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이 엽의위이고 자는 창백이며 광동성 매현사람이다.
1917년 운남강무당에 가입. 황포군관학교 설립에 참여했을뿐만아니라 교수부 부주임을 맡았다.
1926년 국민혁명군 신편제2사 사장, 또 4군 참모장을 맡았다. 1927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광주봉기에 참가하고 령도하였다.
1928년 모스크바에 가 공부하였다.
1930년 귀국한후 중앙혁명군사위원회총참모부 부장과 홍군학교 교장, 서(瑞)금위수(戍) 사령원, 홍일방면군 참모장, 복건군구 사령원, 군위4국 국장, 홍군전적총지휘부 참모장, 홍일방면군 군위참모장으로 있었으며 2만 5천리 장정에 참가.
항일전쟁시기, 8로군 참모장직에 있었고, 후에 남경, 한구, 장사, 계림, 중경 등지의 통일전선사업을 하였다. 1941년 중앙군사위원회 참모장으로 임명됐다.
해방전쟁시기 북평《군사조처(調處)집행부》 중공대표, 중국인민혁명군사위원회 부총참모장, 중공중앙 후방위원회 서기, 중국인민해방군 참모장, 북평시 시장으로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후 중남군정위원회 부주석, 화남분국 제1서기, 광동성인민정부 주석 겸 광주시 시장, 광동군구 사령원, 중남행정위원회 부주석, 중남군구 사령원대리, 인민혁명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인민해방군무장력량감찰부 부장, 훈련총감부 대리부장, 군사과학원 원장, 중공중내(中內)군위 부주석 겸 비서장, 국방부 부장직에 있었다.
1955년 원수계급을 수여받았다.
제1, 2, 3기 국방위원회 부주석, 제5기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 제4기 전국정협 부주석, 중공 제7기 중앙위원, 제8기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정치국 위원, 제9기 중앙정치국 위원, 제10, 11기 중공중앙 부주석, 제12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당선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