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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우리 가요의 현시점과 갈길은 어디인가?

박영일

2022년 03월 09일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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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작곡이 주전공이여서인지 류학이 끝나고 귀국 후 항상 동일한 질문을 지인들한테서 받게 되였다. <연변 노래는 왜 발전이 없지? 연변 노래는 왜?…> 등 항상 받는 질문이다. 피하고 싶은 질문이였고 직접적인 답변은 언제나 피하였던 현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우리 음악, 우리 가요를 사랑하며 그 발전을 기대하는 한 음악인으로서, 또한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비판적으로 행동하는 한 지식인이 되기 위해 이 부분을 대담하게 짚어보려고 한다.

필자는 우선 우리 가요가 대중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당과 정부는 모택동의 연안문예좌담회 연설 정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인민을 중심으로 하는 창작방향을 토대로 문예창작 규률을 존중하는 기초에서 문학예술작품의 개혁과 창의를 제창하고 있다. 하기에 ‘백화제방, 백가쟁명’은 문예창작에서 부동한 풍격과 부동한 수법의 동시 존재와 자유발전을 고무격려한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필자는 우리 연변의 일부 음악전문가들이 우리 인민(대중)들이 좋아하는 우리 음악, 우리 가요를 보는 시각이 웬지 외곡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일부 음악전문가들이 말하는 소위 고급예술음악은 누구를 위한 음악인가? 적지 않은 소위 엘리트층의 예술인들은 항상 전통음악, 서양음악 등 음악들을 진정한 고급예술음악이라 하며 대중음악(대중가요)은 그 하위 음악으로 평가하고 저급한 산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해“대중음악도 예술이요?” 하는 질문들에 항상 대중음악은 무기력하였으며 언제나 소외된 존재로 되기도 했다.

과거 우리 서민들 사이에서 창작되고 전해져온 민요도 말하자면 전통 시대의 대중가요라 불릴 수 있다. 필자는 대중음악, 대중가요를 우리 예술의 중요한 한개 부분으로 보고 있다.그런데 현재 우리 연변 음악계에서 일반 서민 즉 일반 대중들이 공감하고 좋아하는 음악들이 소외당하고 있고 그 발전도 부진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가요(음악)의 다양성도 많이 결핍하다고 본다.

연변가요가 무슨 쟝르인지 물어보면 이에 답변할 작곡가와 가수를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왜서 연변가요가 무슨 쟝르인지 답변할 작곡가나 가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것일가? 곰곰히 따져보면 우리 리론계의 문제점 즉 론리적 시스템과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방향이 없었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실용음악(대중음악)학과 박사과정이 나왔고 그들은 세계 유명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한 학자급 대중음악 전문가들이 과학적인 커리큘럼의 적절한 도입으로 대중음악을 세계화로 이끌어가고 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내 9대 음악학원에도 이제 류행음악학과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심양음대 같은 대학에는 류행음악학과가 한개 단독학원으로 승화되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시점은 대중음악의 쟝르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고 우리 음악에 대한 정확한 리론적 정의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 우리 가요는 보편적으로 무슨 쟝르에 속하는가? 신민요, 트로트, RMB, 발라드 등 다양한 쟝르에서 우리만의 쟝르가 따로 있는지? 우리 음악학 학자들의 참여로 우리 가요의 쟝르 구분과 우리 가요 정체성의 리론적 정리, 정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리론적 근거와 받침이 있어야 다원화와 다양화의 글로벌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분야의 세대교체에도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후배들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이 시스템내에서 자기들이 아무리 뚜렷한 사명감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한들 지치는 순간이 대부분이라 한다. 우리 후배들이 그 림계점에 가까이 서있지 않나 하는 념려가 든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통해 순환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면 동화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몇번의 창작 콩클의 참여자 데이터를 보고 필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창작대오가 고령화 현상이 너무 뚜렷하고 청년 작곡가, 작사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대로 페쇄된 우물 안에서 변화와 세대교체를 거부하고 있다가는 우리 음악이 정말로 어디로 갈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 음악계의 잃어버린 자률성과 다양성 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구교체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평의를 위한 평의, 불합격을 위한 평가기준 등 평의기준에도 많은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전문가만의 특유하고 관료적인 평의기준도 많이 개변하고 바로잡아야 할 대목이다. 예술은 틀린 것이 없다. 생각하기 다를 뿐이다. 평의기준을 그들 각자의 취향에 따라 맞추다 보니 우리 음악이 그 기준에 상응하는 위치로 고스란히 보존돼가고 있었다고 본다. 평의위원과 평의기준도 새세대 젊은 음악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우리 음악의 새로운 구도가 탄생하고 우리 음악의 새 시대성과 글로벌화가 되여 젊은층들의 관심도가 높아질 것이다.

우리 연변은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는 고장으로 전국에 소문나있다. 지금도 김봉호 선생님이 20세기 60년대 작곡한 <붉은해 솟았네>,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 등 노래가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을 통하여 중국대지에 널리 울려퍼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는 감동도 받지만 스스로 반성도 해야 한다. 21세기 우리의 명곡은 아직도 진행중에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정신적인 것의 감각적 표현이다. 나름 대로 우리 시대 예술을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분야가 대중음악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음악에 대한 정신이 아름다움과 그 미적 기준이 너무 분주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연변가요, 연변음악의 갈길은 우리절로 반성하고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래원: 연변일보(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