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9세인 고명진 녀사는 매번 빛 바랜 이 사진을 꺼내들 때마다 마치 기억으로 통하는 열쇠를 찾은 것처럼 지난 일들을 거침없이 얘기하군 한다.
“1990년의 ‘3.8’절이였습니다. 우리 녀성종업원들은 함께 아령공원에 놀러갔는데 그 당시에는 어쩌다 시내로 놀러가는 것이였습니다.” 고명진 녀사는 지금 젊은이들은 록색기차를 본 적이 없어 신기하게 여기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록색기차가 중경 주변의 주민들이 출행할 때 사용하는 가장 인기있는 교통수단중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당시, 고명진 녀사간 근무하는 중경 소남해철도역은 사천-귀주 철도와 성도-중경 철도가 만나는 곳이였다. “80년대에는 개혁개방을 실시했기에 량식이 넉넉해 농민들이 먹고 사는데는 문제 없었습니다. 철도 연선의 마을 사람들은 머리가 잘 돌아갔는데 기차에 올라 장사를 했지요. 그래서 생활이 아주 윤택했습니다.” 고명진 녀사는 당시 록색기차는 객석이 많지 않았는데 이는 손님들이 특산물을 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녀는 록색기차에서 나던 냄새를 얘기할 때 웃으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왜 뻐스를 타지 않았나요? 뻐스에 앉으면 고속도로로 갈 수 있고 그러면 냄새도 덜 났겠는데요?” 대학교 1학년에 다니는 조카딸이 신기해하면서 궁금증을 제기했다.
“그 때 고속도로가 어디 있었니?” 고명진 녀사는 예전의 중경은 산이 높고 길이 멀어 편벽한 성구현성에서 중경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이틀이 더 걸렸다고 말했다. 지금은 도시중심에서 차로 가면 한시간이 걸리는 장수구를 그 때 당시에는 배를 타고 장강에서 역류하여 올라가야 했는데 하루 밤이 걸렸다고 한다.
1995년 고명진 녀사는 성도로 가게 되였다. “그 때 아주 흥분되였습니다. 쾌속렬차를 차고 중경에서부터 성도까지 10여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거든요. 자고 일어나니 도착했습니다.” 고명진 녀사는 그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K자머리 쾌속렬차가 점점 많아지고 록색기차가 점점 적어졌는데 농호들도 가금이나 남새를 들고 중경시내에 가서 팔 필요가 없어졌고 대다수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말했다.
1994년 10월 28일, 상해-성도 고속도로 상교로부터 상가파까지의 구간(성도-중경 고속도로 중경단락)이 개통되였는데 그 전체 길이는 114.2킬로에 달했다. 벽산, 강진, 영천, 영창 등 구와 현을 경과해 중경에 고속도로가 없던 력사를 결속지었다.
2006년 성도-수녕-중경 철도가 개통되였으며 성도-중경 도시간 이층렬차가 운행되였는데 성도와 중경 지간의 운행시간이 10여시간으로부터 4시간 반으로 줄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09년 중경-성도 ‘조화호’동력분산식렬차가 개통되였고 2015년에 성도-중경 고속철도가 운영에 투입되면서 성도와 중경 지간의 운행시간은 1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얼마전에 고명진 녀사는 성도에 갈 일이 생겼는데 일부러 고속철도를 선택했다. 그는 “고속철도시대에 도시가 서로 가까워졌다. 몇십년 전에는 소남해역에서 중경까지 가려면 한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성도까지 가도 한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2006년 란주-중경 철도가 개통되여 중경과 서북, 유럽대륙을 이어놓았다. 같은 해 말, 중경-만주(万州) 철도가 개통되여 동력분산식렬차가 삼협저수지구역와 중경을 이어놓았다. 2018년 중경-귀주 철도가 개통되여 중경남에서부터 주강삼각주 지역까지의 쾌속통로를 열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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