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준비, 1분 준비, 30초, 10、9、8……3、2、1, 점화!” 1988년 9월 7일, 산서 태원, 새벽 4시 30분 19초, 우리 나라에서 자주적으로 연구제작한 첫 극궤도기상위성 풍운-호A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여 정확하게 태양의 동기궤도에 들어섰다. 몇시간 뒤, 세계기상기구 2구협 제9차 회의에서 당시 세계기상기구 주석, 중국 국가기상국 국장 추경몽은 손에 한장의 위성구름사진을 들고 회의참가대표들에게 풍운1호A성이 보내온 첫 사진을 보여줬다.
이는 중국 기상사상의 굵고 짙은 한획으로, 우리 나라 위성과 지면시스템건설이 없던데로부터 있기까지의 중요한 접점이다. 이 때로부터 우리 나라는 외국 기상위성의 수치에 의존하던 력사를 마치고 자신의 위성시스템을 갖게 되였다.
이 시각을 위해 기상과 우주항공 일군들은 근 20년의 노력을 했다. 기상부문에서는 언녕부터 지면응용시스템의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20세기 70년대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나라는 이미 외국 위성구름사진을 접수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단지 사진만 접수할 뿐 정량처리를 하지 못하여 원시수치발굴 혹은 여러가지 기상요소를 추산할 수 없었고 그 리용가치를 충분하게 개발해내지 못했다.
1978년, 당중앙 11기 3차 전원회의가 승리적으로 소집되고 우리 나라 기상사업발전도 개혁개방의 동풍을 타게 되였다. 기상부문에서는 기상위성자료처리프로그람을 유치하고 20세기 70년대말부터 80년대초까지 계산속도가 지금의 개인컴퓨터의 100분의 1도 안되는 ‘대형기기’를 리용하고 국가기상중심팀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한 끝에 위성자료정량처리기능을 숙련되게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