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는 어떻게 씌여졌고 문물은 어떻게 생겼을가? 동일한 전시대에서 그것들은 ‘대화’로 력사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13일, 우수한 중화 전통문화의 창조성 전환과 혁신성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길림성문물고고학연구소, 길림성도서관, 길림성자연박물관, 길림성촬영가협회가 주최한 ‘서재사, 물위증(书载史 物为证)—길림장백산문화전’이 길림성전적박물관(吉林省典籍博物馆)에서 펼쳐졌다.
이번 전람회는 전적과 고고문물, 전승과 혁신을 결합한 전람회로 과학연구, 대학교, 문박(文博)단위의 여러 전문가와 학자들이 참관하였으며 길림성도서관 무서류 회의실에서 전람회의 주제를 둘러싸고 학술교류를 전개했다.
전람은 길림성도서관에 소장된 진귀한 고적 《산해경》, 《삼국지》, 《장백산 령적전영(灵迹全影)》 등 172권의 문헌; 길림성문물고고소 에 소장된 석기. 도기, 순금장신구, 건축장식품 등 128점의 문물; 길림성자연박물관에 소장된 흑곰, 꽃사슴, 자담비, 홍두삼나무 등 13점의 동식물표본과 길림성 촬영가협회의 사진작품들이 문헌기록과 문물유물의 두가지 상호 립증방식으로 길림 장백산문화의 발전자취를 더듬었다.
해설자는 《산해경》에 기록된 불함산(不咸山, 장백산)을 시작으로 전적(典籍)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문화재에 대한 해설을 통하여 길림 장백산문화의 진화과정과 풍부한 내포, 독특한 매력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전람은 시간을 축으로 '동굴모닥불 문명발자취', '관동고비 창파직로', '옥책재현, 의례장백', '빙설비단, 장백성산', '영용불굴, 정신영속' 등 5개 부분으로 나눠 구석기시대부터 전국, 한당, 료금, 명청 및 근대에 이르는 길림 장백산의 력사문화를 조명했다.
‘동굴모닥불 문명발자취(洞穴篝火 文明足迹)’은 문헌 《산해경》중의 불함산의 기록을 시작으로 두만강, 송화강, 압록강 삼강류역의 대표적인 유적지를 선정하여 구석기시대부터 전국시기까지의 길림장백산문화를 이야기했다. 돌도끼와 돌창, 흙을 구워 도자기를 만들고 짐승뼈로 길흉을 점치고(卜骨问吉)... 장백산은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인류의 발자취로 문명의 서광을 향해 전진했다.
‘관동고비 창파직로’(关东古碑 沧波织路)는 한당시기 길림문명발전의 련속성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문헌 기재, 기물 특징을 통해 중화문명발전사에서 동반상생의 다원일체구도를 보여주었다. 돈대봉화(墩台烽火), 관동고비(关东古碑), 발해오경(渤海五京) 등 문헌중의 모든 문자, 문물중의 모든 세절들이 바로 차서본일가(车书本一家)이다.
‘옥책재현 의례장백’(玉册重现 礼仪长白)은 료금시기의 장백산문화를 주선으로 금나라의 장백산신전유적에서 출토한 ‘계축(癸丑)’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옥책과 ‘대정통보’동전은 《금사》, 《대금집례》등 문헌의 기록을 실증하는 것인데 이것이‘서재사, 물위증’이다. 유적에서 출토된 옥책, 짐승얼굴무늬의 와당, 룡봉무늬의 치문, 짐승 머리 모양의 장식품 등은 문양이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빙설비단 장백성산’(冰雪丝绸 长白圣山)은 명청시기의 장백산문화를 이야기했다. 명청시기에 장백산은 교통이 사통팔달했고 역참은 하늘의 별처럼 총총했으며 동북지역과 중원지역이 밀접하게 련결되였다. 《대명일통지》, 《대청일통지》, 아십하다 마애석각(阿什哈达摩崖石刻), 소백산 망제전 등 풍부한 문헌과 문물은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이 땅에 남긴 력사 흔적을 기록했음을 말해준다.
‘영용불굴 정신영속’(英勇不屈 精神永续)은 근대 장백산의 비바람의 려정을 이야기했다. 행정구역의 변천, 건축양식, 항일전쟁, 4차례 림강보위전(四保临江), 항미원조 등 장백산은 시종 중국 근대 력사의 굴욕과 위대한 전환을 목격했다. 백년의 력사는 많은 비바람을 겪었으며 장백산은 마침내 개척진취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전람현장에서는 선장서제작과 고서적복원 체험을 전개했으며 문화재보호활동이 전시청에 진입하여 ‘보고’ ‘만들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관중들의 중화문맥을 이어가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