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절이라 연길시경도릉원은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아버지를 모실 맞춤한 자리를 잡느라고 우리 5형제는 한식경이나 돌아쳤다. 마침내 버드나무 한그루 서있는 잔디밭에 멍석을 깔고 자리를 잡을수 있었다.
아버지 골회암을 정중히 모시고 그앞에 차례상을 차리였다. 그러는 사이 저도몰래 눈물이 핑그르르 돌면서 눈앞이 뿌얘졌다. 순간 아버지 골회암에 덮인 당기만이 유표하게 안겨왔다.
《그래 당비를 제때에 납부했느냐? 당비는 값으로 계산하는거 아니야, 허허, 우리 딸이 당비가 많다고 조직에 응석을 부리는건 아니지》라고 말씀하시는것만 같아 나는 귀밑이 화끈거렸다.
지난 음력설이였다. 우리는 종전대로 부모님을 모시고 설을 쇠고있었다. 바로 설날 아침 우리는 돌아가며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를 올리고 푸짐한 아침상에 마주 앉았다. 권커니 작커니 술이 거나하게 돌아가자 형제들은 점차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세월에 제노릇부터 하고 봐야 한다니깐, 뭐니뭐니 해도 제주머니 차야 남 돌볼새 있지. 안그렇소 처남》 큰아저씨가 또 《열변》을 토한다. 언제나 소탈하고 마음에 두는것없는 분이다.
《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 가시아버님처럼 법이 없어두 사는게 언제나 마음편하지. 제노릇 못해두 발편잠을 잘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데》 말수적은 둘째아저씨가 한몫 든다.
이때 병환때문에 술상에 앉지 않고 쏘파에 앉아TV를 보시던 아버지가 이쪽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불쑥 무언가를 내밀었다.
《올 1년동안의 당비일세, 나의 원 단위에 대신 납부해주게나》
새하얀 종이에 싼것을 펼쳐보니 새 돈이였는데 50원짜리 한장에 10원짜리가 차곡차곡 포개져있었다.
갑자기 번개가 번쩍하는것 같은 기분에 나는 눈앞이 띵해났다. 언제나 리치에 맞게 일을 잘 처사한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그순간에 갑자기 내가 여지없이 작아지는것 같았다.
지금 젊은이들은 당비가 너무 비싸다고 얼마나 의견들이 있는데 …그믐날에도 석달 당비를 한번에 바치려니 168원을 내야 했다, 말은 안했지만 눈이 땡그래지고 입이 벌어진것만 사실이다. 22년도 넘게 당원행사를 했으면 자기 사명을 다하지 않았냐고 내심으로 개탄하던터였다. 그리도 의젓하게 28년간 담임교원사업으로 교육사업을 마무리짓는다고 생각해왔는데 80고령 아버지의 순박한 마음과 비겨보니 너무나도 상반되는 대조가 되는듯 싶어졌다. 녹이 쓸어도 너무 많이 쓸어버린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다. 북경과학기술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방학에 와서 학교학생회사업을 하기에 입당할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되였는데 남편은 대뜸 찬성했으나 극구 다시 잘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준건 바로 나였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색바래진 내 마음에 나도 놀랐다.
48년 당년한을 가진 아버지는 80세 넘도록 당원이 된걸 후회하신적 없고 언제 한번 조직의 배치에 딴전을 부린적 없으며 정년퇴직하던 그날까지 그렇게도 참답고 열정적이셨다. 그래서 어떤 부서를 맡으시든간에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깐지고 물이 못나게 착실하셨다. 만년에 정년퇴직하시고도 원 단위에서 도와주실수 없냐고 청들어 또 몇년간 더 사업하신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선진당원》, 《우수상업일군》으로 성, 주, 시의 표창을 받으셨다.
그런 아버지에 이런 딸이 어울리지 않는 감이 들었다.
그런 훌륭한 아버지는 하직하실 때에도 단 몇분간 아프시다가 복하게 돌아가셨다. 올 1년동안의 당비를 새해벽두에 납부하시고 몇달도 안되여 타계하신 아버지는 구천에서도 당비를 납부한셈이다. 언제나 당원의 본색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여서 구천에서도 《우수한 당원》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있을것이다.
차츰 아버지의 그 《진붉은 인생》이 나의 마음에 《뜨거운 심장》을 심어주는가 싶었다.
나는 아버지령전에 술을 부어올리며 맹세했다.
《아버지가 실망하지 않는 공산당원이 되겠다》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