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광서 류주시 류성현 고채무로족향 룡미촌 담촌툰의 큰 반얀나무 아래에서 200여명의 크고작은 아이들이 상장을 들고 줄을 서서 돈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마을 주민들이 39년 동안 지켜온 ‘규칙’이다. 유치원부터 연구생까지 상장이나 합격통지서만 있으면 마을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 돈은 바로 집집마다 모아 마련한 것이다.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장학금 설립 발의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매년 마을주민들은 부동한 학년의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설치한다고 한다. 올해 상장을 받은 유치원에게 20원, 중학생에게 200원, 연구생에게 1000원을 전달했으며 2026년 총 200여명의 아이들에게 1.3만여원을 지급했다.
발급현장에서 77세의 로인이 아이들에게 상금을 건네며 계속 노력하라고 인내심 있게 당부했다. 이 로인이 바로 이 활동의 발기인 중 한사람인 담기안이다.

1986년 담기안은 마을 102명의 아이들이 기말시험에 참가했지만 어문과 수학 두 과목 모두 급제한 아이가 14명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일로 고중에 다녔던 담기안은 매우 걱정하면서 아이들의 학업열정을 북돋울 묘책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장학회를 설립하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당시 마을주민들은 대체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돈을 아이들의 교육에 쓴다는 말을 듣고는 거의 누구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듬해 1월, 장학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였다. 마을 인구가 1000여명이였는데 한사람당 1전을 기부하여 첫해 장학금을 마련했고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한 ‘달콤함’을 맛보게 되였다.
장학회가 설립된 지 7년 만에 담촌툰에는 첫 대학생이 배출되였다. 마을주민들의 적극성이 더 높아졌고 기부도 더 많아졌다. 담기안은 “마을에 반대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고 모두 전적으로 지지했다!”고 말했다.
당시 담기안은 벽돌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 다섯식구의 생계를 책임졌는데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매년 기부를 꾸준히 이어갔다. 그의 영향으로 외지에서 일하는 마을주민들까지도 기부에 동참하게 되였다. 담기안은 “어떤 사람은 50원을 기부하고 어떤 사람은 100원을 기부한다. 우리 마을사람들은 정말 똘똘 뭉쳤다.”고 말했다.
장학금발급 중단된 적이 없어, 마을에서 120여명의 대학생 배출
전체 마을주민들의 견지하에 장학금발급은 종래로 중단된 적이 없다.
매년 마을의 큰 반얀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상장을 들고 줄을 서서 장학금을 받는다. 이 몇년 동안 포상을 받은 학생은 루계로 1만명에 달했다.
매년 마을주민들이 얼마나 기부했는지, 상을 받은 아이가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지, 어떤 학교에 합격했는지 진기안은 작은 공책에 정갈하게 적어 항상 지니고 다닌다. 그의 공책에는 또 다른 몇마디가 적혀있다.
“마을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해마다 장학금을 기부한다. 학생들이 3호학생을 쟁취하고 모든 과목에서 1등을 하도록 장려한다. 30년간 장학제도를 시행해 인재가 끊이지 않고 기쁨이 이어지고 있다…”
담기안이 특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마을에서 이미 120명이 넘는 대학생이 배출되고 지금 모두 학업에서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고향으로 돌아와 교원이 되였고 어떤 학생은 공정사가 되였으며 어떤 학생은 계속 장학회에 기부하고 있다… 그해 마을사람들이 떠받쳐주었던 아이들은 이미 고향을 밝히는 ‘홰불’이 되였다.
담기안은 자신의 가장 큰 바람은 아이들이 문화와 과학을 더 잘 배우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며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대중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의 소박한 장려는 아이들의 꿈을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도움을 받은 소년들은 다시 빛과 열을 고향으로 돌려주었다. 39년 동안 이 따뜻한 선의는 계속 순환되여왔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