구비한 조선족무용을 우리 주의 민족문화브랜드로 내놓기 위해 연변무용가협회는 고민한지가 오래됐다고 한다.
"연변조선족대중무용을 창작해내 전 주 각지에 보급시키는것은 우리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고 민족문화를 발양하는데도 유리하겠지만 한편 우리 연변의 문화브랜드로 내세워 더욱 많은 외래손님들을 끌어들이고 나아가 우리 연변의 지명도를 높이며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는데도 유리할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는 주당위, 주정부의 중심사업을 위한 우리 무용가협회의 밀어버릴수 없는 책임이지요."
● 장장 2년간의 신고 연변조선족무용 탄생
그뒤 연변무용가협회는 2005년부터 정식으로 창작소조를 무어 구상중이던 "연변조선족대중무용"을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했다.
"일단 군중들이 흥취를 느껴야 하고 또 배우기 쉬우면서도 우리 민족의 특색을 살려야 하기때문에 무대에서 표현하는 무용과는 달랐습니다. 무용전문가들로 무어진 창작소조가 창작한 무용을 군중들이 접수할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민간에 내려가 의견을 청취하면서 접수하기 어려워하거나 효과가 좋지 못한 부분은 몇번이든 다시 창작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수없는 반복이 계속되였답니다." 최은희씨는 당시 힘들었던 창작과정에 아직도 심회가 깊다.
근 2년간의 신고를 거쳐 지난해 5월, 우리의 민요 "도라지"와 "노들강변", "옹헤야", "아리랑" 등 네 곡을 묶어 8분정도 지속되는 첫 "연변조선족대중무용이" 고고성을 울렸다.
"인차 연변조선족대중무용 보급의 가능성을 확인하고저 연길시를 시점으로 제일 먼저 연길시의 무용선생님들한테 배워주고 무용선생님들이 다시 각 가두에서 100명씩 뽑아 춤을 배워준후 지난해 9.3을 맞이하면서 연길시경기장에서 표현을 한겁니다. 춤공연에 참가한 사람들은 물론 아직 춤을 배우지 못한 관중들까지도 열정적으로 따라 출수 있는 등 효과에 착안했어요. 물론 이 무용이 진정으로 연변의 브랜드로 되자면 유력한 홍보와 구체적인 조치가 있어야 하거니와 더우기는 정부차원 각 부문과 광범한 시민들의 다함없는 지지가 필요됩니다."
● 전면적인 보급에 가동
최은희씨의 소개에 따르면 연변무용가협회는 지난해부터 새농촌건설의 추세에 발맞춰 "새농촌무용교육프로젝트를 시작, 전 주 각지에서 모여온 49명의 무용교원들을 상대로 대중무용을 전수하면서 "연변조선족대중무용"의 보급을 위한 준비사업에 열을 올리고있다.
그는 "올해 연길에서 열리게 될 '중국북방관광교류회'에서 '연변조선족대중무용'은 연변의 민족풍채를 크게 전시할것이며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것이라고 신심있게 말했다(기자 리혜숙 사진 최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