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묵은해를 돌아보는것은 인간의 본성이라 할가. 잘한것도 못한것도 필림마냥 선히 떠오른다. 그러면서 "좀더 잘했더라면", "좀더 노력했더라면", "좀더 신중했더라면"하는 후회가 저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런 미타한 점이나 실수가 왜 생길가? 거기에는 주객관적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주관적인 면에서 남들과는 좀 다른 측면에서 분석해보고싶다. 한마디로 말하면 원인은 자기에 대한 무책임한 양보라고 짚어진다. 양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남에게 사양하여 물러서는것"으로만 여겼고 그것을 일종의 미덕으로 긍정해왔다. 그 대표적인 실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것을 달갑게 양보하는 어머니의 위대한 모성애이다.
그런데 살아온 인생을 더듬어보노라면 양보는 단순히 남에게 사양하는 뜻만이 아닌 자기에 대한 양보도 있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어쩌면 자기에 대한 양보가 다른 사람에 대한 양보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일생에서 시시각각으로 판단과 선택을 떠날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생명은 부단히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한 판단과 선택에서 우리는 흔히 그 무슨 조건을 앞세우고 자기를 양보하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옳다고 판단한 일을 선택하지 못하고있다. 피곤하다고 오늘 할일을 래일로 미루기도 하고 지어 사리사욕을 참지 못해 인민에게 미안한 일을 하게 된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그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무책임한 양보로 비롯된것임을 심심찮게 알수 있다. 정말 가슴에 손얹고 숙고해보면 그 이른바의 사소한 양보가 모이고모여 결국 큰일을 저지르고 지어 자신을 망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가장 큰 적수는 자기에 대한 양보라고 할수 있다.
실생활과 사업에서 이런 무책임한 양보가 없을수는 없다. 왜냐 하면 우리는 인간이기때문. 허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견지에서 볼 때 우리는 되도록이면 적게 범해야 하고 위험한 양보, 원칙적인 양보는 하지 말아야 하는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도로 가는 길이고 안전하게 뜻있는 인생을 가꾸는 길이라고 말하고싶다.
자신에 대한 양보가 자기의 위험한 적수라면 자기의 지휘관은 바로 자신이다.
새해가 돌아왔다. 자신을 좀더 엄격한 지휘관으로 성숙시켜 자기의 적수인 양보를 이겨야 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