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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문화칼럼127]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는 연변말을 보며

인천대학교 동북아국제통상학부 조교수 김부용

2019년 05월 10일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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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면서 빠질 수 없는 것중 하나가 바로 언어일 것이다. 언어는 사유와 소통의 도구이자 내용이며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치밀한 사유가 가능하고 타인과 세밀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언어가 없는 삶을 상상해보라.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와 기술이 발전할 수 없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개개인의 일상적인 삶도 불가능상태가 될 것이다. 상대방에게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넬 수 없고, 배고프다는 의사표현도 정확히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언어는 특정 지역, 민족과 국가를 대표하며 인간은 언어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간다. 얼마전 우연히 <말모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다. 조선말이 금지되여 점점 사라져가던 1940년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사전을 만드는 내용이였다. 독립이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로 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감명 깊은 영화였다.

이렇듯 언어는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과도 관련되는데, 오늘날의 연변말을 돌아보면 정체성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지하다싶이 연변말이라 함은 중국 연변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언어로, 함경도의 방언이 가장 밑바탕이 되고 있다. 중국조선족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시대에 걸쳐 만주지역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함경도 출신들은 두만강 건너편인 길림성으로, 평안도 출신들은 압록강 건너편인 료녕성으로, 그리고 경상도 출신들은 흑룡강성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길림성 연변지역에서는 함경도의 방언적 특징이 강하게 남아있다. 여기에 조선의 표준어인 평양어 그리고 중국어가 적절히 융합되면서 연변지역만의 고유한 언어가 탄생하게 되였다. 대표적인 연변말로 ‘일없슴다’를 꼽을 수 있는데 이는 ‘괜찮다(没事儿)’라는 의미의 중국어표현을 그대로 직역한 것에 함경도 종결어미인 ‘습구마’ 대신 연변식 개신형 어미인 ‘슴다’가 붙여진 것이다.

연변말은 누군가에게는 촌스러운 사투리로 들릴지도 모르나 조선족에게는 곧 표준어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조선족중심지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조선족을 말하면 제일 먼저 연변이란 지역과 연변말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연변말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국과의 교류가 깊어가면서 TV에서도, 라지오에서도 서울말이 들리기 시작했으며 글도 서울식 표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처럼 대세는 서울말로 바뀌는 와중에 일부에서는 “서울말은 영어표현을 많이 쓰므로 우리말로 바꿔쓰는 조선식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례를 들면 ‘코너킥’을 조선처럼 ‘각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볼(ball)이 영어발음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각볼도 순수 우리말은 아니다.

한마디로 연변말은 현재 연변말을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할지 서울말로 바꿔야 할지, 아니면 조선식 표현(특히 신조어)을 사용해야 할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단계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 우리 조선족이 나는 중국인 및 조선족이냐 아니면 한국인 혹은 조선민족이냐의 사이에서 정체성의 방황을 겪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변말을 부정하고 타의 언어를 표준어로 표방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조선족이라고 불릴 명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도 연변말을 쓰자는 의미는 아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한국사회에 잘 융합되려면 한국어를 쓰는 것이 맞다. 그러나 조선족의 집거지이자 뿌리지역인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연변말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리해해야 할 것인가?!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