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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에서 본, 희비가 엇갈린 조선족농촌의 10년

흑룡강성 연수현의 조선족농촌 10년 보고

2013년 01월 21일 08:55【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새로운 시기에 들어서면서 백년의 오랜 력사를 가진 흑룡강성 연수현 조선족농촌은 그 어느때보다도 심각한 진통을 겪게 되였다. 2002년으로부터 2012년까지 연수현 조선족농촌은 보다 활발하게 진행된 코리안드림과 도시진출의 소용돌이속에서 그리고 행정구역조절이란 상급의 지시정신에 의해 큰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족촌의 수자가 대폭 줄었다

원래의 14개 독립촌들이 합쳐 6개로 되였는데 그 가운데 조선족인구가 적은 수산향 오성촌, 륙단진 동방촌같은 조선족촌들은 타민족촌과 합쳐지면서 아예 본래가지고 있던 자신의 이름마저 사라지게 되였다.그리하여 오성촌은 삼성촌으로 동방촌은 릉하촌으로 개명되였다.

한편 같은 향이나 진내에 속한 조선족촌들이 합쳐지면서 중화진의 선봉,민광은 합쳐 그 이름을 선봉촌으로, 가신진의 유민, 태평, 실험참,민풍은 부민으로, 옥하향의 화성촌과 홍성촌은 합쳐 화성촌으로, 조승촌과 동광촌은 합쳐 동광촌으로, 연하진의 동명촌과 평선촌은 합쳐 동명촌으로, 성광은 본래 평안향에 속했으나 후에 연하진에 소속되였지만 워낙 촌의 범위가 큰 마을이여서 성광이란 촌이름을 그대로 갖게 되였다. 그러나 아무리 타민족가 촌을 합쳤다 해도 오성촌같은 곳은 의연 자체로 관리하게끔 협약을 맺어 의연히 독립적인 지위를 갖고 경제권을 행사할수 있게 되였다.

농사 짓는 농호가 대폭 줄었다

통계에 의하면 연수현조선족농촌에서 한국, 러시아, 일본과 기타 나라에 출국하고 도시로 나간 호수가 1431세대로 전 연수현조선족호의 (총1,782세대)의 75 %를 차지한다. 따라서 지금 연수현조선족촌에 남아있는 호수는 361세대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농촌을 떠나는 사람이 늘면서 농사짓는 사람 또한 극히 드물어 연수현조선족농촌에서 직접 농사에 종사하는 조선족농호는 도합 19세대로 전 농호의 1% 남짓하다. 동명촌의 경우 지난해까지 농사짓는 호가 한세대 있었는데 2012년에 들어서는 단 한세대도 없는 상황이다.설사 농사를 짓는다 해도 그 경작지면적은 극히 적은데 도합 95. 7헥타르로 총 경작지면적 5,967헥타르의 1.6%밖에 되지 않는다.

토지임대에서 초기에 경제손실을 적지 않게 보았다

90년대 초기 갓 코리안드림이 시작되였을때 많은 농호들이 출국에만 신경이 쏠려있었고 당시는 토지에 대한 국가의 우대정책이 없어 토지를 그닥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토지를 임대함에 있어서 임대비가 낮고 임대년한이 긴것이 특징이였는데 연수현 조선족농촌에서 30년시간을 계약한 농호가 30%나 차지한다. 어떤 농호는 삼간집과 1헥타르 남짓한 토지면적을 2029년까지 단돈 1만 2천원을 받고 임대해준 아주 한심한 상황까지도 있게 되였다. 후에 임대협약을 개변시키려하면서 임대자와 토지주인간에 토지분규가 일어나게 되였는데 전 현적으로 공개된 토지분규가 83건, 그중 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 설립된 법률사무소의 노력으로 80건이 해결을 보았다.

조선족마을이란 순결성이 사라졌다

조선족농민들의 대량적인 리농으로 마을 주택들이 비여 이런 기회에 타민족들이 많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조선족마을이란 순결성이 점차 사라져가게 되였다. 화성촌만 해도 외지인이 차지한 집이 64채나 된다. 하여 어떤 동네는 조선족이 한호도 살지않아 아예 한족동네로 되면서 촌간부마저 바뀌여졌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본래 조선족촌에 호적을 가지고 있는 한족을 제외하고 새로 입주해 사는 한족이 전현적으로 627세대나 된다. 이는 타민족이 조선족촌에 1/3정도 입주했음을 보여준다.

촌간부 류실이 심각했다

촌간부들속에 출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어떤 곳엔 책임을 걸머질 마땅한 간부가 없어 한시기 타민족간부가 대체하는가 하면 어떤곳에서는 촌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거나 아니면 황지나 토지, 산 등 자원이 류실되는 불미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조선족농촌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리농, 토지류실, 가정해체, 페교" 등 조선족농촌 공동화의 4대 현상이 대동소이하게 존재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연수현조선족농촌에는 가정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 출생률이 하락하고 리혼률이 높아지며 도덕이 추락하는것과 양로문제 등등이 새롭게 수면우에 떠올랐는데 4대요소 가운데서도 페교와 출산률저하 리혼률상승이 돌출한 문제점으로 제기되였다. 조사에 의하면 모촌의 리혼률은 전 촌가정의 38%에까지 이르렀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더라도 연수현조선족농촌에서 10년간 출산한 아이들이 100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90년대까지만해도 연수현엔 16개의 조선족소학교가 있었지만 2천년 초에 들어서 7개로, 2012년에 들어와서는 단 한곳의 소학교밖에 남지 않았다.지금 전현적으로 소학교 1개와 중학교 1개가 있는데 소학교 학생은 그나마 28명밖에 되지 않는다.

상실의 아픔과 함께 희망의 요소도 점철

하지만 비록 이러한 현상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10년간 변화의 전부는 아니다. 상실의 아픔이 있는가 하면 희망의 요소가 함께 점철되여있는것이 연수현조선족농촌의 현실이다.

2004년부터 시작하여 그동안의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고 점차 안정을 되찾아 지금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노력하고 있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촌에 대한 국가의 투자가 늘어나고 농민에 대한 국가의 보조가 늘면서 여전히 조선족촌이란 이름을 유지하면서 새농촌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그 어느때보다 좋은 변화를 이루고있기때문이다. 촌들이 기본상 시멘트 길로 탈바꿈하고 동광촌같은곳엔 농로길마저 거의 시멘트포장도로로 꾸며졌다. 그리고 마을에 가로등을 설치한다거나 휴식공간을 설치하고 촌 사무실과 로년협회활동실을 새로 수건하는등 새농촌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면모가 날따라 일신되고 있다.

연수현조선족농촌이 이렇게 변모할수 있은데는 국가의 지원도 있었지만 바로 온정된 촌간부대오가 있는것과 밀접한 관련이 된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아무리 좋은 환경도 그것을 바르게 리용하는 간부가 없으면 안된다. 한시기 혼란스런 교체를 거쳐 지금 연수현조선족촌의 촌간부들은 대부분 50대좌우로 경험이 풍부하고 정력이 비교적 왕성한 나이다. 더욱 반가운것은 40대 지어 30대의 젊은 간부들이 있다는것이다. 또한 한국로무에서 귀향했거나 아예 한국행을 포기하고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촌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의 책임적이고 선두적인 노력으로 하여 연수현조선족농촌에서는 이제 더는 촌에서 빚을 지지 않게 되였을뿐 아니라 이미 진 빚들도 많이 상환하게 되였는데 선봉촌같은곳엔 이 기간 전에 진 빚 135만원을 모두 상환하였다

기꺼운 일: 토지의 중요성, 토지소유의식이 높아진것

그러나 가장 중요한것은 날로 토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토지소유의식이 증강된것이다. 그리하여 지난날 토지를 홀시했던 단점을 극복하고 토지임대년한을 길어서 3년, 짧게는 해마다 계약하여 토지임대로부터 오는 촌민들의 경제적손실을 많이 줄여주었다. 이들은 또 원견성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하여 자기촌들에서 촌민들의 토지소유권을 명확히 해두어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감안하고 자기촌의 토지면적을 측량하여 토지평면도를 만들어놓는가 하면 토지대장이나 토지증을 갖추어 후손들이 자기 부모가 짓던 농토가 어딘지 몰라 찾지 못하는 현상이 없게 하는데 좋은 조건을 마련해 놓았다. (촌마다 다 상세한 토지대장이 있음)

한편 당지 자연자원에 대한 중시도 깊어졌는데 이를테면 전에 잘못처리하여 류실되였던 산을 되찾고 황지를 정리하여 소유권을 확실히 해놓는것이다. 부민촌같은곳에서는 거의 200헥타르에 달하는 황지를 되찾게 되였다.

이외 연수현은 특히 80년대부터 도시진출을 하여 혁혁한 성과를 낸 최수진, 최수영 형제와 최진규 등 이름난 기업인외에 청도, 대련, 위해, 북경, 상해, 광주, 심천 등 연해도시에 진출하여 성과를 올리는 기업인들이 많게 늘었다. 초보적인 통계에 의해도 연수현출신으로 외지에 나가 성과를 올리는 기업인이 50명 남짓하다. 또한 한국로무를 통해서도 많은 알부자들이 생겼다.

총적으로 연수현조선족농촌의 이 10년간을 돌이켜 볼때 격변기의 진통속에서 심각한 변화를 겪은 10년이라 할수 있다. 리농, 페교, 가정해체 등으로 농촌이 많이 흔들렸지만 의지만은 흔들리지 않고 국가의 지원으로 대대적인 건설을 진행하여 낡은 면모가 개변된 10년이였으며 새로운 신심과 희망을 가지고 삶의 터전을 지키고 가꾸어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약의 기반을 확보한 10년으로 상실보다는 그 희망이 날로 커가고 있는 10년이였다.

래원: 길림신문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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