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시는 연변의 남부, 두만강의 상류에 있으며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의 함경북도와 양강도와 마주하고 있다. 시 산하에 4개 사업소, 10개 진, 5개 향 159개 촌이 있고 총면적은 5044평방키로미터이며 인구는 24만명인데 조선족이 60%를 차지한다.
화룡시는 처음 룡정시에 속하였다가 독립되였으며 화룡이란 《두 산이 한 골짜기를 끼고 있다》는 뜻의 만주어라고 한다.
화룡시는 백두산의 동쪽기슭이라 높은 산과 험한 봉우리가 있어 임업자원이 풍부하고 석탄, 화강석, 대리석등 광물자원도 풍부하며 농업도 대단히 발달하여 잎담배, 아마, 사과배 등이 유명하며 특히 평강벌의 쌀은 우수하기로 널리 알려져있고 또 숭선과 로과 두곳의 통상구가 있어 조선과의 무역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조선을 가장 가까이 볼수있어 인기를 끌며 또 정효공주의 묘와 고구려때 쌓았다는 성자산산성과 발해때 쌓은 서고성이 있고 그밖에 원시주민부락터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청산리싸움터도 여기에 있어 우리민족이 많이 찾을 곳이다.
특히 숭선은 그 산천이 너무 아름다와 꼭 한번 찾을만한 곳이다. 그리고 두만강발원지와 선경대, 전초 조어대(▩魚坮)도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 화룡선경대-성자산산성(城子山山城)
화룡시 동쪽에 있는 유적으로, 13세기에 요동반도(遼東半島.료둥빤도)를 지배했던 지방정권인 동하(東夏)가 1215년에 축성(築城)한 것이다. 동하는 국호를 대진(大眞)이라고 칭한 나라인데, 1233년 몽골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현존하는 성벽은 둘레가 6㎞정도이고 성내에는 초석이나 건물의 유적이 남아있다. 이곳에서는 최근에 동하의 관인(官印)이 2개 출토되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