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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100주년] 창당일, 왜 7월 1일로 확정했는가?

2021년 02월 18일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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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은 언제 창립되였는가? 이 문제는 많은 소학생들도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1921년 7월 23일, 중국공산당은 상해에서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하여 탄생을 선포했다. 그럼 중국공산당이 7월 23일에 탄생했는데 왜 당의 생일을 7월 1일로 확정했을가?

중국공산당 초기 력사를 돌이켜보면 지극히 힘들고 어려운 세월 속에서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모두 알다싶이 중국공산당 1차 대표대회 소집기간에 위기상황들이 발생했는데 회의의 비밀성 및 촉박한 전이로 하여 당시 회의기록이 그리 많지 않다.

중국공산당 창립초기의 몇년간, 전당은 계속하여 아주 어렵고 복잡한 투쟁환경에 처해있어 당의 생일을 경축할 여건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외 관련 회의에 참석한 인원들이 투쟁 속에서 희생되고 시련을 겪은 데다 중앙 보관서류의 류실과 훼손까지 더해져 몇년후 중국공산당이 이 중요한 력사를 환원하려고 할 때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였다.

1938년, 항일근거지에서 창당 17주년 기념활동을 개최할 때 중국공산당은 탄생날자를 확정해야 했다. 당시 연안에는 중국공산당 1차 대표대회 대표 모택동, 동필무 등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기록자료가 부족하여 그들은 1차 대표대회가 7월에 소집되였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고 확실한 날자는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7월 1일을 당의 탄생기념일로 정하기로 합의했다. 바로 이 해에 모택동은 <지구전을 론함>이라는 문장에서 "올해 7월 1일은 중국공산당 창립 17주년이 되는 기념일이다."라고 지적했다.

1941년 6월, 중공중앙은 <중국공산당 탄생 20주년과 항일전쟁 4주년을 기념할 데 관한 지시>를 발부했는데 이는 전당이 처음으로 당의 생일을 대규모적으로 기념한 것이고 중앙문건에서 '7.1'을 당의 탄생기념일로 정식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후 7월 1일에 당의 창립을 기념하는 것이 계속 이어져왔다.

반복적인 고증과 론증을 거쳐 전문가들은 중국공산당 1차 대표대회가 7월 23일에 개최되였다고 확정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수십년이 지난 후의 일이였다.

작은 것 하나만 보아도 전모를 알 수 있다. '창당날자(建党日期)'와 '창당절(建党节)'의 시간이 다른 것은 또 다른 면에서 중국공산당이 백년래 얼마나 많은 좌절과 어려움을 경험했는지를 반영한다. 바로 이런 절경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 수많은 간난신고의 시련을 경험하면서 중국공산당은 백번의 담글질을 거쳐 마침내 강철로 거듭나게 되였다. 중국공산당의 력사가 증명하다싶이 어려움에 맞서 나아가고 수없이 꺾여도 결코 굽히지 않는 정신은 이미 중국공산당의 '습관'이 되였는바 중국공산당의 '유전자'에 새겨졌다.

7월 1일이든, 7월 23일이든 이 날은 전체 중국공산당원과 모든 중국인들이 가장 명기해야 하고 사고해야 할 날이다. 력사는 가장 좋은 교과서이고 가장 좋은 각성제이다. 습근평 총서기가 강조했듯이 "우리가 력사를 회고하는 것은 성공 속에서 위로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고 공로책에 기록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오늘 직면한 어려움과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핑게를 찾으려는 것은 더더욱 아닌바 력사경험을 총결하고 력사법칙을 파악하여 개척, 전진의 용기와 힘을 증강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7월 1일과 7월 23일에 숨겨진 '수자비밀'을 알게 되면 중국공산당이 가시덤불을 헤치며 걸어온 고생과 어려움을 엿볼 수 있고 수많은 선구자들이 피와 생명을 후회없이 바친 리유를 알 수 있으며 공산당원이 왜 지금까지 초심과 사명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외계에서 중국이 창조한 '빈곤해탈기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중국이 왜 전세계 전염병대응 전투에서 이와 같이 우수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 우리는 보다 정확하고 자신감 있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