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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모라의 봄날|니마왕쥬: 쥬허줘무의 전승과 부활

2026년 10월 19일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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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마할아버지 쥬허줘무를 한곡 더 춰주세요!”

서장자치구 산남시 춍갸이현의 산간마을에 놓인 소가죽 대북 곁에서 아이들이 팔순된 니마왕쥬를 둘러싸고 있다. 그 어린 얼굴마다에는 간절한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북채를 내리칠 때마다 깊고 웅장한 북소리가 산야에 울려퍼졌다. 국가급무형문화유산 서장 ‘쥬허줘무’의 대표적 전승자인 니마왕쥬할아버지는 팔순 고령이지만 여전히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넉넉한 장족두루마기 밑자락이 그의 유려한 춤사위를 따라 서서히 휘날렸다.

천여년의 력사를 지닌 쥬허줘무는 고원민속을 그대로 보존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어둠이 드리워졌던 옛 서장에서 예술은 무용수들의 것이 아니였다. 오직 권세자들의 유희를 위한 수단이였으며 농노무용수들은 마음대로 부려지고 빚을 갚는 존재에 불과했다.

당시 어린 니마왕쥬는 농노주가 마음대로 부려먹던 농노였으며 쥬허줘무를 추는 것은 빚을 갚기 위한 무상로역이였다. “옛날 사찰에 가서 춤을 추는 것은 그저 빚을 갚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는 것이였습니다. 높은 단상 우에 있는 농노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기만 했습니다. 노래든 춤사위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먹을 것은커녕 매를 맞고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년 내내 억지로 재주를 피우던 세월 속에서 그는 종일 불안에 떨며 살았다. 우렁차고 뜨거웠어야 할 북소리는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였고 생동감 넘치고 여유롭게 펼쳐지는 춤사위는 신체의 자유를 묶어두는 차가운 족쇄로 전락되고 말았다.

천지개벽의 변화는 민주개혁의 시작과 함께 찾아왔다. 그해 공산당은 니마왕쥬의 가정에 식량, 밭과 집을 나누어주었다. 세세대대 농노주에게 목숨을 의탁하며 살아야 했던 고통은 드디여 막을 내렸다. 천년을 이어온 쥬허줘무도 백만 농노들과 함께 새 생명을 얻으며 부활을 맞이했다.

그후 니마왕쥬는 문예단에 합류해 춤을 추며 당당하게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는 농노주들을 위해 고된 부역으로 춤을 췄지만 지금은 고향사람들을 위해 춤을 춥니다. 그 순간 비로소 춤을 추는 것이 얼마나 존엄있는 일인지 절실하게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2014년, 쥬허줘무는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적 항목명단에 성공적으로 이름을 올렸는바 체계적으로 보호되고 전민에게 속하는 소중한 민족문화유산이 되였다. 다년간 로인은 80여명의 젊은 쥬허줘무 전승자들을 알심 들여 양성했으며 상시적으로 무형문화유산 학교보급활동, 기층공익공연활동을 전개했는바 깊은 산속에 묻혀있고 력사가 유구한 쥬허줘무가 전국에 널리 전해지도록 했다.

그는 “지금 춤 추는 것은 삶이 행복하고 마음이 즐거워서입니다. 쥬허줘무를 진심으로 좋아해서 추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너희들은 정말 좋은 시대에 태여났어. 이렇게 좋은 조건과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옆에서 열심히 춤을 배우는 아이와 제자들을 향해 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2025년말까지 서장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종목은 106개에 달했다. 천년 탁무의 변천은 서장 문화발전의 진실한 축소판이다. 문화는 더 이상 권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민이 공동으로 만들고 향유하는 정신적 재부로 되였으며 유구한 문맥은 새 시대에 이르러 진정으로 대가 끊이지 않고 세세대대로 이어 전승하게 되였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