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층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당원으로 제 18 차 전국당대회에 참가하게 되여 무한한 영광을 느끼고있는 한편 당대표로서 사명과 책임이 아주 무겁다는것도 새삼 느끼고있습니다..."
올해 마흔아홉인 림송숙은 연길시 공원가두 원휘지역사회의 당총지 서기 겸 주임이다. 그는 2012 년 길림성의 지역사회 부문에서 유일하게 중국공산당 제 18 차 전국대표대회 대표로 선출된 기층당원이다. 림서기는 평소에 "친민, 애민, 혜민"이라는 취지를 항상 마음에 새 겨두고 기층의 당건설사업을 인민의 편리를 도모하는 사 업과 긴밀히 련계시켰다. 그는 11 년간 재직하면서 일심 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한 과정을 적은 "민생일기"만 11 책이나 썼다.
우리가 림서기를 찾아갔을때 그는 지역사회 봉사 대청에서 친절하게 조선족 아주머니를 도와 호적이전업 무를 처리해주고있었다. 얘기중에 아주머니의 아들이 북경에 있다는 사정을 안 그는 직접 아주머니의 아들과 통화하여 북경에 있는 호구부를 직접 자기앞으로 붙이면 바로 접수하고 처리해주겠다고 하였다.
일처리가 끝나자 림서기는 우리를 옆에 있는 숙직 실로 안내했다. 사무실에 가지 않고 숙직실에 가는 리유를 묻자 그는 지역사회에서 서기직무를 맡고있는 11 년간 아직 사무실을 차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저는 매일 대청에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이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것이고 또 업무일군들이 평소 해결못하는 일은 저한테 보고해야 하기에 사무실에 앉아만 있으면 업무처리가 아주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아예 주민들이 저를 직접 찾아오기 편하라고 항상 대청에서 대기하고 있답니다."
얼마후 그는 지역사회의 서기를 맡으면서 기록한 무려 11 권의 일기책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지역사회 업무는 매우 자질구레하고 일이 많기에 기록하지 않으면 전혀 기억할수가 없습니다. 저는 직무를 맡은 첫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민생에 관한 저의 느낌과 소감을 하나하나 일기장에 적는것이 이미 몸에 배여 버렸습니다." 이 일기에는 림송숙과 주민들의 깊은 정이 스며있으며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흘린 그의 땀방울도 흠뻑 스며있었다.
림송숙은 1963 년 연길시에서 태여났다. 그의 어머 니는 본 지역 주민위원회의 주임으로 35 년간 주민들을 위해 봉사해왔다. 림송숙은 아직도 그 당시 오갈데 없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면 어머니가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그들의 림종과 사후를 처리해준 일들이 기억난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주민위원회는 따로 사 무실이 없어 회의도 집에서 하고 사무도 집에서 봐야 하는 상황이였다. 매번 명절때면 사회구역 간부들이 그의 집에 모여 회의를 하고 림송숙의 어머니는 그들에게 밥 도 해주고 목욕물도 끓여주고 저녁에는 그들과 함께 잠도 잤다고 한다.
"해마다 설이면 거의 그러했죠.우리 가족들만 모여 설을 쇤적이 한번도 없었던것 같아요."
어머니가 글을 많이 읽지 못한탓에 림송숙은 소학교 6 학년부터 어머니의 꼬마비서가 되였다. "제일 처음으로 어머니를 도와 한 일이 우리 주민위원회에 등록된 400 가구의 호구원본을 적는것이였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저는 모든 가정의 호구원본을 거의 외우다싶이 했습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어머니의 업무 총화, 연설문 등은 모두 림송숙이 대필하였고 또 이로 인해 림송숙도 주민위원회의 업무를 제대로 배울수 있었 다.
림송숙은 고중졸업후 한 방직공장에서 공청단지부 서기직무를 맡고있다가 그곳에서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후에 아이들을 특별히 좋아한 그는 유 치원 교원으로 되였다. 2001 년, 연길시는 3 개 지역사회를 원휘지역사회로 통합하고 당총지서기를 물색했다. 이때 원 주민위원회 간부들이 모두 림송숙을 적임자로 추천하였다. "그들이 저를 찾아와 제가 주민위원회업무를 잘 알고 당원이기에 지역사회 당총지서기의 적임자라고 하더 군요. 저는 처음에 많이 망설였어요. 어머니가 35 년 동 안 주민위원회 주임을 하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제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깐요."
그러나 전임 주민위원회 간부들이 여섯번이나 찾아 와서 서기직무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오자 림송숙도 마 음이 흔들렸고 드디여 원휘지역사회 당총지서기 직무를 맡게 되였다.
지역사회에 경제실체가 없으면 업무경비가 조달될 수 없고 업무경제가 없으면 지역사회의 제반 사업을 추 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림송숙은 지도부 성원들을 이끌고 창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주민들에게 편리 와 리익을 도모하는 원칙을 마음에 새기고 선후하여 지역사회에 유치원, 두부방, 음료수공급소, 액화가스공급소, 상점, 슈퍼, 리발소, 음식점 등 8 개 편의시설을 설립하였다. 그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 장기적으로 지역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던 자금난문제가 해결되였을뿐만 아니라 30여명 정리실업일군의 재취업문제도 해결되였다.
어느 한번은 한 아빠트의 일층 하수도가 막혀 주민 들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림송숙은 한여름 더위도 잊은채 집집마다 찾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조사를 하여 수리하는 형식으로 이 문제를 해 결하였다. 그때 마침 남편이 종양수술을 받고 입원치료 를 하고있었다. 림송숙은 한편으로 남편을 보살피고 다른 한편으로 주민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한달만에 수리비 용납부 문제에서 합의를 보아 하수도수리를 끝마쳤다. 주민들은 사회구역의 간부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2008 년 4 월, 80여세 되는 한 로인이 4,000 원의 보석금을 지불하지 못하여 아들을 보석할수 없게 되자 사회구역당총지에 도움을 청했다. 지도부성원들은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감옥측과 여러번 협상하여 끝내 보석금 을 내지 않는 대신 지역사회 간부가 담보를 서는 방식으 로 로인의 아들을 출감시켰다.
2006 년, 한 주민이 아일랜드로 로무송출을 떠나기 전에 지역사회 봉사쎈터를 찾아와 쎈터의 업무일군이 그를 대신하여 양로금을 납부하고 취업보조금을 수령해줄것을 부탁하였다.주민이 봉사쎈터에 대한 믿음과 부탁을 저버릴수 없는지라 업무일군은 이 상황을 인차 림송숙에게 반영하였다.
예전에 이런 문제에 봉착한적이 없 었지만 림송숙은 대담하게 업무일군이 주민의 부탁을 받 아들이도록 하고 개인의 호주머니를 털어 보험궤를 사서 비슷한 요구가 있는 사람들의 위탁문서를 보관하였다. 지금까지 위탁문서를 보관한 사람은 14명으로 그들의 저금통장, 집문서, 금은장신구, 주택임대계약, 양로보 험금령수증, 취업통장 등 다양한 귀중물품들이 모두 보 험궤안에 보관되여있다. 오늘도 사회구역의 업무일군들 은 사심없이 그들을 위해 양로보험금 등을 납부하고 그 들이 부탁한 취업보금, 주택임대료를 대신 받고있다. 비록 많은 돈이 오가는 일이지만 한번도 문제가 발생한적이 없다.
"후견인"의 직책을 확실하게 리행하고 과외시간에 홀로 남은 아이들을 더욱 잘 보호하고 보살피기 위해 림송숙의 제의하에 원휘 지역사회는 정식으로 "아동보호 애심협회"를 설립하였으며 동시에 활동쎈터를 설립하여 장소를 마련하고 전문인원을 두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원휘 지역사회내의 국내취업자, 외출취업자, 외지취 업자 및 장애자, 최저생활보장대상가정의 자녀들을 모아놓고 과외지도, 언어훈련, 취미개발, 사상품성교육, 법제선전 등 분야의 전문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하였다.
현재 활동쎈터에 260명 아동이 등록되여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큰 애가 고중을 다니고 제일 작은 애가 겨우 세살밖에 안된다.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또한 상 급기관의 추천도 받은 이 봉사활동은" 영국아동구호련맹"의 지원을 받게 되였다. 련맹의 애리슨녀사는 직접 원휘 구역에 찾아와 아동구호활동쎈터에 11만 4,000 원의 활동경비를 제공한다는 협의를 체결하였다. 이밖 에도 두 유명인사가 조건에 부합되는 일곱 아이에게 소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달 200 원의 취학자금을 지원하고있다.
원휘구역에는 딸 둘을 키우는 실직자 가정이 있다. 남편 태양묵은 로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안해와 큰 딸을 보살펴야 하는외에도 고중을 다니는 작은 딸도 키워야 했다. 이에 림송숙은 적극적으로 민정부문과 조률하여 전 가족이 최저생활보장을 받도록 하였고 태양묵의 일자리도 마련해주었다.
이외에도 림송숙은 태양묵의 작은딸의 고중학비를 전부 부담하였을뿐만아니라 적십자회에서 자금을 지원해주도록 요청하고 원휘사회구역 주민과 사회 각계로부터 기부금을 모으는 등 형식으로 그들을 도와주었다. 가난에 찌들렸던 태양묵일가의 생활은 지금 현저하게 개선되였다.
지역사회의 환경건설을 강화하기 위해 림송숙은 지 도부성원들과 함께 "아름답고 조화로운 고향 가꾸기"활동을 발기하였다. 그는 주민들이 지여사회 환경건설에 참여할것을 호소하는 한편 재적, 재직 당원들을 조직해 지역사회 당원 지원자봉사대를 조직하여 광범위한 봉사 활동을 벌리면서 당원의 모범역할을 발휘하고 당의 선진적인 형상을 수립하였다. 림송숙은 여러차 관할구역 주민들을 조직해 쓰레기청소, 빙설제거, 식수 등 의무로동 을 했는바 참가자가 연인수로 500여명에 달한다.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기 위해 림송숙은 주민들에게 자발적으로 여러가지 조직을 성립할것을 극력 호소하였는바 원휘 지역사회에서는 선후로 무용대, 모델팀, 배구팀, 촬영팀 등 13 개 대오가 성립되여 군중 문화활동이 전례없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편 기층인대대표로서의 림송숙은 시시각각 자기 의 신성한 직책을 리행하면서 의안과 건의를 제기하는 형식으로 군중들의 리익에 절실히 관련되는 문제들을 상급부문에 반영하여 상급부문의 지지를 크게 받았는데 몇년사이 그가 제기한 "정부에서 시민들을 무료로 쥐약, 바퀴약을 살포할데 관한 건의" 등 15가지의 합리성건의가 채납되였다.
10여년간 지역사회봉사에 몸을 바쳐온 림송숙은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과 들끓는 열정으로 여러 민족 주민들의 단결진보와 조화로운 사회구역 건설에 이바지하면서 평범한 사업터에서 소수민족지역의 조화로운 발전을 이룩하는데 평탄하지 않은 한페지를 엮어냈다.
림송숙이 이끌어가는 원휘구역은 선후하여 "전 국인민조정모범주민위원회", "전국학습형가정시범지역사회", "전국평안가정시범지역사회", "전국신의성실건설 시범단위", "전국조화 지역사회 건설시범 구역", ""전국재 해종합대처시범구역", "길림성선진기층당조직 모범단위" 등 100여개 영예를 안았으며 림송숙 본인도 "전국청소 년사회교육특출공헌상", "중국애심모범인물", "주 10대 사 회구역 주임" 등 30여개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래원: 중앙인민방송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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