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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주석의 통역을 맡고
한창희
2007년 11월 16일 16:15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북경과 광주의 공연무대를 아름답게 장식했던 조선예술단이 세번째 방문도시 무한에 가서 공연하고있던 12월 4일이였다. 이날 저녁에 중앙지도자들을 위한 특별공연이 있었다. 공연에 앞서 모주석이 조선예술 지도성원들과 주요배우들을 접견하였다.

꿈 많던 청춘시절에 나는 중앙방송부문에서 일하면서 이따금씩 외사통역에 나서군 하였다.

내가 처음으로 모택동주석의 조선어통역을 담당한것은 내 나이 23살되던 그해 겨울이였다.

그해 11월하순부터 있은 김일성수상의 중국방문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조령출예술총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예술단의 중국방문공연도 있었다.

북경과 광주의 공연무대를 아름답게 장식했던 조선예술단이 세번째 방문도시 무한에 가서 공연하고있던 12월 4일이였다. 이날 저녁에 중앙지도자들을 위한 특별공연이 있었다. 공연에 앞서 모주석이 조선예술 지도성원들과 주요배우들을 접견한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왔다.

이 소식에 접한 나는 안절부절 못하였다. 처음으로 모주석의 통역을 맡게 되였다는 영광도 컸지만 그보다도 광주에서 광동말을 몰라 진땀을 빼던 일을 생각하니 혹시 모주석의 호남말씨를 알아듣지 못하고 큰 경을 치르면 어쩌나 하는 우려에 휩싸여있었기때문이였다.

저녁식사를 끝낸 우리는 총망히 차에 올랐다. 그때 조선예술단에 통역원이 없었기때문에 내가 쌍방의 통역을 혼자 담당하면서 매일 단장과 함께 다니다싶이 하였다.

호텔을 떠난 승용차대렬은 무창시 동쪽교외에 자리잡은 동호를 향해 한참 달렸다. 아름다운 풍경구역으로 유명한 동호가를 에돌아 달리던 승용차는 푸른 숲속에 비스듬히 들어앉은 한 아늑한 별장앞에 가서 멈취섰다. 

예술단 지도성원들과 주요배우들이 1층 응접실에 들어섰다. 그닥 넓지 않은 방안에는 크고작은 쏘파들이 빙 둘러놓이고 큰 쏘파앞에는 차탁이 놓여있었다.

모두다 경건한 마음으로 말없이 앉아있는데 해당부문 일군이 나를 불러내여 이제 모주석이 들어오면 그에게 예술단성원들을 일일이 소개해드릴것과 큰 쏘파에는 모주석과 단장을 모시고 나더러는 모주석옆의 작은 쏘파에 앉으라고 알려주는것이였다. 

이윽고 모주석이 응접실에 들어왔다. 회색중산복에 검은 구두를 신은 모주석은 영화나 사진에서 본 그대로 구척거인이였다.

나는 인차 앞으로 걸아나가 모주석에게 공손히 인사를 드린 다음 조령출단장과 장춘섭, 박광우 부단장, 인민배우 김란우, 공훈배우 안성희 그리고 독창가수들인 최창은, 김점순 등 주요배우들을 소개해드렸다.

나의 소개가 끝나자 모주석은 나를 보며 《동무는 누구요?》라고 물었다. 아마 나를 조선예술단 성원으로 본 모양이였다.

《저는 통역입니다. 중국의 조선족입니다.》그러자 모주석은 《수고하오!》라고 하면서 나의 손을 꼭 잡아주는것이였다.

나는 사전에 배치한대로 모주석을 큰 쏘파로 안내하였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나를 큰 쏘파에 눌러앉히며 자신은 그옆의 작은 쏘파에 앉는것이였다. 그러고보니 모주석과 조령출단장사이에 내가 앉게 되여 나는 인차 단장과 자리를 바꾸었다.

모주석은 먼저 조선예술단의 중국방문을 환영한다고 말씀하고나서 예술단이 언제 중국에 왔는가, 중국의 어느 도시들에서 공연했는가, 중국에 대한 인상은 어떠한가고 물었다. 조령출단장은 모주석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을 올렸다.

이어 모주석은 단장의 이름을 물었다. 내가 단장의 이름은 조령출이라고 하는데 한자로 심령이란 “령”자에 날 “출”자, 그러니까 령감이 떠오른다는 뜻이라고 대답을 올렸더니 그는 미소어린 얼굴로 단장을 쳐다보시며 “령감이 떠오른다? 거참 좋은 이름입니다. 오늘 신문에서 단장동지의 시를 보았습니다. 령감이 없이야 시를 못쓰지요!”라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조령출단장은 30년대부터 시창작을 시작한 조선의 이름있는 시인으로서 이번 중국방문기간에 시를 적지 않게 썼다고 모주석에게 소개해드렸다.

그는 나의 소개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실내는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휩싸였다. 몹시 긴장된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나온 나였지만 모주석의 자애롭고 친절한 태도와 유모아적인 말씀에 긴장감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마치 인자하신 할아버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듯 오가는 말들을 여느때보다 더 자연스럽게 통역할수 있었다.

중조친선의 정이 흘러넘치는 가운데 30분이란 접견시간이 어느덧 지나갔다. 해당부문 일군이 다가와서 귀띔하자 모주석은 먼저 일어서면서 그럼 당신들의 공연을 구경합시다!“라고 말하며 다시한번 조선예술인들과 일일이 악수하였다.

우리는 모주석을 모시고 공연장으로 나갔다.

그때 무한에서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전원회의가 진행중이였다. 그번 회의는 《인민공사의 몇가지 문제에 대한 결의》와 함께 다음기의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직무에서 사임할데 관한 모택동동지의 제의를 토의하고 채택하는 자못 중요한 회의였다.

이날 저녁 공연은 이 회의에 참석한 중국 중앙지도자들과 중앙위원들을 위한 특별공연이였기때문에 원래의 20여개 종목가운데서 제일 우수한 10여개 종목만을 무대에 올렸다. 

대회장인듯한 공연장소의 앞쪽 정중앙 관람석에 모주석을 모시였고 그 뒤켠에 류소기, 주덕, 등소평 등 중앙지도자들과 중앙위원들이 앉았으며 나는 예술단 단장, 부단장 및 무한시 시장과 함께 모주석 관람석 앞줄에 앉았다. 전반 공연과정에 모주석은 매 종목들을 진지하게 관람하시였으며 이따금씩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에 박수를 보내시였다. 

모주석을 몸가까이에 모시고 공연을 관람하는 나의 온 신경은 무대가 아니라 모주석에게 쏠리였다. 나는 자주 고개를 돌려 모주석을 우러러보군 하였다. 오매에도 그리던 위인을 이처럼 그의 몸가까이에서 대하고있다는것이 참으로 꿈만 같았다.

이튿날 신문들에는 모주석이 조선예술단 주요배우들을 접견하시고 조선예술인들의 특별공연을 관람하신 소식과 함께 접견식의 사진이 크게 보도되였다.

나는 모주석과 함께 찍은 이 사진을 그후 신화통신사 촬영부를 통해 큼직하게 현상하여 오늘까지도 나의 앨범 첫장에 정중히 모시고있다. 

【한창희략력】

한창희, 1935년 길림성 도문시 출생.

1953년 중앙군사위원회 군사간부학원 졸업.

중앙인민방송국, 중국국제방송국 편집, 기자 력임.

1980년 《민족문학》잡지사로 전근.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부비서장 등 력임. 

  래원: 인민넷-중국공산당뉴스 (편집: 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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