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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에서의 력사적순간들
2006년 12월 14일 14:15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장정은 생명으로 쓴 영웅적서사시이며 인류정신의 불굴의 상징으로 된다.  아래에 70년전의 그번 위대한 원정에서의 열개의 력사적순간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상강에서의 싸움

이것은 홍군장정로상에서 손실이 제일 심한 한차례 전투였다.

    

장개석은 상강의 천험을 뒤심으로 삼아 네번째 봉쇄선을 펼치고 25개 사단의 30만명이 넘는 국민당군대를 광서북부 월성령과 도방령사이의 상강량안에 배치해놓고 한달남짓이나 련속 세갈래의 봉쇄선을 뚫고 나온 중앙홍군을 기다리고있었다.

    

1934 11 27, 홍군선두부대가 상강 계수방선을 돌파하자 상강혈전의 서막이 열리였다. 12 1일까지 중앙홍군은 주야로 5일간 고전하여 끝내 상강을 건넘으로써 중앙홍군을 상강북쪽에서 포위섬멸하려던 장개석의 시도를 분쇄하였다.   

               

2. 준의회의

    

1935 1 15일부터 17일까지 준의에 있는 원 귀주군 사단장 백휘장공관의 2층에서 중공중앙은 정치국확대회의를 열고 모택동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한다는 등 네가지 결정을 채택하였다. 회의후에 모택동, 주은래, 왕가상으로 구성된 《3인군사지휘소조》를 세우고 홍군의 군사행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모택동의 핵심적지위를 확립하였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14년래 처음으로 독립자주적으로 중국혁명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한것이다.

          

3. 적수를 네번 도하

    

3: 40. 홍군과 국민당군대는 적수류역에서 그 병력대비가 장정이래 제일 현저한 수준에 이르렀다.

   

첩첩한 어려움속에서 모택동은 중앙홍군을 이끌고 우리 군 력사상 제일 이채로운 순간을 펼치였다. 첫번째로 적수를 건너 북쪽으로 가 장강을 넘는척 하고는  귀주성북부로 돌아왔고 두번째로 적수를 건너서는 동쪽으로 돌아와 적들에게 홍군이 북쪽으로 가 장강을 건너려 한다는 착각을 주고는 닷새사이에 동재, 루산관, 준의를 탈취하였다. 세번째로 적수를 건너서는 다시 사천남부로 들어가 장개석이 사천남부에 많은 병력을 집결시킬 때에 홍군은 이미 적군사이를 빠져나갔다. 네번째로 적수를 건너서는 다시 오강을 건너 귀양으로 가다가 귀양에 있는 장개석이 급히 병력을 귀주에 집결시키는 때에 홍군은 운남으로 들어갔다…

     

4. 금사강을 교묘하게 도하

    

1935 4 6, 중앙홍군이 귀양에 접근하자 귀양에서 싸움을 감독하던 장개석은 급히 군대를 귀주로 집결시켰다. 운남의 손도종대가 다급히 귀주로 들어갈 때 홍군은 도리여 그 기회를 타서 운남으로 진군하였다.

    

곤명이 위급해지자 장개석은 금사강방선으로부터 세개 퇀을 철수시켰다. 운남 서북부의 금사강연선은 거의 무방비상태의 지대로 되였다. 4 29, 홍군은 곤명을 에돌아 세갈래로 나뉘여 금사강쪽으로 갔다.

    

5 3, 교평도를 탈취한 홍군은 일곱척의 쪽배에 36명의 당지 배사공들의 도움을 받아 순리롭게 도강하여 수십만 적군의 포위를 벗어났다.

  

5. 대도하를 건너고 로정교를 탈취

   

1935 5 25일부터 29일까지 중앙홍군은 두번이나 장정로상에서의 제일 이채로운 경전적인 싸움을 벌리였다. 그번 두차례 싸움은 대도하를 건넌것과  로정교를 탈취한 싸움이였다.  5 24, 홍군선두부대 1퇀이 갑자기 대도하 안순장나루터에 나타나 한척의 목선을 탈취하였다. 이튿날 아홉시에 영장 손계선이 17명 용사를 거느리고 기적같이 도강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물살이 세고 배가 적어 홍군은 신속히 도강할수 없었다. 안순장북쪽 320리밖의 로정교가 유일한 통로로 되였다.  2 4퇀은 5 29일 여섯시에 로정교에 도착하였다. 이때 로정교에는 열세갈래의 철사줄밖에 없었다. 16시 정각에 련장 료대주 등 22명으로 구성된 돌격대가 흔들흔들하는 철사줄을 밟고 대안으로 돌격해갔다. 앞의 돌격대원이 떨어지면 뒤의 대원이 이어갔다…19시에 홍4퇀은 사천군을 격퇴시키고 일거에 로정교를 점령하였다.

           

6. 랍자구를 돌파

    

랍자구는 중앙홍군이 장정로상에서 넘은 마지막 천험으로서 그 둘레에 군산이 솟아있고 협골길 너비는 8메터밖에 안된다. 랍자하가 협곡에서 세차게 흘러나오는데 그 우에는 한메터 너비의 나무다리만 있을뿐이다. 산뒤는 널려져있는 적군의 세개 퇀은 홍군의 북상길을 막으려 노리고있었다.

   

1935 9 16일 오후, 홍군선봉 홍4퇀은 천험을 향해 돌격을 개시하였다. 협곡이 너무 좁아 병력을 분산시킬수 없기에 오후부터 야밤까지의 열몇차례되는 련속돌격이 다 실패하고말았다.

  

관건적인 시각에 별명이 《운귀천》이라는 한 묘족전사가 나서서 절벽에 기여올라 돌격대원들을 가만히 적들의 배후에까지 인솔하였다.

    

새벽에 붉은기가 랍자구에 꽂히고 북상통로가 열리였다.

           

7. 직라진대승리

   

1935 10 19, 중앙홍군은 섬서북부의 오기진에 이르렀다. 장개석은 홍군병력의 세배나 되는 병력으로 중앙홍군과 섬북홍군 및 먼저 섬서북부에 도착한 홍25군을 몽땅 소멸하려고 시도하였다.

   

어떻게 발을 붙일것인가? 당중앙과 모택동은 참답게 분석한후 섬북 부현 현소재 서북방향 45킬로메터밖에 있는 직라진에 매복해 기다리기로 결정하였다.

   

21일 새벽에 전투가 시작되였다. 1군단은 북쪽, 서북쪽, 동북쪽으로부터, 15군단은 남쪽, 서남쪽, 동남쪽으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시작하였다. 24일 오전까지 홍군은 적군의 한개 사단과 한개 퇀을 섬멸하고 109사단 사단장 우원봉을 격사함으로써 서북쏘베트구역에 대한 국민당군대의 세번째 《포위토벌》을 철저히 분쇄하고 당중앙이 중국혁명의 대본영을 서북에 설치하는데 토대를 닦아놓았다.

             

8. 독수진혈전 

    

1934 11 26, 홀로 원정하여 열흘이 되자 3000명도 되지 않는 홍25군은 하남 방성 독수진에서 국민당보병과 기병 4000여명의 맹렬한 공격에 부딪쳤다.

    

당시 바람이 강하고 비가 세차게 내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옷이 엷어 손발이 얼어든 홍군전사들은 삽시에 피동에 빠지게 되였다.

    

위급한 시각에 군정치위원 오환선이 큰칼을 들고 앞장서 적진으로 돌격해들어갔다…부군장 서해동이 후속부대를 거느리고 달려와서야 강적의 겹겹한 포위망을 격퇴할수 있었다.

            

9. 가릉강격전

    

1935년초에 사천, 감숙 변계로 나아가 중앙홍군과 협력하여 운남, 귀주, 사천에서 작전하기 위하여 홍4방면군은 가릉강도하작전을 벌리였다.

    

3 28일 밤, 도강주공부대인 30군이 사천 창계현 탑산만 나루터에서 강행도하하여 사천군벌의 서쪽기슭방비망을 찢어버리였다. 이와 함께 31, 9군도 각기 원계구와 랑중이북의 나루터에서 가릉강서안으로 나아갔다.

     

24일간의 도강작전을 거쳐 홍4방면군은 동쪽으로는 가릉강부터 서쪽으로는 북천에 이르기까지, 남쪽으로는 재동으로부터 북쪽으로는 사천감숙변계에 이르기까지의 종횡 200리내지 300리의 넓은 지역에서 적 1만여명을 섬멸하였다.

            

10. 오몽산싸움

    

1935 11 19, 2, 6군단의 근 1 7000명은 호남 상식 류가평 등지로부터 출발하여 장정의 길에 올랐다.

    

19362월 하순에 홍2, 6군단은 안순지구로 전이하였지만 적들이 전방에 많은 병력을 배치해놓았기에 오몽산 북쪽기슭으로 나아가게 되였다.

    

3 2일부터 29일까지 홍2, 6군단은 위녕, 진웅, 소통, 이량 일대의 오몽산지구에서 천리를 에돌아 병력상 10배나 되는 적들과 우회전을 벌리였으며 이측하, 득장파 등 전투에서 적들에게 심한 타격을 안기였다.

    

그후 홍2, 6군단은 신속히 운남으로 옮겨가 4월 하순에 금사강을 순조롭게 건너 북상하였다.

  래원: 지부생활 (편집: 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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