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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처음 부대를 파견해 평화유지행동에 참가

“중국 세계평화수호를 위해 거대한 기여를 했다”(개혁개방 40년•40개 ‘제일’)

본사기자 왕해림

2018년 12월 17일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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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명 장병들로 구성된 공병대대는 우리가 처음 유엔에 파견한 편제평화부대이며 또한 인민해방군이 처음 해외로 진출해 유엔임무를 수행한 부대이다.” 중국인민해방군 캄보쟈공병대대 대대장이였던 리금용이 그 당시의 정형을 회억하며 하는 말이다. 그는 그 때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시계바늘을 26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1992년 4월 16일, 중국인민해방군 군사공정대대 선견부대일행 10명이 캄보쟈 수도 프놈뻰에 도착해 유엔 캄보쟈림시권력기구의 평화유지행동에 참가했다. 400명 군사공정인원들로 구성된 중국인민해방군 캄보쟈행 공병대대가 재빨리 설립되였고 1992년 4월 24일 프놈뻰에 위치한 중국평화부대 병영에 도착했다. 이는 중국인민해방군사상 첫 “청색 베레모 부대”이다.

캄보쟈에 도착한 후 리금용네는 첫번째 임무 즉 전쟁으로 엄중하게 파괴된 4번, 6번 국도를 긴급복구하는 임무를 맡았다. 4번국도는 프놈뻰과 캄보쟈의 최대 항구 콤퐁솜항(시하누크항)을 련결하는 캄보쟈 륙지 교통동맥이다. 그런데 전쟁에 의해 이 도로의 6개 교량이 엄중하게 파괴되여 세계 각지에서 해상운수해온 각종 구조물자들이 이곳에 지체되였다. 유엔의 평화유지임무수행 차량만 해도 8000여대에 달했다. 콤퐁솜에 위치한 6번국도는 수많은 포탄구뎅이 때문에 많은 구간으로 갈라져 근본 차량이 다닐 수 없었다. 몇십 킬로메터되는 길을 찦차도 하루를 달려야 했다.

당시 캄보쟈는 우기가 한창이라 도로건설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보다도 아직 폭발하지 않은 지뢰가 수시로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고 불의에 총알이 날아올수도 독뱀이나 독모기에게 물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평화유지부대 장병들은 위축되지 않았다. 그들은 확고하게 임무를 접수했고 20일 앞당겨 임무를 완성했다. 이 희소식을 들은 후 당시 캄보쟈주재 유엔 림시기구 주석이였던 야스시 아카시는 련속 찬탄을 금치 못하며 “임무를 아주 적시적으로 잘 완수했다”고 말했다.

20여년래, 중국평화유지부대 장병들은 수차 실제행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0년 처음 군사 옵서버를 파견해 유엔평화유지행동에 참가해서부터 지금까지 중국은 루계로 연 3.7만명의 군경과 장병들을 파견해 선후로 24가지 평화유지행동에 참가했다. 중국평화유지부대 장병들은 루계로 1.4만여킬로메터의 길을 신축하고 복구했으며 지뢰 및 아지 폭발하지 않은 각종 폭약 9800여매를 제거하고 연인수로 20만명이 넘는 환자들을 치료해주었으며 각종 물자, 기자재 135만톤을 운송했고 운수거리는 1300만킬로메터에 달한다. 21명의 중국평화유지부대 군인과 경찰이 세계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자기의 보귀한 생명을 바쳤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