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당안국는 4일, 공식 홈페이지에 "일본 중국침략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25집: 노토 쇼조를 발표했다.
제25집의 개요에 따르면, 노토 쇼조가 1954년 8월 18일에 제출한 서면 자백서에 의하면 그는 1920년 일본 치바현에서 태어나 1940년 중국 침략전쟁에 참가했고 1945년 8월에 포로됐다.
중요한 죄행은 다음과 같다:
1941년 3월, 산동성 태안(泰安)현에서 "중기관총반 신병 48명"이 "30세부터 45세 좌우의 애국자 4명을" 리용해 총검술을 련마했는데 4명의 애국자들은 각각 "12명의 신병들에게 의해 번갈아가며 가슴을 찔렸고 결국 사망했다". 노토 쇼조는 "35세 좌우의 애국자 한명을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1943년 6월, 태안현에서 "30세 남짓 돼보이는 농민 한명을 붙잡아" 동료 3명이 "죽도로 때리며 고문했고", "나는 발로 밟아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랭수를 먹이는 방법으로 고문했다". 그리고 "그 농민을 밭으로 끌고 가 무릎을 꿇게 한뒤" 다른 동료가 "총검으로 가슴을 두번 찔렀고 나는 이미 쓰러진 농민의 목을 한번 더 찔러 죽였다".
1944년 1월, 태안현에서 산으로 도주하는 농민을 "쏴죽여라" 명령했다.
1944년 3월, 산동 래무(萊蕪)현에서 민가로 쳐들어가 "옷궤 곁에 숨어있던 26세 좌우의 녀성을 총검으로 협박해 강간했다".
1945년 2월, 태안에서 수감한 5명의 농민을 고문했다. "나는 개를 풀어 50세 좌우의 농민을 물게하고 몽둥이로 때렸으며……40세 좌우의 다른 한 명을 몽둥이로 4차례 내리치고…세 주전자에 달하는 물을 먹여 기절하게 했다. 다음 그의 배를 눌러 다시 깨웠다". 4~5일 후 "일본 군도로 이 다섯 명을 참수했다. 그 중 50세 좌우의 농민은 내가 베어 죽였다".
1945년 5월 20일, 산동성 일조(日照)현에서 수색할 당시 "출산한지 대엿새 되는 여성이 숨지 못한 채 그자리에 누워있 것을 발견하고 총검으로 위협해 강간했다".
래원: 국제방송 | (편집: 임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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