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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모두가 땅을 떠나도 그는 고향을 지킨다
2007년 12월 20일 14:05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농업, 농촌, 농민 문제를 잘 해결하는것은 초요사회의 전면 건설의 전반적국면에 관계되기에 반드시 시종일관하게 전당사업의 중점으로 틀어쥐어야 한다. 농업의 토대적지위를 강화하고 중국특색의 농업현대화길로 나아가며 공업으로 농업을 추진하고 도시가 농촌을 이끄는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기제를 건립해야 하며 도시, 농촌 경제사회발전일체화의 새 국면을 이루어야 한다. 현대농업발전, 농촌경제번영을 급선무로 삼는것을 견지하고 농촌기초시설건설을 강화하며 농촌시장과 농업봉사체계를 건전히 해야 한다. 농업을 지지하고 농민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강도를 강화하며 경작지를 엄격히 보호하고 농업투입을 늘이고 농업과학기술발전을 다그치며 농업의 종합적생산능력을 증강하고 국가량곡안전을 확보하여야 한다. 농민증수촉진을 핵심으로 향진기업을 발전시키고 현구역경제를 장대시키고 여러가지 경로로 농민취업을 전이시켜야 한다. 빈곤호부축개발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농촌의 기본경영제도를 견지해야 한다. 문화가 있고 기술이 있고 경영할줄 아는 신형농민을 양성하여 새농촌건설에서의 억만농민들의 주체적역할을 발휘시켜야 한다- 17차 당대회 보고에서 발췌

조선족농삶의 터전-조선족농촌 일별

중국북오미자고향— 장백조선족자치현 보천산진

천산진은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의 중서부 편벽한 산간지대에 위치, 현성과 123킬로메터 떨어져있으며 구역면적은 306평방킬로메터에 달한다. 진내 해발높이는 1098메터, 길림성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향진이다. 관할구역에는 11개의 행정촌이 있고 총인구는 6060명이며 그중 농업인구는 2133명이다. 

보천산진은 련속 다년간 “성급위생향진”영예칭호를 받았으며 2003년도에는 또 국가농업부로부터 “중국북오미자고향”으로 명명되였다. 올해 보천산진에서는 17차 당대회 정신을 지침으로 “조화로운 보천, 활력적인 보천, 특색있는 보천전문보기

산재지구의 《연변마을》연화조선족향의 어제와 오늘

60년전인 1947년과 1948년 겨울, 우리 나라 해방전쟁의 가장 긴요했던 시기에 당시 연길현과 화룡현의 734세대 조선족농민들은 당과 정부의 부름에 응해 송눈평원 검은 땅 한자락에 이사해왔다.

고향을 잊지 못한 이곳 사람들은 연길현(지금 룡정시)의 《연》자와 화룡현의 《화》자를 따 연화(延和)라고 이름을 달았다.

연화조선족향. 면적 20여평방킬로메터, 그중 경작지 면적은 500헥타르인데 전부가 수전. 3개 행정촌에 9개 자연툰, 11개 촌민소조 554세대 농호에 2540명인구, 그중 조선족이 95%. 이민 1세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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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 고향은 경상도꾸마》

왕청현 천교령진 태양(太阳)촌—찾아 갈 때가지만 해도 촌명이 만세소리가 지동치던 지난세기 70년대 냄새가 나는것 같아서 원래의 촌명이 못내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개척시기부터 지어진 이름이란다. 지리적으로 당양지지에 자리잡고 따스한 해살이 비껴든다고 지었다는 태양… 광활한 동북의 어느 촌인들 따스한 해볕이 무심할가 하는 가벼운 항의가 흘렀으나 연변의 추락취명의 문화를 엿보면 태양촌이란 촌명도 홀대할수 없는 연혁을 가지고있는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태양촌도로 입구에 자리잡은 신선동과 남산의 인형같이 생긴 애기바위의 토템을 상기하면 태양촌의 땅과 하늘은 넓고 공활했다.우리가 태양촌으로 고대일무렵은 정오의 태양이 태양촌 상공에 멈추어서서 늦가을의 강렬한 빛을 발사하는 점심무렵이다. 전문보기

화룡시 동남촌—갑부촌으로 소문나는 감자마을

화룡시 룡성진 동남촌에서는 당지의 자연우세에 근거하여 감자산업을 힘껏 발전시켜 원근에 이름이 있는 갑부촌으로 부상하였다.

126세대의 인가에 428명의 인구가 생활하는 이 촌은 진소재지와 15킬로메터 상거한 팔가자림업국 관할경내의 고한산간지대에 위치하고있는데 무상기가 짧고 토질이 척박하여 농사가 잘되지 않는다. 비록 림구에 위치하여있다고는 하지만 주요한 삼림들은 국영림업국에서 통제하고있기에 리용할수 있는 자원우세도 별로 없다. 그러나 이 촌의 토양과 기후는 감자농사에 아주 적합한바 예로부터 동남촌의 감자라고 하면 이름이 있었다.촌지도부에서는 이 우세에 근거하여 감자산업을 발전, 이미 상당한 규모를 형성하였다.

이 촌에서는 리용할수 있는 조건들을 죄다 리용하여 경작지를 개발하고 감자재배면적을 늘이였다. 올해에 이 촌의 감자재배면적은 305헥타르로 늘어났는데 세대당 2.42헥타르씩 재배하는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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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주 사통팔달 농촌도로 농민증수에 일조

새농촌건설을 위한 연변주의 기초시설건설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새농촌건설에서 가장 기본으로 되는 농촌도로건설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룩하고있다.

조사에 의하면 연변주의 농촌도로 총거리는 툰도로를 제외하면 5800킬로메터에 달한다. 현재 연변주의 향진 세멘트포장도로 통차률은 94%에 달하며 행정촌세멘트도로 통차률은 47.7%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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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현 마록구진 특색산업발전으로 농업경제 부축

장백현 마록구진에서는 당지의 독특한 지리적자원우세에 립각해 농업산업화 구조를 합리하게 조절하고 사양업, 재배업, 특색우세 산업과 제3산업을 대폭 발전시켜 좋은 경제효익을 보고있다.

적극적으로 새 품종을 도입하고 선진적인 생산기술을 보급하며 시장수요에 적응되는 효과성농업을 크게 발전시켜 농민수입을 늘리고있다.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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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성 천여명 대졸생 농촌에서 취직

최근 2년사이에 천여명에 달하는 대학졸업생들이 농촌 기층에 내려가 교육, 의료 봉사에 참가한것으로 집계되고있다. 지난 2006년, 흑룡강성은 "대학생 기층취업을 격려, 인도할데 관한 의견"을 제정하고 흑룡강성 실정에 근거해 기층과 벽지에서 취업하도록 대학졸업생들을 인도, 격려했다. 흑룡강성인사청 해당책임자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에 이미 천여명 대학 전문보기

료녕 쌍천안촌 새농촌건설에서 환경건설과 외자유치를 중점으로

인구가 1,500여명에 달하는 조선족촌인 개주시 서해농장 쌍천안촌도 해외진출, 도시진출 충격속에 한동안 많이 피페해졌댔다. 다행히 옥명광촌당지부서기를 위수로 한 촌지도부에서 새농촌건설의 목표를 세우고 환경건설과 외자유치를 잘해 마을의 면모가 큰 변화를 가져오고 《료녕성사회주의새농촌건설시범촌》행렬에 들어서는 행운도 지니게 되였다. 다년간전문보기

해림시 검은콩재배농가 웃음집 흔들

요즘들어 해림시 콩재배농가에서는 즐거운 웃음이 끊이지 않고있다. 해림시 가신식품유한회사가 정식 생산을 시작하면서 당지 검은콩가격이 상승하기때문이다.  

가신식품유한회사는 지난 7월에 8백만원을 투입해 부지면적이 33만평방메터에 달하는 가공기지를 구축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생산라인을 설치했다.전문보기

안도현 유민촌 더덕재배로 재미 톡톡

60여세대 농가가 오붓이 살고있는 안도현 명월진 유민촌에서는 야생더덕자원이 점점 줄어들고있는 반면에 시장수요는 급증하고있는 실정에 비추어 현특산국과 계약을 맺고 더덕재배업을 촌경제발전의 주도산업으로 내세우고 치부의 길로 나가고있다.이 촌에서는 5년전부터 더덕재배농가가 한집두집 늘기 시작하자전문보기

새농촌건설의 선줄군들

새농촌 선줄근 성공한 향촌기업가 훌륭한 아버지

매하구시 영풍촌의 당지부서기 장석철씨는 성공한 향촌기업인으로, 새농촌건설 선줄군으로, 자녀교양에 성공한 아버지로 1인3역의 역할을 잘해 주위의 화제로 되고있다.

매하구시 번화가에는 3000여평방메터 영업면적을 가진 5층짜리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이 있다. 지금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원 조선족식당)》은 매하구시에서 가장 큰 조선족기업으로서 조선족들이 대사를 치르는 장소이다.

1984년 10여명 조선족들이 손잡고 헐망한 초가집에서 매하구 사상 처음으로 시작한 불고기집인 매하구시조선족식당(현 봄철고려식당)은 지금 영업면적 3000여평방메터에 직원 60여명이 되는 대형조선족식당으로 발전하였다. 이 식당을 이끌고있는 코기러기가 바로 매하구시조선족기업가이며 영풍촌당지부서기를 겸하고있는 장석철경리이다. 2003년 매하구시 도시건설의 수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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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빈시 홍광촌당지부 서기 리덕호 촌민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

할빈시 아성구 옥천진 홍광촌의 당지부서기 겸 촌장인 리덕호씨는 촌민리익을 도모하면서 촌민들의 공복으로 열심히 일하고있다.

현재 2000무 수전경작지에서 본촌 촌민이 400여무정도쯤 다루고 나머지는 린근촌의 촌민들이 다루고있지만 촌에서 엄하게 통일적으로 관리하기때문에 촌민들의 리익에는 손해없게 도급경영협의서를 집행하고있다.

이를테면 봄에 도급비를 몽땅 받아들였다가 가을에 실수없이 토지임자에게 나눠주는데 이 몇달 기간에는 본촌 촌민이 대부금을 쓸 경우 바로 이 도급비에서 리자 안받고 미리 쓰라고 대주군 했다. 이는 로약자들만 남아 농사짓는 농호들에게 큰 힘이 됐다.

홍광촌은 지난해부터 할빈시공상국과 아성구공상국의 부축단위로 됐는데 리덕호씨는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아 할빈시와 아성구 공상국으로부터 선후로 82만원의 자금을 후원받았는데 그는 이 자금으로 홍광촌 논의 수원지인 옥천강의 10개 보뚝중 8개를 돌과 세멘트로 튼튼하게 쌓고 홍광촌 토지를 자주 침습하는 옥천강 물길을 돌려 새로 내고있다. 그리고 모내기기계 4대를 사들이고 대형비닐하우스 8동을 지었으며 집집마다의 유선방송텔레비죤설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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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을 농촌산업화조절에 바치는 김만수

2001년에 내부퇴직한 김만수의 3년간의 노력으로 룡정시장백산중약재재배시범기지가 초보적인 규모를 갖추었다. 기지수입은 2005년의 5만원으로부터 2006년에는 26만원으로, 올해에는 50만원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사이 그는 주변의 군중들에게 1만 2000개의 로동일을 제공하고 로임 36여만원 지출했다.

올해 58살인 김만수는 룡정시당위 농촌사업위원회의 퇴직당원으로서 여전히 부지런한 두손과 굳센 의지로 룡정시의 농촌산업구조조절을 위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고있다.

흑룡강성 목단강사범학원 생물학부를 졸업한 김만수는 1978년부터 사업에 참가한 이래 줄곧 농촌사업에 종사해왔는데 선후로 "전 성 과학교육흥농선진일군", "전 주 과학교육흥농선진일군", "룡정시외자유치선진개인" 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여러번 시급우수공산당원으로 평의되고 네차례나 성급과학기술성과 일등상을 받았다. 2001년에 내부퇴직한후 실제적행동으로 룡정시의 농촌산업구조조절에 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마음먹은 그는 외지로 가 고찰하고 많은 시장조사를 한후 중약재재배업이 룡정시 자지방실제에 알맞겠다고 판단하고 중약재기지를 꾸리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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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근한 로동으로 치부꿈 이뤄가는 조선족농민들

모두가 땅을 떠나도 그는 고향을 지킨다

지난해 룡정시 조양천진 횡도촌의 년세있는 할아버지 네분이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게 되였는데 석달사이에 벌어온 수입이 농사를 지은 일년수입보다도 더 많았다.

로인들이 외국나들이로 돈을 벌어온것을 보고 올해는 마을의 년세가 많아 일할수 없거나 중병으로 드러누운 촌민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출국하려고 서둘렀다. 만약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다 떠나가 버리면 우리가 살아온 삶의 터전은 어떻게 될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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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춘강의 《여우경》

올해 34살에 나는 왕청현 천교령진의 전춘강은 국유기업의 철밥통을 단연히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여우사양업을 벌여 원근에 이름난 치부장원으로 되였다.

1992년 전춘강은 우수한 성적으로 길림성장춘전력학원에 입학, 4년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길림화학섬유공장에 배치받았다. 그는 공장에서 6년동안 기술원으로 있으면서 열심히 일하여 여러차례나 단위의 《선진사업자》와 《일터선줄군》으로 평의되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철밥통으로 보이는 이 일자리를 두고 전춘강은 생각을 달리 하였다. 《젊었을 때 뭐든지 한번 자기 절로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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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을 브랜드로 키워가는 사람

수십년 농전국에서 "철밥통"을 파먹던 "월급쟁이"가 농민들과 손잡고 함께 잘 살아보려는 일념으로 토질이 비옥하고 수질오염이 없는 룡정시 덕신향 남양촌에서 잡곡와 콩의 생산, 구매, 가공, 판매를 일체화한 농산물심가공공장인 룡정시록전농특산물제품개발유한회사를 꾸려 당지 농민들의 수입을 크게 제고시켜준 이가 있다.

그가 바로 "팔도하", "두만강"표 잡곡브랜드를 창출해 우리 주 잡곡경영창시자로 불리우는 김영호(52살)총경리이다.

11일, 기자가 룡정시록전농특산물제품개발유한회사를 찾아갔을 때 하얀 가운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널찍하고 깨끗한 창고에서 조, 기장, 찰옥수수, 수수, 콩 등 잡곡들을 노란색 비닐봉지에 1킬로그람씩 담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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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성 화천현 창업향 랍랍가촌의 허란평녀성은 1992년부터 마을의 중심거리에 리발소를 차려놓고 부지런히 일해 해마다 1만 8000여원의 짭짤한 수입을 보고있다.

삼농전문가 리수산 코너

떠나던 어제와 돌아오는 오늘

하루동안 죽게 일해봐야 죽벌이도 못하던 30년전 어제날,대부분 중국농민들은 일년 365일 일해봐야 돈 몇푼 생기지 않았다.경제적으로 극도의 빈궁에 몰렸고 사람들을 괴롭히던 정치로 피곤했다.

향항린근의 보안현과 심수현의 청장년들은 “반역죄”라는 무거운 정치모자를 감내하면서까지 먹을것과 살길을 찾아 향항으로 도주했다.

당시 광동성의 사업을 주관하고 있던 도주, 양상곤, 임중이 등 지도자들은 여러차례 보안현과 심수현을 시찰하고 특별한 조치를 강구했다. 즉 광동성주민들이 정식 신청을 거쳐 향항에 친척방문을 갈수 있고 매번 5원 향항딸라와 몇근의 물건을 구입해 가져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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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농민주택 공업단지 《삼집중》

경영 및 사용권을 가진 농민들이 맡은 토지를 “토지류전쎈터”(土地流转中心)에 맡겨 주식형식으로 회사나 농민전업합작조직에 집중시킨다. 이전에 성도시 금강구 홍사촌(锦江区红砂村)의 31살 되는 농민 림덕영(林德荣)은 1년 내내 고생스레 화훼생산을 해서야 한무에 1500원 정도의 수입을 얻었지만 남에게 3무를 임대한후 1년에 무당 1500원 수입을 얻은외에도 남은 시간을 리용하여 농촌관광업을 벌려 이것만으로도 년 2, 3만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이 촌의 1600여무의 토지는 몽땅 33호의 전문농업인에게 임대하고있으며 2006년 농민 인당 년간 순소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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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원: 인민넷-중국공산당뉴스 (편집: 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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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획】조선족농민들의 삶의 현장 찾아본다 [2007년 11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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