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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포병의 창시인 무정
2006년 12월 14일 14:53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무정은 홍군에서 영용하게 싸운 조선적 지휘원으로서 포술에 정통하여 홍3군단장 팽덕회의 칭찬을 받았을뿐더러 광범위한 장병들로부터 홍군포병의 창시인으로 불리웠다.

     

무정은 홍군에서 영용하게 싸운 조선적 지휘원으로서 포술에 정통하여 홍3군단장 팽덕회의 칭찬을 받았을뿐더러 광범위한 장병들로부터 홍군포병의 창시인으로 불리웠다. 그는 장정에서 포병영을 거느리고 용맹하게 싸워 수차 전공을 세웠다.

    

무정의 원명은 김무정이다. 1905년 조선 함경북도 경성군태생으로서 1919년 무정은 조선의《3.1》반일애국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이로부터 그의 혁명생애는 시작되였다.1923년초 그는 무수한 조선지사들과 마찬가지로 조선독립의 길을 찾아 비밀리에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왔으며 이로부터 중국에서의 22년간의 전기적경력이 시작되였다.

    

무정은 중국로농홍군에서 련장, 영장, 퇀장 등 직을 력임했으며 중공쏘베트지역의 5차 반《포위토벌》에 참가하였다. 장정이 시작된후 무정은 군위 제1종대 제3제대 대장 겸 정위로 있었으며 1934 12월 려평회의이후 홍3군단 포병영 영장으로 전근되였다.

    

간고한 장정에서 무정은 포병을 거느리고 싸우면서 전진하군 하였다. 적들의 네번째 봉쇄선을 돌파할 때 무정이 거느리는 포병영은 평석에서 단독으로 작전하였는데 적의 한개 보안퇀을 섬멸하고 적군 100여명을 격사했다. 가장 이채로운것은 무정이 광서 룡승지구에서 지휘한 저격전이다. 당시 홍군은 상강을 돌파한지 얼마 안되였는데 사상자가 절반이나 되다보니 하는수 없이 적들의 력량이 약한 귀주로 향발했다. 도중에 중앙종대는 광서군벌 리종인의 부대를 만났다. 3군단은 적들의 방선을 뚫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웠고 팽설풍이 인솔하는 제4사단을 파견하여 적을 저격하면서 주력부대의 방선통과를 엄호하게 하였다. 4사단은 옹군 하루동안 싸웠는데 사상자가 아주 많았다. 총부에서는 무정의 포병영을  전투에 가담시켰다. 팽설풍은 《한사람이 남더라도 꼭 지켜내야 한다. 당신들의 배후는 바로 중앙종대이니 한발작도 후퇴해서는 안된다》고 무정한테 말했다. 무정은 포병영을 지휘하여 영용무쌍하게 싸워 중앙종대를 엄호하는 임무를 승리적으로 수행하였다. 그후 홍3군단 포병들은  보병과 배합하여 홍군의 앞길을 가로막는 적군을 물리쳤으며 루산관 등 전투에서 포병의 위풍을 보여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놀았다.

    

1935 6월 홍1방면군은 사천 무공지구에서 홍4방면군과 회합한후 장국도는 당중앙이 잠시적인 곤난에 직면한 틈을 타서 당과 홍군의 최고령도권을 찬탈하려 시도하였다. 8월 중순 홍3군단 군단장인 팽덕회는 군위참모부가 각 군단간 및 각 군단이 중앙혁명군사위원회 모택동한테 통보하는 비밀번호를 전부 회수해 가서 각 군 과 군위간의 직접적인 련계가 중단되고 전위총지휘부(장국도가 령도하는 홍4방면군)와만 통보하게 된 사실을 발견하였다.  만일을 고려하여 팽덕회는  3군단더러 비밀번호를 따로 달게 하고 림표가 인솔하는 홍1군단과 련락을 회복하여 손잡고 중앙의 안전을 보위하기로 하였다. 팽덕회는 이 중임을 무정에게 주었다. 무정은 무전기와 비밀번호책 그리고 지남침을 가지고 감숙에서 홍1군단을 찾아떠났는데 간난신고끝에 임무를 제때에 수행하였다.

     

무정이 비밀번호책을 홍1군단에 넘겨주는 그날에 장국도는 진창호한테 비밀전보를 보내여《남하하여 당내투쟁을 철저히 전개하라》고 하면서 중앙과 중앙홍군을 해치려 하였다. 모택동은 과단하게 홍3군단과 군위종대를 이끌고  즉시 아계에 가서 홍1군과 합류함으로써 장국도의 음모를 짓부셨다. 무정이 홍1군단과 3군단간의 무전련락을 제때에 회복시킨 이 일은 홍군의 생사존망을 결정하는 이번 행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홍군이 장정을 시작할 때 양림, 무정 등 조선인이 30여명 되였는데  섬북에 도착하고 보니 양림과 무정 두사람만 남았다. 그나마 양림이 어느 한 전투에서 희생되다보니 장정에서 남은 조선인홍군은 무정 한사람뿐이였다. 양림이 희생된후 팽덕회는 당위원회 회의에서 《너무나 많은 외국혁명자들이 중국혁명위업을 위하여 희생되였다. 가령 우리가 계속하여 그들이 중국에서 목숨을 잃게 한다면  누가 남아서 자기 조국의 혁명사업을 위해 싸우겠는가? 우리는  이미 희생된 동지들을 위해 어찌 할수는 없지만 더는 외국동지들의 생명을 랑비할수는 없다.》고 말하였다. 팽덕회의 호소하에 군위에서는 무정한테 휴식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장정이 결속된후 무정은 홍군대학에서 학습했고 후에는 홍군총부작전 과장으로 있었다. 1937년 무정은 팔로군포병을 재조직하는 중임을 맡았다. 1938 1월 그는 팔로군의 첫포병퇀-총부포병퇀 퇀장으로 되였다.

    

항일전쟁이 승리한후 무정은 귀국하여 조선림시인민위원회 중앙위원, 로동당 제2비서, 조선인민군 제2군단장, 수도방위사령관 등 직을 력임하였다. 1951년 무정은 병으로 평양에서 사망했다 

  래원: 지부생활 (편집: 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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