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뉴스>>지부생활>>2007년 8월호
8년 검거끝에 섬서성정협 부주석을 끌어내려
2007년 08월 07일 14:56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내가 섬서성정협 부주석 방가옥을 검거한 편지가 해당부문에 의해 검거신본보기로 되였습니다》위건군은 내심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검거재료가 가득 찬 큰 가방을 기자앞에 내놓았다.

《보십시오. 이 검거신에는 해당부문의 비준지시가 있습니다》 말을 멈춘 위건군의 표정은 엄숙해졌다.《당시 방가옥은 보계시당위서기였는데 검거신이 비준지시를 받은후 석달동안 조사를 당하였습니다. 아무일 없이 고비를 넘은후 그는 2003년 1월에 또 한급 승진하여 섬서성정협 부주석으로 되였습니다》

올해 2월 5일에 중앙규률검사위원회에서는 방가옥의 당적을 제명한후 사건을 최고인민검찰원에 넘겼는데 최고인민검찰원에서는 감숙성검찰원을 지정하여 구체적으로 조사처리하게 하였다. 《이번에 중앙규률검사위원회, 최고인민검찰원에서 방가옥의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게 된것도 나의 검거신이 있었기때문이다》고 하면서 위건군은 기자한테 자기의 몇통의 검거신을 내보이였다.

위건군이 방가옥과 겨루기는 1985년이 제일 처음이였다. 당시 방가옥은 보계시트랜지스터(晶體管)공장 부공장장으로 있었는데 그 공장에서 공업용황금을 되거리하였다고 검거한 사람이 있었다. 금방 대학교에서 나와 규률검사위원회에 배치되여 사업하게 된 위건군은 사건을 아주 자세하고도 참답게 조사하였는데 결과 방가옥한테 미움을 사게 되였다. 후에 위건군이 공개적초빙시험에 응해 어느 국의 부국장으로 된후 방가옥은 이런저런 리유를 달아 그의 부국장직을 면제해버렸다. 위건군은 여러번 성과 성외의 부청급간부공개추천선발에 참가하였으나 결과 다 방가옥의 간섭이거나 압제를 받게 되였다.

《8년래 나는 방가옥을 검거하는 한가지 일만 하였다!》머리를 번쩍 추켜든 위건군의 말이다.

농민의 아들인 위건군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일을 4년간 하다가 1981년에 초중학력으로 대학교시험에 참가하여 서북정법대학에 진학하였다. 1985년에 보계시에서 부처급지도간부를 공개적으로 추천선발하였는데 위건군은 시험을 거쳐 부국장직에 부임되게 되였다. 3년동안 부국장으로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조직부에 불리여 담화를 하였고 부국장직을 면제당하고 조리조사연구원으로 되였다.

《당시 나는 섬서, 광서, 감숙 등지의 부청급간부공개추천선발에 참가하려 하였기에 면직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부국장자리도 누가 발탁시킨것이 아니고 그저 당의 좋은 정책과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온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정력을 시험공부에 쏟았다》여기까지 말한 위건군은 성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시험치는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계시당위에서 사람이 내려와 나를 고찰하면서 <쓸수 없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당시 방가옥은 시당위서기였고 조직원칙에 의해 부청급간부를 발탁시키자면 첫 책임자의 의견을 들어보아야 하였다》

위건군은 그때에야 자신의 생각이 너무 단순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한 친구가 나한테 방가옥한테 5만원을 주면 문제가 풀린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내가 오유를 범한것도 아니고 그가 나한테 보복하려 하는데 내가 그한테 굽석거릴수 있겠는가!》

친구의 말로부터 위건군은 《방가옥이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가지게 되였다.

어느 한번 방가옥과 치렬한 말다툼을 한후 위건군은 방가옥한테 《당신은 보계에서 그렇게 많은 나쁜일을 하였는데 자신이 제일 잘 알것이다. 고발하는 사람이 없다면 무사할수 있지만 고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분골쇄신될수도 있다. 나는 당신보다 15살 젊으니까 한평생 당신과 싸울수 있다》고 말하였다. 위건군의 말대로 하면 그때 《방가옥은 대노하여 책상을 치면서 겁나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나도 앞으로 두고 보자고 하면서 문을 쾅 닫고 그의 사무실에서 나와버렸다》

검거하려면 진짜 증거가 있어야 하였다. 하지만 위건군이 아는 일은 너무나 적었다. 그는 먼저 시의 일부 리퇴직로간부들을 생각하였다. 그들은 보고들은것이 많고 고위층과 련계가 넓다. 그들을 찾아다녔더니 과연 어떤 로간부들은 방가옥한테 품고있던 불만을 털어놓았다. 례하면 방가옥의 두 딸이 다 미국에서 공부하는데 그 많은 돈이 다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것이였다.

한시기 조사를 거쳐 많은 사람들이 위건군한테 정보를 제공하여주었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시직속기관의 처급간부들이였다. 방가옥의 미움을 산 한 부처급 간부 교모는 방가옥한테서 박해를 당한 현처급이상 간부만 해도 30여명 된다고 하였다.

방가옥은 보계에서 권세가 대단하였기에 위건군의 조사도 비밀리에 진행되였다. 《정리한 재료를 타자하려 해도 타자원이 방가옥검거재료라는것을 알자 모두 거절했다. 후에 한 타자원한테 500원을 주고 세페지를 타자했다》위건군이 하는 일은 그의 안해도 몰랐다.

2001년 8월, 위건군은 검거신을 정리하여 국가해당기관과 해당지도자한테 보냈는데 편지뒤면마다 자기의 신분증복사본, 상세한 통신주소와 전화번호를 붙여놓았으며 본인의 친필서명까지 하였다.《이렇게 해야 지도자가 믿을수 있다. 익명검거는 효과성이 낮다. 그리고 검거신은 너무 길지 말고 보통 두페지 반쯤 하면 좋다. 너무 길면 지도자가 볼 시간이 없다》위건군은 검거신에도 퍽 연구가 있다.

검거신을 부친후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특별히 북경으로 가보았다. 《북경에서 일하는 동창생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다 내가 방가옥을 검거하는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권세있는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한테 보복하기란 식은죽 먹긴데 젊었을 때 돈이나 벌라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검거가 결과를 가져올수도 가져오지 않을수도 있으나 검거하지 않으면 영원히 결과가 없게 된다고 대답하였다》

그번 검거신은 해당부문의 중시를 불러일으켰고 비준지시까지 받게 되였다. 해당부문에서는 사업조를 보계에 파견하여 조사하게 하였다. 그번 조사에서 방가옥은 다행히 고비를 넘겼다.

2003년 1월에 방가옥은 섬서성정협 부주석으로 되였다. 《방가옥은 새 직무에 부임하기전에 특별히 시당위 상무위원회 회의실에 나를 불렀다. 당시 우리 둘뿐이였고 테블에는 많은 과일들이 놓여있었다. 그는 처음에 나의 부국장직을 면제시킨것은 좀 주밀한 생각이 결여하였기때문이라고 나를 어려워하듯 말하였다》위건군은 《방가옥은 나더러 다시는 검거하지 말라고 말하였다》고 회억하였다.

방가옥이 보계를 떠나자 그를 검거하는 대오가 더욱 확대되였다. 이번의 검거에서 위건군은 7명을 선택하여 서명하게 하였다. 《서명하려는 사람이 더 있었으나 나는 사절하였다. 7명은 다 재직부처급간부로서 성품이 단정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검거신이 더 진실성을 띠게 된다》

2005년 8월 25일, 첫 검거신과 마찬가지로 위건군은 검거신을 북경에 부쳤다. 《나는 검거신을 사회에 살포하지 않는다》

두달후 방가옥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막을 열었다.

위건군이 방가옥을 검거하기로 마음먹은 초기에 집식구한테 영향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안해와 리혼하였다. 《나는 제일 나쁜 상황을 다 궁리하고 재산을 안해와 아이한테 넘기였다. 방가옥이 판결받으면 우리는 혼인을 회복하려 하였다》

당지의 어떤 지명인사들은 위건군더러 안전에 주의하라고 귀띔하였다. 한 로간부는 위건군한테 보복하려는 사람이 있으니 혼자서 나다니지 말라고 말하였다.

《나는 자신의 안위를 관심하지 않는다. 그저 나라에서 검거인을 보호하는 구체적조치를 출범시켜 검거인이 피와 눈물을 흘리지 않게끔 하기를 바랄뿐이다. 나라에서는 검거인을 잘 대해주어야 한다》위건군의 말이다.


◆ 관련자료: 방가옥 위인

방가옥, 남, 한족, 1944년 4월생, 대학학력, 중공당원, 1969년 9월에 사업에 참가. 1988년 10월부터 보계시정부 비서장, 부시장, 시당위 부서기, 시장, 시당위 서기, 시인대 상무위원회 주임 등 직 력임. 2003년 1월에 섬서성정협 부주석직 담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방가옥은 직무편리를 리용하여 뢰물 48만원을 받았고 규률을 어기고 보계시재정증권공사를 설립하여 루계로 3억 1600만원의 손실을 초래하였다. 그는 또 도덕이 부패하여 유부녀와 부정당한 관계를 가지고있었다. 중앙규률검사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는 중공중앙의 비준을 거쳐 방가옥의 당적을 제명하였으며 섬서성정협 제22차상무위원회 회의에서는 방가옥의 정협위원자격을 취소하였다. 그의 위법문제는 이미 사법기관에 넘겨 법적으로 처리받게 하였다.

  래원: 지부생활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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