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정에서 처음으로 조선족마을이 조성된 해는 1877년이라고 전해지고있다. 함경북도 회령의 리재민, 장인석, 박윤언 등과 평안북도의 김인상 등이 처음으로 14호를 거느리고 와집령(흔히 오랑캐령이라고 부른다)을 넘어 륙도하와 해란강 함수목(지금의 룡정시 시교)에 이르러 강변의 황무지를 개간함으로하여 첫 마을이 시작되였다고 한다. 이것이 룡정의 시초라할것이다.
룡정은 우리 민족이 개척한 우리의 도시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지금도 70퍼센트이상이 조선족이므로 한족이 오히려 우리말을 배우는 현상이 많다. 또한 룡정은 우리 민족이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시작한 곳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룡정은 일제의 마수가 제일 먼저 뻗친 곳이기도 하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1908년 일제는 <조선인의 생명재산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이곳에 군경을 파견하여 <조선통감간도파출소>를 세웠다. 이 기구는 나중에 <간도일본총령사관>으로 바뀌였다. 후에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교육열이 높아져 학교가 세워지고 차차 민족의식도 싹트고 따라서 애국심도 들끓게 되였다. 그러다 끝내 3.1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 3월에는 이곳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른바 <3.13만세운동>이라 불리우는 이 사건은 만주지방 조선민족의 독립의지를 내외에 과시한 가장 뜻깊은 사건이였다. 이후로 룡정은 우리 민족의 얼을 가장 잘 지키는 요람이 되였다.
연길시에서 버스를 타면 약 20분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연길못지 않게 우리 나라 력사와 련관이 있는 룡정시가 있다. 민족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가 중학교를 이곳에서 다녔고, 박경리의 대하소설인 토지(土地, 투띠)에 나오는 배경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일제시대에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투사들의 많은 싸움터중의 하나이다.
룡정은 장백산맥의 중단에 위치해있으며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중간이 평원입니다. 경내에 해란강과 부르하통강이 흘러 농업이 발달하였다. 전국에서 제일 큰 과수농장이 있으며 잎담배와 사과배, 송이버섯이 특산물로 꼽힌다.
룡정시에서 연길로 조금 나오면 낮은 산이 있는데 그 정상에 작은 정자가 있다. 이 정자가 선구자라는 노래에 나오는 일송정(一松亭, 이쑹팅)이다. 이 일송정에서 보면 해란강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보이는데 자신의 나라를 떠나와 외로운 싸움을 했던이들의 깊은 서로움이 느껴지는듯하다.
◈ 룡정중학교
룡정에는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중학교가 있다. 그 학교에는 여전히 조선족들이 다니고 있고 교사앞에 윤동주 기녑비도 있다. 이 학교는 룡정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들러보는 곳중의 하나이다.
◈ 룡드레우물
룡정시에 있는 이 샘은 룡정시의 이름이 붙게 된 기원이 되는 곳으로 이 샘으로 말미암아 이곳에 마을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자리에 룡정지명기원지정천((龍井地名起源之井泉)이라고 쓰인 비석이 세워져있다. 그곳에 작은 공원을 조성해 놓았는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 서전서숙
서진서숙은 연변최초의 신식 사립학교요 또한 연변 모든 조선족사립학교의 어머니이다. 1906년 8월에 반일 애국지사 이상설이 룡정에 와서 이동녕, 여준, 왕창동, 이상익 등과 함께 이 신식학교를 세우고 신학문과 반일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듬해 일제가 룡정에 설치한 <조선통감부 간도파출소>에서 서전서숙에 갖은 간섭을 하므로 부득이 문을 닫게 되었다.
이 유서깊은 서전서숙의 옛터는 지금의 룡정실험소학교 구내에 있다. 큰 고목이 몇그루 서있는 곳에 <서전서숙유지(瑞甸書塾遺址)>라고 힘있게 씌여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