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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이 신임하는 훌륭한 간부 |
| 길림시당위 부비서장 진순동지의 사적 |
| 하장용 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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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순이 작업현장에서 정황을 료해하고있다. |
편집자의 말: 근일에 연변주에서는 《진순동지를 따라배우는 활동을 벌릴데 관한 중공길림성위의 결정》을 전달하였다. 길림성당위 상무위원이며 주당위서기인 등개동지는 《진순동지의 선진사적은 아주 현실적의의가 있다. 지금 우리 주 래신래방사업이 여전히 비교적 큰 압력을 받고있고 군중들도 많은 어려움을 해결받으려 하고있다. 전 주 각급 지도간부들은 모두 진순동지를 따라배워 만강의 열정으로 군중을 도와 난제를 해결해주고 실제적행동으로 조화로운 연변을 건설하기 위해 기여하여야 한다》는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연변주내 각급 지도간부들과 광범위한 당원들이 진순동지의 사적을 참답게 학습하여 일심전력 인민군중을 위해 일하는 충복으로 되기를 바란다.
진정 길림시는 로공업기지로서 력사적으로 내려온 문제가 많고 국유기업개혁이 어려운데다 많은 군중의 생활이 곤난하다.
1998년부터 시당위에서는 두번이나 국유기업에 대해 대규모적인 개혁을 하였는데 진순은 두번 시기업개혁판공실 상무부주임으로 임명되였고 《안정판공실》상무부주임직도 겸임하였다. 이 직위는 최전선지휘원의 자리로서 전 시의 골치거리와 복잡한 일들과 부딪치게 된다.
《도원신촌사건》은 진순이 부딪친 첫번째 시련이였다.
2001년에 북극가 《도원신촌》소구역의 개발상은 경제소송을 피하려고 여섯채되는 채 짓지 않은 층집들을 버린채로 숨어버렸다. 이 소구역의 전신은 길림시에서 유명한 단층집구역인데 층집에서 살려는 꿈을 이루고저 주민들이 이리저리 돈을 꾸어 주택구매금을 물었다. 어떤 주민은 친척친우집에 얹혀 살고 어떤 주민은 림시로 지은 주막집에서 추위에 떨고있었다. 층집에서 살려던 꿈이 깨여지자 570여세대의 주민들이 가만 있을수 없었다. 주민 조굉문은 신경성귀머거리로 되였고 그의 로친은 입원하게 되였다. 할수없이 조굉문은 프랑카드를 들고 200여명 주민들을 조직하여 거리를 막고 시정부를 둘러쌌다. 2002년 4월에 시당위에서는 진순을 파견하여 이 일을 처리하게 하였다. 첫 신소군중을 만나자 진순은 가슴을 치며 응낙하였다. 《오늘부터 당신들은 누구도 찾지 말아요. 나만 바라보고있으란 말입니다. 내가 끝까지 책임질테니깐.》그리고 휴대폰번호, 사무실과 주택 전화번호를 군중들한테 알려주었다. 군중은 삽시에 조용해졌다. 그후 3년 남짓이 진순은 공지에 100여차례 갔고 관련부문인 18개의 처급, 20여개의 과급 정부기관을 100여번 찾아가 상론하였고 개발공사에 가 100여차례 사무를 보았으며 선후로 이 소구역의 신소군중을 200여차나 접대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시정부에서는 자산저당, 정책치환 등 방법으로 1800만원을 모아 층집을 끝내 짓게 되였다. 도원신촌의 파가호 번계방은 진순의 전화는 우리 평민들도 마음대로 친다고 하면서 야밤이라도 전화를 걸면 그가 곧 달려온다고 말하였다. 2003년 말에 21호 층집의 파가호들이 끝내 새집에 이사하여 설을 쇠게 되였으나 전기줄을 늘이지 않아 전기가 없었다. 번계방이 진순한테 전화를 걸어 반시간도 안되여 진순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뼈를 에이는듯한 한풍속에서 번계방이 마주가 《비서장님, 될것 같아요?》라고 묻자 진순은 《안심하세요. 꼭 환한 전등불속에서 설을 쇠도록 하겠으니!》라고 대답하였다. 설전날에 전기가 켜졌고 소구역에는 폭죽이 요란히 터졌다. 2005년 2월, 6호층집의 주민들이 새집에 이사하였다. 그들은 꽹과리와 북을 치고 양걸을 추면서 시당위까지 찾아와 진순한테 《당의 훌륭한 간부 인민의 훌륭한 충복》이라고 쓴 편액을 보냈다. 진순한테는 신소군중을 접대하는 원칙이 있다. 그는 누가 오나 다 웃는 낯으로 반겨맞는다. 《한사람이 오면 한사람을 만나고 백사람이 오면 백사람을 만나며 한번 오면 한번 만나고 백번 오면 백번 만나야 하지 절대 식언해서는 안된다.》 욕설과 위협같은 억울함을 그는 신소접대중에서 얼마나 당했는지 모른다. 한번은 시풍기공장의 신소종업원들한테 《랍치》되여 새벽 3시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길림제약공장의 기제전환후 종업원배치문제를 처리할 때 한번은 그가 강단에서 혼자서 격동된 종업원 700여명과 대화를 하여야 하였다. 또 한번은 이 공장의 한 신소군중이 그의 앞에서 휘발유병을 마스고 분신자살하려 하련다고 하였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삽시에 사처에 퍼졌다. 진순은 당황해 하지 않고 계속 내심하게 군중과 대화하면서 정책을 선전하고 도리를 이야기하였다. 그의 조절하에 시정부와 이 공장에서는 3000여만원의 자금을 모아 종업원들을 타당하게 배치하게 되였다. 본바탕 진순은 곧고 정파답다. 그는 어려운 군중을 돕는것을 책임감, 사명감으로 보고있는데 이는 그의 가정배경과 아주 큰 관계가 있다.
진순의 아버지는 원 중앙 어느 기관의 간부로서 지난 세기 50년대말에 길림성으로 내려가 사업하게 되였고 후에는 불공정한 대우를 받게 되였다. 로인은 일생에서 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명예와 지위에 대해 아주 담담한 태도를 취하였다.
진순도 관직을 아주 담담하게 대한다. 그가 시당위 부비서장직에 14년이나 있게 되자 그의 부하로 있은 발탁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불평의 소리를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담담히 웃으면서 《나는 그렇게 많은 표창을 받았는데 최전선에서 싸우는 간부들과 비기면 아주 행운스럽다》고 말하였다. 시당위 부비서장으로서의 진순은 아주 우수한 《참모》와 조수이지만 지도자와의 관계처리는 어떤 때 지어 《시대에 따라 가지 못한다》. 지도자의 사무실에 가 사업을 보고할 때 그는 《한 일》만 말한다. 회의에서 사업을 연구할 때 지도자가 결정한 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자리에서 지적하였다. 시당위의 원 부서기 좌영련은 시기업개혁판공실 주임직도 겸임한적 있었고 진순의 직접적지도자였었다. 그는 《여러해 같이 일하면서 진순은 나한테 담배 한대도 건네주지 않았고 밥 한끼 청해 먹이지 않았다. 례물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농촌에 내려가 조사연구할 때는 모두 내가 그를 청해 밥을 먹이였다》고 말하였다. 요 몇년간 길림시의 체제개혁기업소는 3000여개소에 달한다. 시기업개혁판공실 상무부주임인 진순이 체제개혁방안에 서명하여야 방안이 유효하게 되기에 그가 쥔 권력이 아주 크다고 할수 있다. 많은 국유기업소의 공장장과 민영기업소의 보스들이 모두 그와 관계를 가까이하려 하였다. 하지만 십몇년래 당사자중 누구 하나 진순을 식당에 한번이라도 청하지 못했고 누구 하나 그한테 례물을 보내지 못했다. 진순의 아들이 지난해에 결혼하였는데 진순은 직계친속, 한반 동창생, 같은 단위에서 일한적 있는 동사자들만 청했고 시지도자, 각 부문책임자, 기업책임자들은 하나도 청하지 않았다. 이전에 그의 도움을 받은적있는 많은 공장장과 경리들이 그 기회에 그한테 보답하려 하였다. 한 녀공장장은 진순의 사무실로 찾아와 그한테 《검거신》을 바쳤다. 진순이 봉투속에 꼭 돈이 들어있으리라 짐작하고 여러 사람들앞에서 검거신을 읽으라 하자 그 공장장은 방법이 없어 이튿날 진순의 집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반나절 벨을 눌렀으나 진순은 그냥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담배 피우지 않고 술마시지 않으며 마작을 놀지 않고 명표옷을 입지 않는 진순은 그래도 자기를 《고행승》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는 사람마다 자신의 생활방식이 있는데 그저 건강하고 즐거우면 된다고 말한다. 진순에게는 네가지 큰 기호가 있다. 그는 탁구치기 즐기고 바둑두기 좋아하며 책읽고 글쓰기 좋아하고 음악을 듣기 좋아한다. 그는 로동자, 간부들과 늘 바둑을 두며 그가 쓴 여러편의 국유기업개혁에 관한 론문이 국가급간행물에 발표되였다. 그는 특히 인정을 중요시하는데 남동생이 병으로 움직이기 불편하게 되자 휴식날마다 반천씩 빼내 동생을 동무해주군 하였다. 그의 안해가 퇴직한후 진순은 날마다 아침저녁 같이 산보하는데 봄과 여름철에 날마다 세시간 반씩 산보하군 한다. 진순은 이런 충성스럽고 흉금이 넓은 간부이고 일심전력 인민을 위하는 충복이며 고상하고 감정이 풍부한 공산당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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