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뉴스>>지부생활>>2007년 8월호
청와대로 다시 들어가려하는 박근혜
◎ 간옥란
2007년 08월 07일 15:08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나한테는 부모도, 남편도, 자녀도 없다. 그저 나의 조국이 있을뿐이다. 나는 일심전력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지도자로 될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채 끝내지 못한 일을 완수하여 한국을 발달한 나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아버지집권기간에 고통을 당한 사람들한테 보상해주고싶다》

6월 11일, 한국 전임대통령 박정희의 장녀이며 한국의 제일 큰 야당인 한나라당의 전임 대표 박근혜가 올해 년말에 있게 될 한국대통령선거에 참가하기로 정식 등록하였다. 많은 지지자들앞에서 박근혜는 특별히 진붉은 웃옷을 입고 선거경쟁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녀의 뒤에는 《5년내에 현대화를 실현하자》는 푸른 경선광고가 걸려있었다. 색채대비는 선명하지만 박근혜의 말씨는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한국의 전쟁후 경제와 같이 성장해온 행정을 간단히 회고하였는데 그속에는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회억이 빠질수 없었다. 마지막에 그녀는 좀 떨리는 목소리로 맨처음의 두마디 말을 정중하게 말하였다.

선거경쟁선언으로의 박근혜의 연설은 남을 제압하는 기세가 없지만 원칙견지와 낙언신용을 신조로 삼는 그녀의 위인을 잘 아는 지지자들로 볼 때 이 두마디 말은 《수치를 가지고 말하는》것보다 더 설복력이 있었다.

특수한 성장경력

1998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전에 박근혜는 벌써 한국민중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20여년이 되였다. 1961년, 박정희는 군사정변을 일으켜 리승만정권을 뒤엎고 한국대통령으로 되였다. 하여 박근혜는 온집식구들과 함께 청와대에 입주하게 되였다. 하지만 박근혜의 청년시절은 비극적사건들이 끊임없었다. 1974년 8월, 어머니가 암살당하였고 그때 22살인 박근혜는 하는수 없이 프랑스에서의 류학생애를 중단하고 아버지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박정희와 동행하면서 일부 중요한 장소에 나타났으며 《제1부인》역을 대리하였다. 5년이 지나 박정희가 암살당하여 죽자 27살되는 박근혜는 남동생과 녀동생을 데리고 사람들의 시선속에서 점차 사라졌다.

특수한 성장경력으로 하여 박근혜는 무엇이 정치권력인가를 알게 되였고 어떻게 국가대사를 처리할것인가도 알게 되였다. 가정의 변고와 고난으로 하여 그녀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태연할수 있게 되였다. 이런것들은 그녀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이어 당수로 되여 한나라당을 이끌고 난관을 넘는 관건적시각에 그녀의 힘의 원천으로 되였다.

얼마전 박근혜는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오래동안 가지고있던 전통적인 머리모양을 개변시켰다. 그전에 어떤 국회의원이 박근혜가 아버지의 얼굴모양과 어머니의 머리모양을 계승하였다고 하면서 한국은 박근혜가 계승할수 있는 옛날왕조가 아니며 민주주의사회에서의 한국인은 그녀가 지난날에 대해 그리움을 품고있는것을 반대한다고 말하였다. 이로부터 볼 때 박근혜가 몇십년을 확보하고있던 머리모양을 개변하려 마음먹은것은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고 바라고있는것임을 알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재빨리 원래의 머리모양을 회복하였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정치토대를 뒤엎을수도, 뒤엎을 필요도 없음을 의식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범한 오유를 정시하는것이야말로 제일 좋은 선택이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지지자군체가 그렇듯 고정되고 그렇듯 집요함을 알게 되였는지 모른다.

《사람을 놀래우는 거동》의 매력

그녀의 심복들이 평가한데 의하면 박근혜는 거동이 우아하고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지만 일단 《이 일은 이렇게 하면 안돼요》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여도 그 일은 기본상 어쩔 여지가 없게 된다. 이런 타협하려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려는 처사풍격으로 하여 박근혜는 몇십년 사라졌다가 재빨리 제일 환영받는 국회의원의 하나로 될수 있었다.

2002년 5월, 박근혜는 한가지 《사람을 놀래우는 거동》을 취하였다. 평민의 신분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조선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과 만났던것이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와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이 랭전시기에 각기 한국과 조선의 지도자였기에 그번 박근혜의 조선행은 한조 두 나라가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는데서의 한차례 노력이라고 간주되였고 사람들은 그녀를 다시 쳐다보게 되였다. 한국에서의 박근혜의 정치위망이 뚜렷이 높아졌다.

한나라당내에서 박근혜의 지위가 점차 굳게 됨에 따라 그녀가 쌓아온 실력이 발휘될 시각이 닥쳐왔다. 2005년 3월 12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함께 대통령 로무현을 탄핵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여 한나라당의 지지률이 내려가게 되였다. 한나라당내에서는 당수 최병렬의 지도능력에 대해 질의를 제기하고 3월 23일에 긴급전당대회를 소집하고 당수를 투표선거하였다. 마지막에 박근혜가 다른 네명의 립후보자를 누르고 한국에서의 첫 녀당수로 되였다.

위기시각에 당수로 된 박근혜는 취임연설에서 전당을 거느리고 위기에서 벗어나며 다시 일떠서겠다고 표시하였다. 그녀는 10층짜리 당부대청을 팔아버려 당에서 받아들인 불법정치자금을 되돌리겠다고 하였다. 결심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녀는 부임하자 이튿날 국회근처의 공지에 천막을 치고 컨테이너로 집을 지으라고 명령하고 당부를 그곳에 옮겨갔다.

그후 얼마 안되여 한나라당의 지지률이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그후의 국회선거에서 박근혜는 언약을 지켰으며 한나라당은 국회 제1대야당이라는 지위를 확보하였다. 지난해 7월에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표직을 사임하고 대통령선거에 참가할 준비를 시작하였다.

만일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대통령립후보자로서 대통령선거에서 이긴다면 그녀는 한국력사상 첫 녀대통령으로 될것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남존녀비전통적관념을 철저히 뒤엎을것이며 박근혜도 《지난날과 화해한다》는 정치리념 및 아버지 박정희가 채 끝내지 못한 일을 계승하련다는 념원을 실현하게 될것이다.

생활의 다른 한면

한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박근혜를 《한국의 태쳐부인》이라고 부르고있다. 하지만 박근혜의 대학동창들이 보건대 박근혜는 아름답고 재능이 많고 언행거지가 녀성의 매력이 충만된 사람이다. 하지만 당시 그 년대에 많은 보통학생과 민중속에서 교수시 늘 첫줄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던 박근혜의 형상은 일종 신비한 존재였다.

지금껏 미혼으로 있는 박근혜는 근년래 유권자들과의 접촉에서 생활속에서의 성실하고 친절한 일면과 만능인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영어와 한어에 능통하다. 하브대학에서 그녀는 영어로 열정에 넘친 연설을 하였고 중국방문기간에는 어느곳을 가나 한어로 주위의 사람들과 친절히 인사하였다. 중국에서 악기공장을 참관할 때 박근혜가 즉흥적으로 피아노로 친 한국민요《아리랑》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흥취가 도도해지자 그녀는 또 기타를 집어들었다. 사람들은 조용한 그녀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불덩이가 숨어있음을 발견하였다.

5월에 출판된 한국《산문월간》잡지에 발표한 글에서 박근혜는 자기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각에 중국작가 풍우란의 저서 《중국철학사》가 생명의 등탑마냥 그녀한테 내심의 평온을 되찾아주었다고 썼다. 더우기 《밀실에 앉아있는것을 거리로 다니는것처럼 여기고 마음을 제어하는것을 여섯필 말을 모는것처럼 여긴다면 실책을 면할수 있다》고 한 구절은 지금껏 늘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

《나는 한국을 한국공민마다 자호감을 느끼게 하는 나라로 건설하겠다. 정직한 사람들이 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사람마다 아이양육문제와 만년생활에 대해 걱정할 필요없고 힘낸것만큼 보수가 돌아오게 만들겠다》박근혜는 6월 11일에 발표한 선거경쟁선언에서 자신의 마음속의 5년후의 한국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한국의 많은 정객들과 마찬가지로 박근혜도 한조관계와 부패척결을 중요한 정치강령으로 삼고있다. 이밖에 그녀는 한국대통령 로무현의 경제정책이 잘못되였다고 비판하면서 자기가 올라가면 세금을 줄이고 취업기회를 늘이며 정부규모를 축소하고 국내경제장성을 촉진하겠다고 언약하였다.

한국의 다른 한 녀성지도자인 전임 법무부장관 강금실이 평가한바와 같이 박근혜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말하면 말한대로 하는 사람이다. 박근혜의 지지자들도 이 점을 확신하고있다. 그들은 박근혜가 한달후에 있게 되는 한나라당 당내대통령립후보자투표에서 이기고 마지막에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한국에서 녀성지도자시대가 현실로 되게 하며 국민들에 대한 그녀의 언약이 실현되게 할것을 기대하고있다.

  래원: 지부생활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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