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통화시의 한 촌지부서기가 12년간 악한 짓을 하였으며 후에는 “검은무리” 우두머리로 되였다. 3월 31일 통화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길림성고급인민법원의 위탁을 받고 통화시에서 공안부 독찰판공실의 왕평무리의 검은 사건에 대해 종심판결을 내렸다. 법원에서는 마지막에 고의상해죄, 비법구류죄, 검은사회성질을 띤 조직을 령도한 죄 등 16가지 죄명으로 왕평에게 형기 50년 판결, 유기형 20년으로 집행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올해 53살 난 왕평은 체포되기 전 통화시 이도구 압원진 향양촌의 당지부 서기, 촌민위원회 주임, 통화시 가풍약업주식유한책임회사 리사장이였다. 1992년 4월 왕평은 이른바 자기추천방식으로 향양촌의 촌주임을 맡았다. 2년후 그는 또 촌지부서기를 맡았다. 그것을 밑천으로 그는 사회에서 놀고있는 사람과 저질청년 30여명을 촌경찰대로 무어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구타하였다.
2001년 여름 왕평은 자기의 순자산이 8만여원 되는 형편에서 가짜은행예금통장을 리용하여 주자로 나서서 주식유한회사를 설립하고 길림성공상은행행정관리국으로부터 등록자본 5800만원인 통화가풍약업주식유한회사의 공상등록증을 사취하였으며 등록자본 5790여만원을 거짓 보고했다. 그뒤 왕평은 국가증권관리법규를 어기고 국가증권관리부문의 비준을 거치지 않고 통화시 가풍약업주식유한책임회사의 명의로 사회공중들에게 주식을 발행했는데 도합 844명이 주식을 구매했다. 왕평은 여기에서 사회자금 1000여만원을 비법모금했다.
1993년이래 왕평의 무리는 고의적인 상해, 사건도발, 비법구류, 강박교역 등 15가지 범죄를 150여차 범했다. 이밖에 직무를 리용해 13가지 범죄를 범했으며 국가와 집체의 자금 300여만원을 점했다.
통화시중급인민법원에서 심리한 이후 왕평 등이 불복하여 상소했으나 길림성 고급인민법원에서는 상소를 기각하고 원판결을 유지하였다(신화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